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연말. 우리 회사는 보통 정년을 채우기 때문에 30여 년을 근무하신 선배님 몇 분이 곧 정년퇴직을 하신다. 내 또래에서는 40대든 50대이든 중년의 어느 순간이 오면 경제적 자유를 이뤄 회사를 떠나는 게 소원 중 하나지만, 60에 접어드는 선배님들께는 회사를 떠나는 게 못내 아쉬우신 모양이다.
그래서 묻고 싶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사세요?" 누구든 이 질문을 받으면 곰곰이 생각하다가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행복하게 살려고." 행복이란 게 대체 뭐길래 다들 집착을 하는 것일까, 어쩌면 사랑보다도 더 구체화되지 않는 게 행복이라 생각한다. 과연 행복은 목표가 될 수 있을까?
최근에 읽은 책 <행복의 기원>은 한 가지 흥미로운 관점을 던져왔다. '행복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어느 유튜브에 등장한 저 문장을 통 이해하지 못해 책을 읽었다. 다들 행복하려고 열심히 살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책을 끝까지 읽어야 했다.
인류는 약 20만 년 전 등장한 동물이다.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구인류를 통틀면 200~300만 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대 문명은 그에 비해 아주 짧기 그지없다. 컴퓨터는 고사하고 자본주의, 그 이전에 돈, 집, 음식 등 이런 물질이 생겨난 것도 짧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집에서 돈도 넉넉하니, 맛있는 걸 먹으며 지내는 모습이다. 과연 몇 만년 숙성된 인류의 뇌는 이것을 어떻게 판단할까? 과연 '행복'이라는 것이 정말 물질에 가치를 두는 것일까?
'돈이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단순히 돈이라고 칭했지만 모든 사람이 '물질'이 곧 행복이 아니라는 뜻을 이해하고 있다. 이 부분은 맞다고 확신한다. 만약 정말 물질이 100% 행복과 연관된다면 부자들은 무조건 행복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행복'이 단 하나에만 영향을 받지 않고 1. 여러 가지의 종합적인 가치이거나 2. 지속성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돈은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없거나, 복권에 당첨되어도 몇 달이 지나면 감정이 식는 것과 같다.
책 <행복의 기원>은 조금 더 들어가 행복은 '본능'에 관련된 것이라고 말한다. 수 만년 동안 진화를 하며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그것들을 성취할 때 뇌에서 행복감을 뿌린다고 한다. 특히나 번식과 관련된 섹스나 스킨십, 생존의 필수인 먹는 행위를 할 때 느끼는 쾌락이 곧 행복이라 말한다.
결국엔 쾌락/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곧 행복과 연관되는 셈이다. 또한 즐거움은 일순간 누리는 감정이기 때문에 빈번하게 즐거움의 행위들을 한다면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책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을 추천한다.
이처럼 행복은 목표가 되기보다는 삶(생존)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는 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생존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인 행위들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니. '열심히 일을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가 아니라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행복할 기회들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고민하게 된다.
이 고민의 답은 딱 하나다. '내가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을 받고 있느냐' 내가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만 있다면 지금 열심히 일하고, 훗날 그 보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다니며 건강도 챙기고 훌륭하게 잘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 것에 비해 보상을 충분히 받지 못한다면 심각하게 현재를 검토해야 한다.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 현재도 행복의 기회들을 놓치고 있는 마당에, 미래에도 행복할 가능성을 영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생존에 필요한 돈은 점점 늘어나는 게 당연하고, 생존할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 과연 나는 미래에 행복을 누릴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없다면 삶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