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육이 남달라

6학년 2반 소녀시대

by MIRA

#02 발육이 남달라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올 때쯤 시험이 끝났을 것이다. 지금은 발걸음이 무겁지만 이따가 가벼워져 있겠지.

나는 떨리는 마음을 추스르며 무거운 가방을 들고 등교를 한다. 기말고사가 있던 날이다.


기말고사는 단 하루였는데, 국산사자를 보고, 음미실 7과목 정도를 봤던 걸로 기억된다. 1학기 시험은 7월 7일이나 8일, 초순에 보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슨미는 생일과 겹쳐서 미역국도 못 먹고 왔다는 얘기를 가끔 했다.

대부분 25문제였지만, 음악, 미술은 국어 시험지 뒷 장 절반에 10문제였다. 그래서 1 문제만 틀려도 10점이 깎이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우리 집 아랫 골목에는 머리가 좋기로 유명한 형제가 있었다. 그 집 담벼락을 지날 때마다 엄마는 '이 집 아들 둘은 다 수재'라며 칭찬하셨는데, 나보고 꼭 들으라고 하신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름 공부를 한다는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정답을 맞혔는데, 갑자기 한 남학생의 시험지 앞에서 의견이 분분하게 갈리기 시작했다.

똑똑한 유리스탈이 'OOO 해서 OOO이잖아'라고 말한다. 나는 유리스탈과 답안이 같아서 동지가 된 느낌이었지만, 그 남학생은 2개의 오답으로, 음악 80점이라는 불명예를 갖게 되었다.


나는 성북구에 있는 K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과사무실에서 3년 근무했고, 그 기간 동안 교직원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이후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래서 나의 20대는 K대학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YOON이 막 돌을 지났을 때, 집으로 학보 1부가 배달되었다. 무료하던 차에 천천히 읽어보는데, 딱! 내가 아는 얼굴과 이름의 어떤 사람을 발견한 것이다.

신임교원 최 OO박사 S대 졸업, S모 회사 연구원 경력.


나는 마음속으로 동창 중에 누구누구는 S대에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중 한 명인 최OO이 나의 바램을 이뤄준 것이다. 내 일처럼 기뻤다.


"최OO 교수님 연구실인가요? 저는 영동 국민학교 조MIRA 라고 하는데요. 혹시 저를 아실까요?"

"아, 네. 알 것도 같습니다."

바로 반말을 했다.

"나 지금 조형대에 있는데, 혹시 이쪽으로 올래?"

"음, 15분 후에 갈게"

이렇게 정확한 놈을 봤나.


저 멀리 최교수가 걸어온다. 어렸을 때 두꺼운 안경을 쓴 얼굴 그대로이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가 생각보다 키가 크지 않았다.

보자마자 나는 정말 니가 S대에 갈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몇십 년 만에 만난 동창에게 건넨 첫마디가 생뚱맞긴 하지만, 어떻게든 나의 바램이 이루어졌다고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홈그라운드에 니가 들어온 거라고 유세를 떨었다. 나중에 동창모임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우리는 헤어졌다.

가끔 남편이 회의에서 만났다, 이번에 공대 부학장이 되었다 등의 소식을 전해주고 있지만, 내가 너무 보잘것없는 동창이 된 것 같아서, 이젠 부를 엄두가 안 난다.


순자선생님은 뭔가 목표가 뚜렷하셨다. 교실은 항상 청결해야 하고, 학급사진도 단정하게 찍어야 하는 등 조금 엄격하신 분이셨다.


이번 학급 자랑은 왈츠였다. 촬영 당일 4학년 때 입었던 마스게임복을 준비해 오라고 하셨다. 그 위에 스커트를 입고 추는 게 계획이었다.

우리는 몇 번의 연습을 하고 촬영 당일 학교 옥상에 올라갔는데, 예기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 시절 마스게임복은 쫄쫄이 스타일이었으니......


사실 선생님은 아들만 둘 있어서 우리들의 신체변화에 대해선 경험치가 낮으셨던 것이다.

나는 어차피 체격이 작아서 차이가 없었는데 몇몇 발육이 남다른 친구들은 정작 본인도, 선생님도, 심지어 파트너도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당시 우리 반에는 독특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어렸을 때 한약을 잘못 먹어서 그랬다는 둥 사실은 엄청 똑똑한데 아닌 척 한다는 둥 여러 가지 설이 있었다.

촬영 당일 남학생들은 반바지를 입는 게 드레스코드였는데, 어디서 들었는지 안드로메다도 입고 온 것이다.

아무도 말을 걸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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