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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무으야우 Sep 15. 2023

EX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전 애인과 우정 쌓기 가능할까

전 애인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이렇게 진부한 주제가 따로 없지만,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일단 첫 번째로 나의 연애 경험이 양적으로도 그리고 질적으로도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각자 개인들의 역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나의 가치관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우선 그냥 남남으로 살기엔 쌓아온 시간이 아깝다. 이제 징그럽게도 오래 봤으니 볼만큼 봤다며 뒤돌아서기엔 내가 그에게, 그가 나에게 쏟은 시간이 너무 많았다. 서로 기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설명보다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서로 나눈 역사가 촘촘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설명이 필요 없는 관계는 어떤 관계든 간에 귀하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연애적 감정이 아닌 인간의 정만 남아 있는 관계라면, 서로 성적 매력이 들지 않고 감정의 소용돌이가 치지 않는 상황이라면 다시 우정으로의 복귀가 가능하다고 믿고, 그런 관계를 지향한다. 물론 예전만큼 자주 불러 내서 시간을 보내지 못하겠지만, (애초에 나는 친구들을 자주 불러내는 타입도 아니다.) 서로 썼던 시간과 마음 때문인지 나는 내 과거의 시간들을 쓴 사람을 그저 남남이라 칭하고, 그런 존재가 되는 건 어쩐지 서운하다.


덧붙여 관계가 해롭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찐한 우정이 가능한 사이가 아닐까. 그만큼 서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서로 더 이상 애인이 아니라 친구로 돌아가는, 아니면 다시 친구로 시작하게 되는 회복의 시간. 굳이 그런 시간까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냥 남남인 듯 사는 게 맞겠지만. 물론 어색하고, 더 이상 손은 안 잡고 있을 것이고, 굳이 내 감정과 상황을 하나하나 이해해주지 못한다 하여 예전만큼 서운해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서운해하더라도 그 감정은 나의 것이지, 그의 탓이 아니다.) 거리를 더 두고, 선을 좀 더 긋고 어딘가 꺼림칙하지만 만나면서 오래 서로를 붙잡지 않으며 프라이버시를 더 신경 써서 지켜주는 시간들이 쌓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남아있는, 쓸데없는 미련이나 정일 수도 있다. 지독한 정이 나를 괴롭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지금 솔로여서, 단지 삶이 조금 단조롭고 심심해서 괜히 지나간 인연을 건드려 보는 것일지도. 그러나 나는 고작 한 번의 이별이 나의 삶을 뒤흔들 정도가 아니라면, 솔직히 말해 첫사랑의 쓰라림 정도가 아니라면, 가끔씩 밥은 먹는, 안부만 서로 아는 관계로 지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이만큼 적고 보니, 나 어쩌면 진짜 사랑을 안 해본 철없는 소리를 적은 것 같다. 미래의 내가 이 글을 읽고 얼마나 괴로워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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