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우리 가족은 완전체로 캠핑을 즐겼다. 아침으로 낙곱새 전골을 끓여 따뜻한 햇반에 슥슥 비벼 먹었다. 밖에서 먹는 밥은 무엇이 되었든 맛있다. 요리사는 남편이었고 나는 설거지 담당이다. 남편의 정성어린 요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설거지가방에 사용한 식기를 담아 개수대로 갔다. 개수대는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카디건 소매를 걷어 올렸다. 설거지가방에서 기름기 잔뜩 묻은 식기를 하나씩 꺼내 사각 씽크볼에 널어놓았다. 수도꼭지를 왼쪽으로 돌려 틀자 뜨거운 물이 콸콸 나왔다. 물줄기 주위로 허연 김이 피어올랐다. 수도호스를 길게 늘어뜨려 식기마다 물을 받아 불려 두었다. 플라스틱 식기가 기름에 미끌거렸다. 그물망사 수세미에 세제를 덜어 거품을 내 식기 안과 밖을 뽀드득 소리 나게 씻었다. 식기를 거치대에 엎어 물기를 빼 미리 씻어둔 설거지가방에 다시 담았다. 세면장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햇살이 창으로 새어 들어와 이른 봄날 같았다.
설거지를 마치고 텐트로 돌아가는데 세면장 바로 앞 텐트 안에서 어린이 만화영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파란 줄무늬 내복을 입은 남자아이가 한 손에 로봇 장난감을 들고 등을 동그랗게 말고 앉아 티브이에 빨려 들어갈 듯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강자갈 밟는 소리가 짜그락거렸다. 이 많은 자갈은 어떤 하천에서 실려 왔을까. 텐트마다마다에서 아침밥 냄새가 공기 중으로 흘러나왔다. 다들 무엇을 해 먹고 있을까.
오후, 우리는 연을 날렸다. 바람이 좋았다. 남편은 연에 얼레의 실을 연결하더니 바람의 방향을 확인하고는 금세 연을 띄웠다. 단 몇 분만에 무지개색 나비 모양의 가오리연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얼레에 감긴 실이 다 풀리자 남편은 새 얼레를 가져와 실을 길게 연결했다. 연은 더 높이, 더 멀리 날았다. 십 수명의 캠퍼들이 동시에 연을 날려 허공에서 연끼리 서로 꼬이고 엉켜 붙기도 했다. 우리 연은 그 난리를 잘도 피했다. 긴 연꼬리를 펄럭이며 바람에 몸을 맡긴 듯 보였다. 예닐곱의 가오리연이 긴 꼬리를 흩날리며 공중을 날자 검은 매가 어디선가 날아와 양 날개를 활짝 펴고 주위를 맴돌다 제 갈길을 갔다. 그렇게 삼 십 분간 연을 날린 후 다 함께 올해의 액운을 끊어내 듯 연의 실을 끊어 날려 보냈다. 연이 시야에서 벗어나 사라졌다. 연은 우리 가족의 불운을 몽땅 안고서 눈에서 희미해졌다.
나는 여태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쓰는 걸로 돈을 버는 사람이. 그래서 읽었다. 하염없이 읽었다. 읽으면 쓰는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다. 이제와 깨달았다. 이 생각은 반만 맞다는 것을. 제대로 읽었어야 했다. 쓰는 법을 알고 읽었다면 더 빨리, 더 잘 쓰게 되었을 텐데. 미련하게 앉아 읽기만 했다. 읽기는 내 취미밖에 못 되었다.
쓰려고 하면 문장에 갇혔다. 같은 의미의 문단 속에서 뱅그르르 돌고 돌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같은 문장을 고치고 합치고 떼어냈다.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바이올린을 배우며 깨달았다. 잘하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는 것을. 바이올린을 배운 지 두 달이 되어갈 즈음, 나는 '봄바람', '그 옛날에'와 같은 간단한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연주가 되니 재미있어 매일 꾸준히 바이올린을 켜게 되었다. 글쓰기가 왜 재미없었는지, 미루고만 싶었는지 알 것 같았다. 배우지 않아서. 쓰는 법을 모르니까. 올해는 글쓰기를 배우려 한다. 뭐라도 쓰게 되겠지.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