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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영동국민학교 이야기
13화
그녀에게는 뭔가 특별함이 있다
6학년 2반 소녀시대
by
MIRA
Aug 16. 2022
#01
그녀에게는
뭔가 특별함이 있다
나는 벌써 6학년이 되었다. 큰오빠는 대학생이 되어
유학간 지 2년째였고, 작은오빠는 미대를 가겠다며 밤낮없이 그림만 그리고 다닌다.
나는 처음부터 오빠들은 없고 외동이었던 것처럼 텅 빈 집에 혼자
남겨졌다. 하지만, 하나도 싫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 아빠는 모임에 가시고 할머니와 엄마는 저녁예배에 가셨다. 큰 집에서 나 혼자 '일요일 밤의 대행진'을 보는 게 너무 좋았다.
친구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어렸을 때 나는 말이 정말 많았다. 아빠는 나중에 커서 아나운서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방학 때, 내가 친척 집에 잠깐 다니러 가면, 동네 아주머니들께서 내가 없다는 사실을 다 알 정도로 나는 매우 쾌활하고 명랑했다.
하지만, 사실 혼자 집에 있는 것도 좋아하는데, 오십을 앞둔 지금엔 거의 집에 있다. 잠깐 둘레길을 다녀올 뿐, 집에서 도자기 컵에 그림을 그리거나 가끔 내키면 흙 작업을 하거나, 아니면 이렇게 글을 쓴다.
80년대만 해도 여자 담임선생님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강릉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 1학년 4반 김광옥 선생님이었고, 영동 국민학교 마지막에 다시 한번 6학년 2반 김순자 선생님이었다.
여자 선생님이 되어서 너무 좋았는데, 순자선생님은 용호선생님만큼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지
않아서, 어떤 마음인지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새 학기가 되었으니, 반장선거를 해야 했다. 이번에 뽑힌 반장은 거의 몰표로 당선되었다.
그래서인가? 갑자기 반장이 된 아이가 교단에서 축하공연을 한다. 개다리춤을 추는데,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까르르 웃음보가 터졌다.
나는 웃음조차 잊어버리고, '뭐 저런 애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교실은 시간이 멈춘 듯하고, 남자아이 혼자 무반주로 개다리춤을 춘다.
바로 홍반장이다.
MARI의 신촌발 일산행 택시비를 받은 날, 몇십 년 만에 홍반장과 뮤지션
엄도 함께 만났다. 홍반장은 얼굴은 하얀데 수염은 시커멓고, 키는 큰데 멋있진 않았다.
다만, 이 놈이 진짜 성북구의 K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석사과정 중이라는 사실에 놀랐을 뿐이다.
개다리춤은
아무나
추는 게 아니었다.
선생님께서는 이것저것 학교 안 살림을 도맡아 하셨다. 그중에 우리 반이 담당해야 하는 것은 교장실 청소였다. 당시 교장실은 2층 중앙에 있었고, 앞 줄에 앉았던 나와 혀니, 수니, 시니 이렇게 4명이 전담요원으로 임명되었다.
사실 나는 1년 내내 교장실 청소만 하는 게 싫었다.
청소시간이라는 것이 무엇이던가?
공공연하게 다른 반 친구들이랑 복도에서 마주쳐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는 공식적인 시간이지 않나.
나는 교장실에 갇혀서 테이블을 닦고, 소파를 닦고, 어떤 날은 담배 재떨이 청소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물론, 좋을 때도 있었다. 가끔 교장선생님께서 특별한 간식을 주시거나, 간식이 없을 때 우리들은 선반에 놓인 사탕꽃다발에서 티 나지 않게 사탕을 하나씩 뽑아먹었다. 꽃다발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어느 날 우리는 뭔가에 홀린 듯했다.
교장실 테이블 위에는 신기한 물건이 하나 있었는데, 학이 머리를 숙이면 그 앞 서랍이 열리고 그 안에 있는 담배 한 개비를 물고 고개를 든다.
출처: 아크맨 블로그
우리 아빠는 비흡연자이셔서 나는 담배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접한 것은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학의 머리를 눌러 담배 한 개비를 꺼내고, 그 옆에 있는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하지 말라고 선생님이 오실지도 모른다고 당황한 친구도 있고, 호기심에 아무 말도 안 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담배를 꺼낸 친구는 점점 더 라이터에 가까이 담뱃불을 붙였다.
하지만, 담뱃불이 커지자 겁이 났는지, 후~하고 불을 끄고 재빨리 휴지로 감춰버렸다. 교장실 안은 담배연기가
막
피어오르다가 멈춘 상태였다.
갑자기 문이 열렸다.
우리는
재빨리 흩어져 테이블을 닦거나 소파를 정리하는 척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큰일났다
. 유리창을 깬 것도 아니고 담배라니......
하지만, 웬일인지 선생님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한 번 훅 둘러보시고 잠깐 머뭇거리시다 나가셨다.
바쁘신가?
재빨리 불을 꺼서 연기가 없었나?
우리가 못 느끼는 것처럼 선생님도 못
느끼셨나?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었지만, 그날 이후 우리는 더 이상 학을 거들떠
안 보고,
꽃다발에서 사탕을 뽑아먹지도 않았다.
그 애와 말을 해본 적이 없어서 목소리가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다만 철기시대에는 말썽을 부리긴 했지만 뭔가 급이 달랐고, 유치하다고
느꼈는지
여학생과 문제를 일으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얼굴이 뽀얗고 어깨가 네모진 바로
S-Nine이다
.
내가 궁금하게 여겼던 것은 그 애가 5학년에 올라가 순자선생님을 만난 후였다.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얼굴로 선생님 뒤에 반듯하게 서서 굉장히 모범적인 학생이 된 것이다.
순자선생님은 도대체
어떤
비법을 쓰신 것일까?
그날의 미션은 V자 금지, 모두 웃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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