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의 만수무강을 빌게 되는
오후 늦게 셀리눈테 고고학 공원 밖에 있는 넓은 무료 주차장에 도착해서 차를 세워 두고 이곳 마을을 둘러 봤다. 이 마을은 아담한 해변을 끼고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죽은 해초가 잔뜩 밀려와 수영하기에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아랑곳없이 물에 뛰어 들어 놀고 있었지만 샤워할 곳이 없는 우리는 그냥 바라볼 수밖에. 전날 샤워한 걸로 최대한 오래 버텨야 해서 수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시칠리아에 오면 아름다운 해변에서 실컷 수영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캠핑카를 가까이에 세울 수 있는 해변도 거의 없고 샤워를 할 만한 곳도 별로 없어서 기대한 것과는 많이 다른 여행이 되고 있었다. 그래도 크게 아쉽지 않았던 것은 저녁 식사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셀리눈테의 주차장으로 돌아온 가장 큰 이유는 수영을 하는 것도 무료로 하루 자기 위함도 아닌 이곳 주차장 한켠에 있는 <부메랑>이라는 이름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돈을 아끼느라 밥을 사 먹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시칠리아에서는 특히나 거의 통조림 캔으로 연명하다 보니 이쯤 해서는 정말 간절하게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그런데 마침 이 주차장에 있는 식당이 너무나 혜자스러운 곳이었던 것.
저녁에만 여는 이 식당은 1인 30유로(4만 원 정도)라는 저렴한 가격에 사장님이 그날그날 직접 잡거나 구입한 시칠리아산 해산물을 숯불에 굽거나 튀겨서 코스로 제공하는 곳이다. 최소 4코스에서 최대 7코스까지 나오는데, 뭐가 나올지 몇 코스나 나올지는 접시를 받아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해산물을 배가 터질 정도로 먹게 될 것만은 확실한 곳. 예약을 못 해서 걱정했는데 7시 30분에 문을 열자마자 갔더니 다행히 자리가 많았다. 사실 여름에 남부 사람들은 저녁을 워낙 늦게 먹기 때문에 예약을 하지 않아도 8시 전에 가면 웬만한 곳은 다 자리가 있는 것 같다. 이 날도 우리 포함 문을 열자마자 들어온 세 팀이 모두 외국인들이었다.
주문을 하면서 놀란 것은 30유로에 샐러드와 빵, 음료도 포함이라는 사실. 심지어 음료로 와인 한 병을 고를 수도 있다. 우리는 두 명이라 물 한 병과 시칠리아 화이트 와인 한 병을 골랐다. 그리고 시작된 코스 요리. 완벽하게 간을 한 신선한 생선을 숯불에 구워 바로바로 갖다 주니까 너무너무 맛있었다. 양까지 많아서 세 번째 코스부터 이미 배가 부른데 음식은 끝없이 나오고 근데 또 맛있어서 계속 먹고.. 우리가 간 날은 해산물 코스만 7가지나 주셔서 다섯 번째부터는 옆 테이블의 독일 할머니와 마주보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더는 못 먹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할머니께 불룩한 배를 보여 드리며 함께 웃었던 추억.
와인도 실컷 마시고 정말 더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생선을 잔뜩 먹었고, 먹은 생선 요리를 세어 보니 7가지라서 이제 끝이겠구나 했더니 세상에 디저트라고 생과일과 까놀리까지 나오는 거다. 손님들의 배를 터뜨리는 게 사장님의 목적인가 싶었다. 시칠리아의 대표적인 디저트인 까놀리는 심지어 일반적인 크기보다 훨씬 커서 들어올리니 묵직했다. 입에서 살살 녹는데도 너무 배가 불러서 눈물을 머금고 남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무리로 커피까지. 이 한 번의 식사로 시칠리아에서 캠핑카를 타고 떠돌던 날들을 모두 보상받은 것 같았다. 이탈리아의 외식비를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1인 30유로라는 것이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남는 게 있기는 하신 걸까. 사람들이 남긴 생선은 모아서 길고양이들에게 먹이시던 사장님, 제발 남는 게 있으셔서 오래오래 식당을 운영해 주시기를.
식당의 이름은 <Ristorante BOOMERANG>, 구글 리뷰를 찾아 보니 2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가격과 구성으로 운영 중이신 것 같다.
https://tumblbug.com/chomare_it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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