워킹맘엄마와 워킹맘딸의 육아이야기
"엄마, 지금 어디야?"
"엄마 도착하려면 얼마나 걸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항상 초콩이의 전화를 받는다.
"응, 엄마 이제 퇴근해서 가는 길이야!"
"엄마, 그럼 언제 도착해?"
"지금 가면 한 30분은 좀 더 걸릴 것 같은데?"
"응 알았어!"
왠지 쿨할 것 같은 통화지만, 초콩이에게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려는 전화라는 것을 나는 안다.
잠시 뒤면 초콩이는 나의 위치를 또 확인하려고 전화를 한다.
"엄마, 지금 어디야? "
"초콩이, 지금 집에 도착했어?"
"아니 나는 차 안이야! 지금 가고 있는 중이야, 그런데 엄마 지금 어디야? 얼마나 왔어?
집에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려?"
숨 쉴 틈도 없이 쏟아내는 질문들 속에서 초콩이의 마음을 알 수 있기에, 퇴근할 때 초콩이의 전화를 받으면 나는 마음이 급해진다.
초콩이가 모든 학원의 마지막인 태권도까지 다녀온 후의 시간은 대략 6시 30분 정도이다. 내가 퇴근을 하고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거의 7시 전후이니 초콩이는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30분에서 한 시간여의 시간은 짧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초콩이에게는 아마도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한 시간 정도는 혼자 있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지난여름, 3시간 정도는 혼자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초콩이의 유치원 방학에 나는 오후 반차만 내고 초콩이는 3시간만 집에 있으라고 말을 하고 외근을 나왔었다. 평소 30분 정도는 혼자 있는 연습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고, 밝은 낮이고 초콩이가 좋아하는 영상을 보거나 TV를 보거나 혹은 게임을 하라고 했기에 그 시간이면 내가 거래처 미팅을 다녀오는 3시간은 충분히 초콩이가 혼자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달리 초콩이는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CCTV로 나와 소통이 되지 않자 바로 집 밖으로 뛰쳐나갔던 것이다. 다행히 아파트 청소여사님을 로비에서 만나서 천만다행이었었다. 나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다시금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사실, 초콩이의 누나 초롱이는 초등 1학년 입학하면서부터 아침 등교 전 1시간을 혼자 집에서 책을 보거나 하다가 학교 등원을 했었다. 초콩이도 이제 1학년이 되었으니, 저녁이긴 하지만 아직 많이 어둡지 않은 7시 전후로 30분 정도는 충분히 혼자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전 여름때와는 달리 집 전화기도 있을 뿐 아니라, 초콩이의 휴대전화도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초콩이가 좋아하는 학습패드로 좋아하는 영상을 보고 있으라고 했으니 전혀 걱정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그저 나의 희망사항이었다.
"엄마, 지금 어디야? 집에까지 오려면 몇 분 걸려?"
결국 나는 초콩이가 집 앞에 도착하고, 공동현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과 집에 들어서기까지 계속 통화로 초콩이에게 용기를 주어야 했다. 1분에 한 번씩 물어보는 엄마 어디야? 얼마나 남았어? 에 절대 화내지 않고 마음을 다독이며 말해야 했다.
"초콩아, 엄마 1분 지났으니까 이제 25분 남았어! 조금만 더 기다려줘!"
"초콩아, 이제 엄마 23분 남았네!"
전화를 끊자고도 했다가 금세 다시 걸려오는 전화에 나는 퇴근길에 즐겨 듣던 오디오북을 들어야 하니, 그만 전화하자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엄마 갈 때까지 집 밖으로 나오지 않기만을 설득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초콩이가 이렇게 집에 혼자 있기 무서워하는 것은 나를 닮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릴 적에 우리와 함께 살던 셋째 이모가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우리는 학교에서 돌아와서도 우리를 기다리는 이모를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다. 나는 지독하게도 겁이 많았었다. 그 당시 초등학교 하교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대략 4시 정도가 되었던 것 같다. 벌써 30여 년이 넘은 이전이니 지금처럼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도 많지 않았고, 나 역시 학원은 피아노 학원과 컴퓨터 학원 정도가 전부였다. 공부를 위한 학원은 눈높이정도였던 것 같다. 아마도 5학년이 되었던 나였지만, 나는 엄마에게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열쇠를 열고 집에 오고 싶지 않다며 엄마에게 회사를 그만 다니라고 앙탈을 부렸던 것 같다.
“엄마, 엄마도 다른 친구들 엄마처럼 학교 갔다 오면 집에 있으면 안 돼? 나 집에 혼자 들어오기 너무 무섭고 싫단 말이야! “
나는 매일 엄마에게 앙탈을 부렸고, 엄마가 올 때까지 밖에서 집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엄마는 회사를 그만두시지는 않았지만, 다른 방법을 찾아주셨다. 엄마의 넷째 언니인 넷째 이모의 집안일을 돌봐주시는 청소 여사님을 오후에 우리 집 집안일도 봐달라고 부탁하시면서 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좀 있어달라는 것이었다.
넷째 이모와 우리 집은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 청소여사님은 이미 몇 년째 이모의 집안일을 봐주시고 계셨다. 이모집은 평수가 넓은 아파트이긴 해도 매일 여사님이 와서 집안일을 봐주시니 오전에 두세 시간이면 청소와 빨래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우리 집으로 오셔서 빨래와 청소등을 하고 계시면 내가 하교 해서 집으로 올아오는 4시경에는 일을 마칠 수 있었다. 나는 집 안에 여사님에 계셔서 좋았고, 여사님은 수입이 두배로 늘어서 좋았던 서로가 윈윈 하는 좋은 거래였다.
그 당시 나는 여사님을 아줌마라고 불렀고, 아줌마가 내가 하교해서 돌아올 때쯤 일을 마무리하는 것을 알면서도 늘 더 오래오래 계시다가 가라고 자꾸 여사님의 발목을 잡았다.
”아줌마, 저 너무너무 배가 고파요! 라면 좀 끓여주세요! “
그 당시에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여사님의 발목 잡기는 라면이었고, 조카라고 하기엔 어리고 손녀라고 하기엔 큰 나를 안쓰럽게도 귀엽게도 여겨주시는 여사님은 늘 흔쾌히 라면을 끓여주셨다.
그때의 엄마는 나의 고집에 여사님에게 도움을 청하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도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퇴근하고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때, 건조기도 없던 시절 빨래와 청소가 다 되어 있는 집과 간단한 저녁준비까지 해주셨던 여사님이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물론 비용은 지불해야 했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 그 시절의 내가 눈앞에 그려지곤 한다.
이제는 모두가 도어락으로 열쇠도 없이 척척 번호키를 누르거나 지문으로 집 안으로 들어가는 지금과 달리, 열쇠로 문을 열거나 초인종을 누르고 집 안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렸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이 말이다. 여사님이 가시고 숙제를 하고 나면, 동생과 함께 TV에서 만화. 프로그램을 하는 시간이었고, 만화가 끝나면 나는 늘 엄마를 복도식 아파트 복도에서 기다리곤 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엄마의 퇴근시간을 대략 알고 있기에 30분 전부터 나는 엄마를 집 앞 복도에 서서 엄마 차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소리를 지르던 내가 보인다.
“엄마! 왜 이제와! 빨리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