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게이입니다. 여기에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이별을 겪고도 어느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랑했나 봅니다.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을 했는데, 그리고 더 이상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슬픈데 말을 꺼낼 수가 없습니다.
회사에서 회의를 하다가 이별을 즉시 했습니다. "생각이 같아지면 다시 만나자"는 말로 헤어진 지 10개월. 각자의 삶을 충실히 꾸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젊음과 안정 사이, 그 중간에서 미래를 담보로 줄을 타는 시기니까요.
저는 지방 생활을 접고 본가가 있는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 역시 억센 부동산 중개업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편도로 4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연애는 서로의 미래를 희생하게 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나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 평일에는 회사 업무로 방전되었다면, 주말에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예비 배터리마저 소진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얼굴은 항상 웃고 있었지만 저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어 이별을 택했습니다.
10개월이 지난 뒤에야 내 젊음과 안정 사이의 가느다란 연결 줄을 잡았는데, 그리고 그 친구를 위해 이제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시점이 되었는데, 그 친구는 이미 저만큼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행복해 보여서 너무 기분이 좋았는데, 마음 어딘가 슬퍼집니다.
제 생각이 모자랐습니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그토록 힘들다면, 나 혼자 발버둥 치는 게 아니라 도움받을 수도 있는 거라고. 그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게 사랑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서로가 부족한 행복을 채워주는 존재였습니다. 내가 나를 잃어간다면, 나의 절반인 그 친구가 나를 찾아줬을 텐데 말이죠.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허용되지 않은 동성결혼. 그 친구와 그렸던 소박한 결혼식 모습이 떠오릅니다. 커밍아웃한 몇 안 되는 친구들과 지인들, 따뜻한 햇살 아래서 모두의 행복을 축복하는 자리, 그런 모습이 왜 떠오르는지 알 수 없습니다.
몇 번의 연애 끝에,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래서 생각을 줄이는 게 답이라는 걸 알지만, 저절로 떠오르는 그 친구의 웃는 얼굴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이 또한 몇 번의 연애 끝에, 모두의 사랑이, 모두의 이별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진정으로 슬픈 것은 그 친구와의 사랑이 저에게만 남아있는 현실입니다. 여느 사랑과 달리 친구들을 소개해주거나, 회사에서 연애한다는 말을 꺼냈다거나 그러질 못했습니다. 그 친구를 추억하려면 일상의 대화를 닫고 혼자서 머릿속을 헤매어야 합니다.
이별을 즉시 한 지금도 혼자서 이틀을 삭히다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적어도 이곳은 익명으로 마음껏 말할 수 있는 자리니까요. 제가 힘든 만큼 모두의 이별도 힘들다고, 욕심과 후회도 생긴다고 듣고 싶습니다. 모두의 사랑이 같고, 저와 그 친구의 사랑도 충분히 축복받을만했다고 위로받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