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거짓말
처음으로 된 부반장은 별로였다.
당시 반장 송슨미 어머니의 디스크 수술로 남녀 부반장 어머니들께서 대소사를 관장해야했고, 엄마는 가끔 권K동 어머니와 만나 이것저것 의논하셨다. 다녀오시고 나면, 두 번 다시 임원에 나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나역시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그러다 내 12살 인생의 가장 큰 거짓말을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학급임원들은 매주 목요일 오후 6학년 교실에 모여 전교어린이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반별로 명패가 되어 있어서 반장, 부반장 중 2명은 꼭 참석해야 했다.
사실 나는 말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그런 큰 회의에서 의견을 낼 만큼 배포가 큰 스타일은 아니다. 회의에 가면, 맨날 하는 얘기는 똑같았다.
'복도에서 뛰지 말자' '좌측통행을 하자' '휴지를 줍자' '물을 절약하자 '이번 주 착한 어린이는 O학년O반 OOO입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나는 OOO이 복도에서 뛰는 것을 여러 번 봤는데, 착한 어린이라니......
어김없이 그날이 되었다. 유난히 더 가기 싫었다.
더군다나 우리들은 며칠 전부터 비밀스럽게 옥천동으로 방방이원정을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방방이는 추후 나에게 더 큰 사건으로 다가오는데, 아무튼 난 방방이를 무척 좋아했던 것 같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반장은 돈을 펑펑 썼다. 우리들은 택시를 타고 옥천동에 가서, 방방이를 타고 놀다가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호화로운 방과후 활동이었다.
모든 것이 자유로웠다. 남대천 굴다리 옆 방방이는 교1동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으며, 애들끼리 여기까지 와서 노는 것이 살짝 날나리 같은 스릴도 느끼게 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전교어린이회의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당초 우리 계획은 회의 전까지만 타고 학교로 돌아와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어찌 그리 빨리 갔는지, 회의는 벌써 시작했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마음은 점점 다급해졌다.
담당 선생님께서 교실로 나와 반장을 부르셨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큰 호탕소리는 처음 들었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한손으로 반장의 뺨을 잡으시고, 다른 한 손으로 순식간에 반대편 뺨을 때리셨다.
내 차례였다. 무언가 눈앞에서 찰나의 순간으로 번쩍이더니 나는 금세 교실 앞문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빨리 일어나지 않으면 더 혼날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한 차례 태풍이 지나갔다. 여전히 교실에선 또다른 일이 남아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어째서 회의에 빠졌는지 물어보셨다. 누군가 친구 집에 함께 다녀왔다고 했다. 뒤이어, 부반장인 나에게 확인을 하셨다.
"처음 가 본 집이라......파란 대문이....."
나는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여기서 방방이를 타고 왔다고 말하면 뺨을 한대 더 맞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려움에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 파란 대문은 어디에서 튀어나온 걸까?
선생님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내셨다. 평소처럼 울그락불그락 하시면서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런데 나는 죄책감은 커녕 그럴싸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했다는 생각에 살짝 들뜬 기분이었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대문을 막 들어서는데, 집에 손님 한분이 계셨다. 내가 뺨을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집 아랫 골목에 살던 빼꼼이어머니가 찾아오신 것이다. 뺨을 때린 담당선생님이 바로 빼꼼이아버지셨기 때문이다.
어디서 들으셨는지 내가 내동댕이쳐졌단 얘기에 다친 곳이 없는지 걱정되어서 오셨단다.
기억은 딱 여기까지다. 그 이후는 모르겠다.
내 기억 속 슨미는 다양한 버젼으로 존재한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5학년 때 슨미는 권력의 화신같은 존재였다. 여브레인이 한 번 반기를 든 적 있는데, 성공하진 못했던 것 같다.
우리들은 그렇게 작고 시덥잖은 일들로 매일 다투고 시기하고 동지가 되었다가 적이 되었다가를 반복했다.
한 번은 잉글랜드가 우리들 사이에서 인기남이 된 적이 있었는데, 키 순서로 나랑 짝꿍이 되는 바람에 나는 한동안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슨미와 나는 어릴 적 같은 교회를 다녔다. 물론 정원장도 잉글랜드도 잠깐 MARI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각기 다른 중학교를 다녔지만, 매주 만나 중등부 예배를 같이 다녔다.
그 시절 슨미는 권력의 화신이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아주 순한 양이었다. 나는 슨미가 본래 순한 양이었고, 5학년 때 잠깐 무서웠던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때 왜 그랬냐고 물어본 적은 없었다. 지금의 슨미가 좋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그렇다고 내가 신앙심이 막 깊어 성경을 줄줄 읽고, 기도를 좔좔 할 수 있는 그런 쪽은 아니였다.
우리는 유성슈퍼 앞에서 만나 금학동에 있는 교회까지 걸어갔는데, 가기 전에 꼭 들리는 곳이 있었다. 바로 '오락실'이다. 우리 둘은 보글보글을 즐겨했다. 누군가 BUBBLE BUBBLE이야 라고 말한다면 재미가 뚝 떨어지니 당연히 뽀글뽀글이다.
나는 왼쪽, 슨미는 오른쪽. 우리는 정말 손발이 척척 맞았다. 사탕을 사이좋게 나눠먹고, 신발을 서로 양보하면서, 지금 판에서 우산을 먹으면 손해라고, 다음 판에 영어가 많이 나오니 지금은 건너뛰자고.
오락실 안을 아무리 둘러봐도 여학생은 우리 둘 뿐이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보글보글의 세계에 심취했다. 심지어 학교 앞 영동 오락실은 새벽예배를 마친 아침 7시에 문을 연다는 사실도 알게 되어 몇 번 가기도 했다. 아마 주인아저씨는 우리가 비행 청소년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날들도 잠시. 어느날, 한 판 50원에서 100원으로 가격이 올랐다. 두 배 가격은 뭔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갈등했다.
다시 만난 슨미는 고3 교실이다. 여전히 순한 양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슨미와 왕래하지 않았다. 우리가 언제 보글보글 파트너였나 싶을 정도로 그냥 건너 편 분단에 앉은 친구 한 명이었다. 우리는 소원한 관계가 되었다.
그때의 나는 다른 무엇에도 관심이 없었고, 온통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가끔 강릉에 내려가 날짜가 맞으면 주일 예배에 갔다. 지금은 아니지만, 멀리 성가대 석에서 찬송을 하는 정원장의 모습을 보며 나혼자 안도했고, 혹시 슨미가 오지 않았을까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슨미를 만났다. 여전히 순한 양이다.
공부하던 일은 잘되어서 감정평가사를 땄고, 결혼도 했고 지금 임신 5개월이며 집에 잠깐 다니러 왔다고 했다.
나에게 아기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아직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성장했다.
몇 년 전 우리동네 대형마트에 '추억의 오락실' 코너가 생겼다. 보글보글은 그대로지만, 아쉽게도 슨미는 없다.
나의 새로운 파트너는 YOON이다. 사탕을 먹어라, 신발을 먹어라, 지금 풍선을 터트리면 안된다. 나의 현란한 손놀림에 아들은 사뭇 놀란 듯 했다.
"음하하하하. 봤냐? 엄마가 왕년에 Hangame에서도 TETRIS 신이였다구~"
보고싶다. 송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