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른고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아오 Jan 12. 2022

손톱 밑 거스러미처럼 신경쓰이는 조언

어쩌다 지난 주말, 전 애인을 만나고 왔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갑내기인 우리는 40세쯤엔 경제적 자유를 이루자는 목표가 있다. 그래서 각자의 성장을 위해 도울 부분들은 도우며 이따금 연락을 주고받기로 했다.


식당에 도착해 그 친구가 꺼낸 첫마디는 이랬다. "못 본 새 얼굴이 좋아졌네." 너 때문에 마음고생했다는 말을 꾹 참고 말을 받아쳤다. "너는 살이 많이 빠졌네." 좋은 의미로 대답을 했지만, 마스크를 벗은 그 친구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어딘가 모르게 푸석해진 피부, 어린 티가 났던 생기보다는 어른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빛깔, 손톱 밑으로 일어난 거스러미. '얘, 자기는 관리하고 있는 거 맞아?'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스러미 뜯어줄까?"라는 어처구니없는 말로 안부를 끝냈다.


20대 초반, 일찍이 사업을 꾸리던 나는 협업 관계에 있던 어느 대표님께 한 소리를 들었다. 첫 만남에서 대표님이 "아이고, 인물이 훤칠하시네요."라고 말을 건네 왔지만 나는 웃으면서 그만 "아니에요."라고 답한 것. 대표님께서는 칭찬을 받으면 나도 칭찬을 해줘야 서로 기분 좋은 관계가 된다고 조언해주셨다.


전 애인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동안 서로 격려와 응원, 오해를 푸는 좋은 말들로만 시간이 채워졌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셨던 '서로 좋은 관계'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조심한 것일까. 어쩌면 심기를 건드리는 말은 꺼내지 않는 게 도리일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에겐 이미 좋은 상대가 있고, 그 친구의 걱정은 그분의 몫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이기에, 지난 주말의 만남을 잊기 전에 몇 가지 말들을 기록한다.




나의 2022년 목표는 '건강하고 올바르게'이다. 나 또한 아직 그렇지 않기 때문에 목표를 잡은 것이니, 노력하는 중이다. 우리는 '경제적 자유'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지만 단순히 '경제'나 '자유'라는 단어에만 꽂혀서 다른 것들을 놓치면 안 된다. 조급해하지 않길 바라며.



1. 건강

얼굴은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그 사람의 지난 세월은 물론이고, 성향이나 건강까지 쉽게 드러나는 신체 부위라 할 수 있다. 생기가 돌지 않는다면 건강이 좋지 않거나 어딘가에 매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목표를 추구함에 있어 정기적으로 자신을 점검하지 않으면 내 상태가 어떤지 알 턱이 없다.


작년 여름쯤, 한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암에 걸렸다는 소식이었는데, 겉으로만 보면 너무나 건강하고 씩씩한 친구였기에 의외의 소식이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평생 하지 않던 건강검진을 배가 아파서 받게 되었는데 암이 초기에 발견된 것이다. 정말 검진이 중요하다.


나도 작년에는 내시경을 비롯해 정밀 건강검진을 받았다. 위가 썩 튼튼하지 않고, 위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니 먹는 것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었다. 그 후로 인스턴트를 확 줄이고, 유산균을 꾸준히 챙겨 먹는다. 1년 365일 중 200일 정도는 점심으로 샐러드를 먹었고, 그 좋아하던 맥주도 멀리하고 있다.


조금은 유난이라 보일 수도 있지만, 건강을 챙길 때는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김종국 씨의 말처럼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연애 당시 아침을 거르고 편의점으로 끼니를 때우던 모습이 아직도 신경 쓰인다. 부디 이제는 잘 챙겨 먹길.



2. 정신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옛말이 있다. 나는 솔직히 반대로 생각하지만, 여하튼 몸만큼 중요한 게 정신 건강이다. 밥을 먹다 말고, 전 애인이 머리가 종종 아프다고 말했다. 한약 때문인지 다른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아픈 게 심해지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2019년, 입사 후 부서 배치를 받은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목 뒤가 뻐근하더니 두통이 심하게 왔다. 눕지도, 앉지도, 서지도 못할 정도였으니 병원을 가다가 머리를 쥐어 잡고 길바닥에 쓰러질 정도였다. 이때 처음 알게 된 게 '뇌 영상과'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지내는 지방에는 없었기에, 급하게 서울로 올라가 MRI부터 정밀 검사를 싹 받았다. 다행히 큰 문제가 아니었다. 신경이 눌려 그렇다는 말에, 약을 먹으면서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그러고 나서 사흘은 꼬박 고생했는데 스트레스든 스트레칭이든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년에는 심리상담실을 찾았었다. '나를 잃어가는 느낌'부터 진로에 관한 걱정, 번아웃 증상이 겹쳐 막막한 시기였다. 이게 스트레스로 이어졌는데 뇌파 검사를 해보니 웬만한 부장님들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게 나왔었다. 상담사님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는 장기적으로 만나자며 세 달 가까이 상담을 계획하셨다.


결과적으로는 심리 상담받길 참 잘했다. 내 성향을 나 스스로가 인지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것에서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등등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경력 20년이 넘는 상담사님께서 특별한 말을 해주셨는데 그 말이 내 정체성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방어기제가 없는 사람 처음 봐요. 무슨 성인도 아니고." 방어기제를 어느 정도 구축해야겠지만, 부족하더라도 올바른 선택들을 할 수만 있다면 정말 감사할 뿐이다. 서른 평생 무너져도 다시 바르게 일어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2022년 목표가 정해졌다.)


상담을 마친 뒤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명상을 하거나 달리기를 한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내면을 들여다본다거나 자아를 찾는다거나 이런 어려운 이야기보다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어서" 좋았다. 만약 스트레스가 나를 뒤덮은 상황이라면 그 어떤 고민들보다 일단 스트레스를 날리자.


참고로, 명상을 생각하면 가부좌 자세를 많이 떠올리지만 나에게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하는 게 좋다. 심지어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 머리맡에 명상 유튜브를 틀어놔도 좋다. 소곤소곤 들리는 소리에 맞춰 호흡을 하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면, 그보다 더 안락한 행복이 있을까.



3. 독서와 운동

독서는 전 애인에게 많이 자극을 받았다. 매일 한 권을 읽을 계획이랬나. 꽤나 빠르게 읽은 편인 나조차 하루 한 권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서점을 가면 졸던 사람이 이제는 하루 한 권을 읽을 계획을 세웠다. 정말 대단하다.


작년에 나는 50권이 조금 안 되는 책들을 읽었다. 여기서 중요한 게, 한 가지 분야에만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 친구와 나는 투자 멘토로 블로거 "이야기꾼"님을 팔로우하고 있는데, 이야기꾼님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게 있다.

 

"투자를 잘하기 위해서 투자 서적과 경제 서적만 탐독하는 사람은 망치를 든 사람이다"라는 찰리 멍거의 유명한 말이다. 어떤 의미냐면, 망치를 든 사람은 모든 문제가 못으로만 보인다는 것인데 여러 지식 체계가 연결되어야 오류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말씀을 하신다.


정말 옳거니, 맞는 말일 수밖에 없다. 작년에 읽은 책들이 모두 다른 분야였는데 '좋다고 알려진 책들'을 찾아서 읽다 보니 결국엔 이어지는 내용이 많았다. 마케팅 책 <스틱>은 켈리최님의 책에서 등장하고,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이야기꾼님 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자주 인용된다. 홍정욱의 <50 에세이>에서는 <논어>가 나오고, 제프베조스의 < Invent&Wander>의 맥락이 <디커플링>에서 이어지기도 한다.


독서하는 습관을 길렀다면, 분야를 확장해보자. 1일 1독을 할 정도라면 <수호지>나 <고구려>, <해리포터> 같은 소설을 읽어도 좋고, <코스모스>나 <이기적 유전자> 같은 전문 서적을 찾아봐도 좋다. 왜 이렇게 분야가 뒤죽박죽일까?를 묻는다면 '편향되지 않기 위해'라고 답한다. 특히나 알고리즘으로 일상이 결정되는 요즘 시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가 이 부분을 잘 꼬집었는데, 꼭 한 번 보기를 추천한다.


간략히 설명하면 이렇다. 유튜브든 페이스북이든 광고 매출을 올리기 위해선 구독자의 시청 시간을 늘려야 한다. 좌파든 우파든 한쪽 성향을 가진 구독자가 영상 하나를 클릭하는 순간 알고리즘은 이 사람이 보기 좋아할 동일한 성향의 영상들만 노출한다. 맞춤 설정된 노출이 반복되면 구독자는 편향된 정보가 '다수의 생각'이라 여기게 된다. 이걸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


이런 편향적 오류를 제거하고, 스스로 매몰되지 않기 위해선 정말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고르게 읽어야 한다. 이 부분은 전 애인이든 나든 잘 이행할 것이라 생각한다. 혹여 한쪽으로 쏠릴 때가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일침을 가해줘야겠다.


운동도 결이 비슷하다. 다양한 운동을 하면 참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 지금은 웨이트와 달리기만 하고 있는 나조차 요가나 등산, 수영 같은 다른 운동의 필요성을 체감한다. 속으로는 '한 가지라도 하는 게 어디야'라는 마음이 크지만, 노력해야겠다.


앞서 이야기한 건강한 정신, 건강한 신체의 맥락이 여기서 끝난다. 명상이든 독서든 정신을 아무리 리필해도 신체가 받쳐주지 못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바른 정신을 가졌다면 몸의 중요성을 인지할 테고, 식습관과 더불어 운동도 차츰 잘해나가리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본 전 애인의 얼굴에서 잠깐이나마 떠올린 생각들을 이렇게 정리했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지만 훗날엔 나도 다시 한번 글을 정독해야겠다. 내가 쓰고서는 내가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조급해하지 말자. 지금껏 잘 일어섰고, 잘 견뎌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 사랑도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