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무으야우 Nov 16. 2023

아무거나 쓰는 물건

무심할 수 있는 행운


'아무거나' 쓰는 물건은 그 물건과 상황에 대한 무던함을 보여준다. 조금의 취향이 있어도, 그 물건의 유용성이 더 우선이 되는 것들. 그런 무던함은 누군가에게 그저 무심함, 안일함 정도로 치부될 수 있겠다. 무심함의 근원은 몰취향이거나 무취향이거나. 내가 아무거나 쓰는 물건을 생각해 보았다.




- 치약, 샴푸, 폼클렌저 같은 세정제들


위생의 부분에서 나는 그렇게 높은 기준은 없는 것 같다. 꾸준히 청결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것을 돕는 수단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생각한다. 물론 나의 피부나 두피 같은 부분이 어떤 성분에 민감하지 않아서 더 아무거나 쓸 수 있는 축복(?)을 가진 거겠지만, 치약은 특히나 아무거나 쓰는 편이다. 물론 좀 더 상쾌하고, 맵지 않은 치약이 좋다는 선호 체계는 존재하지만, 이 치약이 없으면 안 되는 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건 빌리기 어려워해도 치약은 쉽게 빌리지 않나. 그만큼 위생이란 부분만큼 수단과 방법이 목적을 이기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 속옷


사실 고백하지만, 난 속옷도 정말 아무거나 입는 사람이다. 세트로 입는 사람, 면 같은 소재가 중요한 사람 등등 속옷은 조금 더 꼼꼼히 고를 필요가 있다는 사고에 동감하지만, 동생이 나에게 너는 도깨비 빤스를 줘도 입겠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말 속옷에 대한 선호가 크게 없다. 꽉 조이지만 않으면 된다는 유일한 기준이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속옷을 직접 입어보며 살 수 없지 않나.) 그리고 나는 n년째 노브라에 월경 시 탐폰 조합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브라에 대한 것도 너무나 모르고, 팬티도 중요한 부위만 잘 가리면 되지 않나.. 하는 그런 마인드이기 때문에 아무거나 쓰는 것 같다.




- 필기도구


예전에도 글을 쓴 적이 있는데, 필기도구도 아무거나 쓰는 편이다. 손에 쥐어지고 그저 지우거나, 써지면 된다는 조건만 있다. 필기구 시장에서 이런 취향 없는 사용자는 필기구 굿즈에 관심을 전혀 갖지 못한다. 예쁜 게 달리면 뭐 하나. 나는 그냥 써지면 되는 펜과 지워지는 지우개가 필요할 뿐.




적어보니 더 있을 것 같지만, 대체로 나는 생활필수품에 대해서 무난/무심한 것 같다. 그저 원래의 목적만 이행하면 되지 그렇게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 같은 인간이 전체주의국가에서 만약 생필품을 통일한다면 불만 없이 보급받은 것을 잘 쓰며 살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망상도 해본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무취향은 나의 현재 상태가 안온한 상태임을 알려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취향은 가끔 원치 않게도 결여와 불편에서 태어난다. 피부가 약해서 순한 세정제가 필요하고, 순한 면으로 만들어진 속옷이 필요하고, 손목이 약해서 가벼운 필기도구가 필요할 지도. 내가 무심한 이유는 "무심할 수 있어서" 무심한 거다. 








--










작가의 이전글 고전, 클래식함에 대한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