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동그란 왕만두를 한 입 앙 베어 물었다. 베어진 틈으로 꽉 들어찬 고기와 당면과 야채가 보였다. 조미 간장의 맛이 옅게 더해졌다. 노란 반달 모양 단무지도 한 입 베어 먹었다. 사각사각 오물오물 씹었다. 냉장고 홈바에서 초록색 맥주캔을 꺼냈다. 며칠간 술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먹어야 겠다. 뭔가 허기졌다. 삼시 세끼를 먹었고 간식도 먹었는데, 이상하게 허기짐이 남았다. 맥주 탓일까. 이건 맥주를 마셔야 끝나는 싸움이다. 시원한 알루미늄 캔맥주를 가져와 따개를 들어 올렸다. 따각. 왈칵왈칵 들이켰다. 속이 뚫릴 때까지. 그래, 맥주였어.
만두를 욱여넣고 맥주를 들이켜길 반복. 맥주가 긴장을 이완시켰다. 마음이 느슨해지고 싶었다. 평소 나는 쉽게 긴장하고 불안하다. 이유는 모른다. 자라온 환경에서 온 결핍 때문이라 짐작만 할 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취미 탓이기도 하다. 책은 늘 약한 사람들을 보게 하고, 공감을 끌어낸다. 수동적인 나를 나무라기도 하는 듯하고.
기댈 곳이 필요해. 그런데 기대고 싶지 않아. 딜레마다. 기대고 싶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 탓에 나를 방치했다. 기댈 사람이 있었다한들 타인이 내가 아닌 이상 나를 온전히 이해하긴 힘들다는 것을 이해한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가족이 있지만 때때로 외로웠고 늘 무기력했다.(가족은 뭔 잘못이야.) 외로움을 겉옷처럼 늘 두르고 있었는데.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아직 아니었구나.
언제 다 마셨지. 맥주 369ml가 순식간에 바닥을 보였다. 캔을 입에 대고 한 방울이라도 더 축이려 거꾸로 뒤집어 기다렸다. 맥주는 더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없어진다고?! 한 캔 더는 안된다. 알코올 중독자가 될 것만 같다. 외로움에 알코올이 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술과 과자를 끊어야 하는데 나에게 쉽지 않은 과제다. 부풀어 오른 과자 봉지의 입구를 양손으로 힘주어 뜯었다. 얇고 바삭한 과자가 속을 드러냈다. 30g당 165칼로리. 총 용량 100g. 이걸 30g만 먹고 그만 먹는 사람이 있나. 1회 용량으로 30g을 제안한 건 기만이다. 과자를 쑤셔 넣었다. 아삭아삭 씹힌다. 과자에 입힌 시즈닝이 맛깔스럽다. 원재료명이 과자의 뒷면을 빼곡히도 채웠다. 새우맛 과자에 넣는 시즈닝이 스무가지가 넘는다. 새우분말, 쉬림프후레바파우다, 새우농축분말, 그게 그거 같은데. 이 모든 게 또 바다 건너에서 왔단다. 변성전분은 또 뭐야. 오늘 건강식으로 먹은 아보카도와 블루베리와 로메인은 허사다. 어릴 적 먹던 습관을 못 버리고 있다. 과도기라 치자. 과자가 줄어들고 있다. 60g 이상은 안된다. 얼마를 먹었는지 알 수 없다. 이것만 먹고 그만 먹자, 하며 계속 먹었다. 먹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누가 못 먹게 하는 것도 아닌데 손가락이 급하다. 바닥이 보인다. 이제 그만. 과자의 입구를 접어 막았다.
맥주와 만두와 과자가 나를 채웠다. 허기짐이 한고비를 넘겼다. 구독 중인 유튜버의 알림이 와 '똑똑한 채소 섭취법' 릴스를 시청했다. 실제 먹는 것과 먹고 싶은 것의 간극이 이토록 크다니. 오늘은 치팅이라 치자. 내일은 너로 정했다. 그거면 됐다.
큰 아이가 맞은편에서 그림과제를 하고 있다. 일본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중간중간 음악에 설명을 곁들인다. 아이는 간혹 내가 결코 경험하지 않았을 새로운 장르의 음악과 만화책과 음식으로 나를 이끈다. 아이로 인해 내 세계는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