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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텐츠스튜디오H Apr 16. 2020

나쁜 사람이 벌 받는 게 아닙니다 2

갑질로 인한 징계는 결국 불가능

가해자는 경징계 의견으로 인사혁신처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이제 또 기다림의 시작이다. 가해자는 최소 견책 혹은 감봉까지 징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가해자에게 적용된 징계 규정은 ‘갑질’ 이 아니라 ‘공무원 품위 손상’이었다. 2018년 공무원 행동 강령에 ‘갑질’에 관한 항목(공무원 행동강령 13조 3)이 신설이 되고 그에 따른 처벌 규정도 마련되었지만 이 조직에서는 적용하지 않았다.  

<갑질 공무원 징계 강화>
□ 공무원의 ‘우월적 지위ㆍ권한을 남용하여 행한 부당행위(갑질)’에 대한 징계기준을 신설하고, 표창 등에 의한 징계 감경 대상에서 제외한다.
 
                                                                   2018년 12월 7일 인사혁신처 보도자료 중

지난 8월 우리는 갑질의 피해자로 뉴스에 보도되었고 이 보도로 인해 공무원의 품위가 손상되었기 때문에 가해자에게 징계를 내린다는 것이었다. 결국 보도가 되지 않았더라면 징계는 논의조차 되기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이런 게 가슴을 쓸어내린다는 것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요만큼'이 부족해요

가해자는 분명 나쁜 사람이지만 법은 어기지 않았기 때문에 갑질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를 가리키며 '요만큼'이 부족하다고 했다. 지우개 정도의'요만큼'이 부족하다면 나머지 기다란 연필이 있지 않은가. 감사실에서는 갑질로 인한 징계를 피하기 위해 그동안 '요만큼'을 찾아 헤맨 것 같았다. 분명 조직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 보다는 '은폐'에 가까운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분명 법이 있었고 처벌할 근거도 있었다. 조직에서 이런 선택을 한 이유가 ‘중앙 부처 갑질 징계 1호’라는 타이틀을 피하고 싶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나의 이야기가 9시 뉴스에 나오다

뉴스 보도는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다.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었고 자칫 이 보도로 인해 조직 내에서 우리에 대한 여론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피해자’로 뉴스에 나온다는 건 내 자존감에도 큰 상처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출연을 결정하고 뉴스는 보도가 되었고 결국 이 보도로 인해 가해자의 징계가 가능해졌다.

게다가 뉴스를 본 많은 사람들이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며 그제야 문제를 좀 더 디테일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예전에 더 했어’ 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가 처한 상황을 깎아내렸던 말들도 줄어들었다.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면 안 되는 말이었고 예전보다 나아진 게 아니라 원래 그러면 안 되는 행동이라는 것을 이렇게 온 힘을 다해서 증명해내야만 했던 것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피해를 당했다고 아프고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아무리 외쳐도 제3자인 기자가 전하는 2분 30초의 보도 한 번으로 사람들은 이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씁쓸하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다른 팀 사무관은 먼저 다가와 그동안 힘든 걸 너무 몰라서 미안하다며 사과까지 했다.

사람들가해자의 적나라한 폭언들을 직접 듣고 나서야 나의 분노와 슬픔과 공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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