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GPT로 쓴 자소서를 그대로 보내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올해 180건의 자기소개서를 첨삭했는데 날이 갈수록 AI 필체가 늘어나고 있다. 채용기간이 맞물리면서 지원자들이 여러 기업의 자소서를 한꺼번에 쓰다 보니, AI의 도움을 받는 듯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대다수의 지원자들은 '티가 난다'는 걸 모른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력서를 많이 검토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GPT 특유의 필체를 알아볼 수 있다. 나조차 자소서를 받아 본 후 3분 이내로 GPT를 사용했는지 파악한다.
그 이유는 모호한 표현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시를 정리하자면
- 깊은 관심 : 얼마나 깊은 걸까. GPT는 대체로 깊은 관심 때문에 지원했다고 작성한다.
- 열망 : 특유의 오글거리는 단어들이 생성된다.
- 경험은 저에게 뭘 주었습니다 : 자꾸 경험이 뭘 줬다고 의인화한다.
- 궁극적으로 : 최종장을 말할 때나 쓰는 단어이다. 신입사원이 궁극을 논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 제 목표입니다 : 사람이 직접 쓴 자기소개서에는 '제'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위 단어들은 GPT의 버릇이다. 정리가 매끄럽지 않은 글을 어떻게든 그럴싸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용어이기도 하다. 문장 자체에는 어색함이 없지만, 반복적으로 생성하기 때문에 AI를 사용했는지 대번에 알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러니 만약 저런 단어들이 보인다면 무조건 수정하자. '깊은 관심'이 아니라 어느 정도로 관심을 가졌는지 조사한 내용을 근거로 제시하고, 열망은 도대체 얼마나 간절한지, 그리고 궁극은 정확히 어느 시점인지 표현해야 한다.
과연 GPT로 자소서를 써도 되는 것일까? 이 질문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직접 쓴 글이 아니라서 안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일단 첨삭 서비스를 운영하는 나는 사용해도 된다에 한 표를 던지는 입장이다.
특히나 취업을 처음 준비하는 취준생들 중 문장력이 부족해서 역량을 충분히 어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첨삭이든 AI든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오히려 시대의 트렌드, 기술을 유용하게 잘 활용하는 측면에서 '업무 효율과 성과 지향적인 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이렇게라도 해결하지 않은 채, 엉성한 글을 그대로 제출하는 것보다 낫다고 본다.
단 두 가지는 예외이다. 첫째, 거짓이나 과장이 포함되면 안 된다. 이건 AI 사용 유무의 문제가 아니다. 지원자가 100% 직접 자소서를 쓰더라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둘째, 글쓰기 능력이 비교적 중요한 직무라면 입장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나는 기술 계열만 첨삭하고 있어서 글쓰기를 필수역량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인문 계열이라면 평가 기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기술계열 지원자에 한해서 거짓과 과장이 없다면 GPT를 사용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기술 직무라면, 실무에서도 내가 보유한 지식보다 외부에서 정보를 얻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측면에서 GPT를 적절히 이용한다면 실무를 유연하게 수행할 수 있는 지원자가 아닐까. 자소서를 읽는 면접관들도 지원자의 인성과 적성을 깔끔한 글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AI는 이제 일상 전반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 흐름의 단점을 찾을 게 아니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직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