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 나는 오늘 두 번 헤어졌다. 지난 2월에 그 친구와 헤어지면서 이런 대화를 나눴었다. "서로 생각이 같아지면 다시 만나자." 우리는 4시간에 달하는 장거리 연애를 1년 반 동안 이어오면서 지칠 대로 지쳤었고, 서로 본업과 더불어 사업을 준비하던 단계였기에 방황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에 선택한 잠시 동안의 연애 멈춤. 헤어진 건 맞지만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남쪽 끝자락에 사는 나는 본가도 서울, 연애도 서울 사람과 했었다. 고로, 꿈꾸는 시나리오는 퇴직 후 서울 상경. 헤어진 후 부업으로 키워왔던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앞으로 네 달 뒤면 퇴직 후 서울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계획이 잡힌 시기가 마침 연말이라 안부 차 '잠시 멈춤'이라 생각한 옛 애인에게 안부차 연락을 했다.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물론 다시 만날 걸 100% 염두에 두고 한 연락은 아니었다. 그 친구의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면 그만이라는 생각, 그리고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인생에 있어 서로 좋은 사람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는 인사, 삶이 힘들 때면 언제든 네 편이 되어줄 거라는 확언을 하기 위해 연락을 했다. 뭐, 솔직히 말하면 지금 상태로는 '헤어진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이 친구는 내 연락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우리의 맺음말처럼 생각이 같아져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기대가 섞인 인사를 건넸다. 몇 시간이 흐르고 새벽 한 시, 답장이 돌아왔다. "오랜만이야. 잘 지내고 있어. 너는 어때?" 생각 이상으로 밝은 멘트가 내 기대감을 올렸다. 새벽이니 바로 답장하지 못하고 아침에 되어서야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다시 몇 시간이 지나도록 통 연락이 오지 않았다. 대체 어찌 된 일인가, 회의를 하면서도, 점심을 먹으면서도 카톡만 몇 번이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오후 3시 무렵, 장문의 톡이 왔다. 우리의 끝맺음이 아쉬웠다는 말과 함께 나만큼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말, 그리고 나는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니 진심으로 잘됐으면 하는 바람, 존경과 감사가 섞인 문장들.
그렇게 나는 두 번 헤어졌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아무리 "다시 만나자"라는 말로 끝을 맺었어도 무려 10개월이 지나도록 연락 한 번 안 해놓고 기대를 품었다는 게 나 스스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만큼 나는 이 친구를 배려하지 못한 걸까. 나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답답했는지 꾸짖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터 다시 연애를 시작했는지, 그 시점을 알아야 내가 언제 연락을 했어야 다시 만날 수 있었을지, 묻고 싶은 속내는 기어이 끌어내리고 고맙다는 인사로 다른 길을 걷기로 했다.
솔직히 마음이 이상하다. 여태 네 번의 연애를 해오면서 미련이 남거나 후련하거나 둘 중 하나로 마음이 쓰였는데 이번에는 도무지 마음을 알 수 없다. 이 친구가 좋은 분을 만나고 있는 말에, 더구나 문장에서 느껴지는 불행 없는 연애 생활에 대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다. 축하와 함께 다행이라고, 오히려 기쁘다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 몰려오는 슬픔은 대체 이유를 알 수 없다.
왜 그런 것일까. 이미 지난 2월에 헤어졌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에 와서야 또 한 번 더 헤어진 기분은 무엇일까. 모든 일을 멈추고 마음을 추스르는 사이, 내 연락을 받은 친구가 이런 말을 건네 왔다. "전에 헤어질 때는 그런 어정쩡한 이별이 덜 아팠으나, 돌아갈 곳이 없어진 현실을 느끼면 더 아픈 거지 뭐." 전적으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난 이별에 충분히 아프지 않았으므로, 돌아갈 곳을 당연히 여겼으므로 더 큰 슬픔을 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