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눈 앞에 네가 없다면
어려서 눈물을 쥐어짜본 적이 있던가 생각해 보면 딱 한 순간이 떠오르는 데, 그때는 바로 수련회였다. 중학교 수련회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강당에서 오랜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눈물 빨리 흘리기 시합을 하자 제안을 했다. 이런 어이없는 시합에 나는 얼떨결에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 당장 슬픈 생각을 해서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나는 패자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눈물을 흘렸기 때문. 그때 생각했던 것은 그 당시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된 외삼촌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가 우리가 놀러 오면 평소에 잘 못 먹던 통닭을 사준 기억, 그의 트럭을 보여주던 기억. 몇 없는 기억의 조각들 사이에서 나는 그를 내가 진심으로 가족처럼 좋아해 본 적이 없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왠지 모를 죄책감에 눈물이 나는 것이었다. 그냥 계속 눈을 꾹 감고 삼촌 죄송해요.. 죄송해요.. 만 몇번 읊조리고 그의 얼굴만 기억 속에서 더듬어 보니 눈물이 났다.
나는 가끔 내 옆에 있는 존재들이 사라지는 꿈, 죽는 꿈을 드문 드문 꾸곤 한다. 그리고 그 꿈에서의 나의 태도가 너무나 현실감 있어서 나는 늘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래서 현실에서도 내 눈앞에 있는 상대가 사라지면 나의 지금 세계가 얼마나 무너질지 상상한다. 사실 또 동생을 향한 사랑고백이 될까 봐 지금 글을 쓸까 말까 고민을 하게 되는데, 난 부모님보다 세현이 사라지면 더 무너질 것만 같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너무 쓰리고 괴롭다. 부모님은 애초부터 그저 생물학적 수명으로 나와 오래 같은 선상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직감했는지 나는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당연히 나의 세계는 허물어지겠지만, 영영 복구되지 않을 세계는 아닐 것이라 짐작한다. 부모님께서 안 계신다 생각하면, 사실 머릿속을 먼저 스치는 건 지독히 이기적 이게도 나의 삶이다. 심리적, 경제적으로 더욱 가난해질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는 사실에 또다시 내가 미워졌다.
하지만 세현은 나보다 나이가 적고 그가 먼저 떠난다고 생각하면 나는 너무 허망하고 영영 일어서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너무 유대감을 나누어버린 탓일까. 이 세계에서 내가 서있는 이유를 생각하면 나는 제일 먼저 세현의 이름을 댈 정도로 나는 그에게 너무 많이 의지를 한다. 내 세계는 전혀 복구되지 않을 것이다. 가끔 스산한 말투로 세현이 나는 이 세상에 미련이 처음부터 딱히 없었다는 말을 하면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다. 언젠가 홀연히 떠날 듯한 말투가 마치 나의 세계의 종말을 미리 알려주는 것 같아서 무섭다.
내 눈앞에 있는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머리를 아무리 깨부수어도 절대 자각에 이르지 못한다 생각한다. 결국 이별을 받아들여야,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이별에 대한 완전한 자각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늘 업보처럼, 늘 멍에처럼 지고 사는 것이 이별임을 배웠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언젠가 다가올 이별 앞에서 눈물이 나고 무섭나 보다. 세현이 눈앞에 사라지고 영영 못 본다 상상하는 지금도 코끝이 찡하다. 심각한 집착일까. 이별이 여전히 너무 무서워서 내 눈앞에서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할 바엔 내가 먼저 사라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울메이트들이 한날한시에 저세상에 가고 싶어 하는구나 하며 공감이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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