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아람단

6학년 번외

by MIRA

나는 엄마의 김밥이 참 좋았다.

우리 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은 편인데, 뭔가 근사하고 서양스럽진 않지만 굉장히 우직한 스타일이다. 특별히 김밥은 손 힘을 꾹 주고 싸서 단단했는데, 시금치나 오이를 넣지 않아서 더 좋았다.

여브레인은 쇠고기 김밥을 주로 싸왔는데, 맨 윗줄에 고춧가루가 뿌려져 있어 칼칼한 맛이 일품이었다.

역시 현이어머님은 교양 있으셔.


오늘도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준비하신다. 주방에서 나오는 밥 짓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오늘은 아람단에서 외부활동을 가는 날이다.

오늘 일정은 아주 먼 곳이라고 선생님께서 설명하셨다. 서울을 지나가기 때문에 새벽에 출발해야 하니 모두 늦지 않게 학교 앞으로 집합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엄마가 준비해주신 도시락을 들고 동도 트지 않은 길을 나선다. 아마 현모혜진 집에 들러 같이 가지 않았을까 싶다.

학교 앞에는 관광버스 한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담당 선생님께서 늦잠을 주무시는 바람에 우리는 동이 트고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바로 빼꼼이부자 되신다.

그 많던 가락국수는 누가 다 먹었을까

버스는 고속도로를 타고 먼 길을 나선다. 나는 주로 봉봉이와 짝을 맞춰 앉았다. 봉봉이는 통로 자리를 좋아했고, 나는 창가 자리를 좋아했다. 현모혜진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초중고 동창이지만,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은 없다.


고등학교 때 문이과를 정하던 날, 봉봉이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앞으로 영영 같은 반이 될 수 없을꺼야."

그래서 더 친할 수 있었을까?

둘 중 한 명이 먼저 결혼하면, 부케를 받는 사람이 다른 한 명이라고, 당연히 그래야지 하며 서로 약속을 했다.

여기서 예상과 달리, 부케를 준 사람은 나고, 받은 사람은 봉봉이다.


가끔 내가 너무 스토커같이 많은 것을 기억하는 게 남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항상 봉봉이 생일을 기억하고 있어서, 매 년 생일날 메시지와 선물을 보내는데, 이젠 봉봉이도 마찬가지다.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몇 가지 뇌리에 박힌 날짜는 왜 그리 잊혀지지도 않은지. 만약 내가 흑상이랑 완전 절친이었으면, 마찬가지로 매 년 메시지를 보낼지도 모른다.

"내 생일은 구구단이야, 엄청 쉬워~"


오늘 일정은 정말 멀긴 먼가 보다. 버스를 몇 시간이나 타고 왔는데,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 정작 구경은 엄청 짧게 하겠구나 하는 마음에 살짝 실망감이 생겼다.

우리들의 오늘 목적지는 '제3 땅굴'과 '애기봉'이다.

늘 느끼는 거지만, 그 옛날에 내가 무엇 때문에 거기까지 갔는지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큰오빠는 해병대로 강화도에서 군 복무를 했는데, 나는 해병대도 아닌데, 애기봉을 안다는 것이다.


버스는 몇 개의 철창문을 지나갔다. 멈춤, 금지와 같은 강한 어조의 푯말이 여러 개 보이고, 땅굴을 보기 전에, 전망대에 올라가 약간의 브리핑을 듣던 시간이다.

"지금 북한에서는 오늘 버스가 몇 대이며 누가 방문했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순간, 선생님은 어째서 우리를 이런 곳에 데려왔을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땅굴은 좁고 침침했다. 뭘 특별히 기대한 건 아니지만, 군인 아저씨가 서 있는 마지막 입구에 다다랐을 때,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안내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직접 분단의 아픔, 대한민국의 현실 같은 걸 느꼈어야 했지만, 이제 돌아 나가면 되는구나 하는 안도감만 느꼈다.


나는 지리과목을 좋아했다. 사회과부도를 펼쳐 놓고, 책으로 전국일주를 떠나거나, 나중에 어른이 되면, 이 나라는 꼭 가봐야겠다 뭐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마음은 고등학교 지리 선생님을 만나는 순간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여고에는 지리 선생님이 두 분 계셨는데,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보자면, 한 분은 극S, 다른 한 분은 극N이다.

나는 당연히 ESTJ로 말이 많고, 외향적이며 지극히 이성적이며 판단이 빠르다. 아무리 봐도 미대생과는 거리가 먼 성향이긴 하다.

어쨌거나, 극N되시는 지리 선생님은 유인물 따위는 한 장 없고, 요약이라는 건 전혀 안 해주시는 분이셔서, 시험을 보면, 두 분의 성향에 따라 해당 반의 평균 점수도 극과 극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리 선생님께서 자신의 경험담 한 가지를 들려주셨다.

군 복무 시절, 우연히 보초를 서다가 발 밑 구덩이를 발견했는데, 그게 바로 제3 땅굴이었다는 것이다. 전공자다운 접근이다.

당시 보초를 서던 친구와 자신은 상부에 이 내용을 보고했고 조만간 포상휴가를 받을 거라고 동기들의 부러움을 받았는데, 말년 병장이 다 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제대 후 복학을 해서 대학교 4학년이 되고나서야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고 하셨다.

"북한의 도발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습니다. 바로 제3 땅굴입니다."

그 후로 지리 선생님께서는 더 이상 정부를 믿지 않는 국민 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딱 지리 선생님 나이가 되어보니, 자연스럽게 같은 국민이 되어간다. 뭔가 안타까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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