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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Feb 07. 2022

6년 만에 옛애인을 만나서 이사를 도왔다.

이상할지 모르지만, 나는 헤어진 애인들과 몇 년에 한 번씩 안부를 주고받는다. 어느 때는 상대가 먼저, 어느 때는 내가 먼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과거에 미련이 남아서 연락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는 정으로 인연이 이어진다. 가족보다는 멀지만 친구보다는 가까운 느낌. 그 정도의 위치에서 신의를 지킨다. 과거 한 시점에는 서로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했던 사람이니, 그 시점에서만큼은 가족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네 번의 연애 중 한 사람을 만났다. 어쩌다 닿게 된 연락. 연락조차 2년 만이라 급작스러웠지만 둘 다 할 일이 없어 빈둥대고 있었으므로 저녁 약속을 잡았다. 2016년에 헤어진 뒤로 처음 보는 상황. 그저 카톡 같은 연락과는 아예 다른 낯섦이 있었다. 약속 장소에 가까워지자 6년 간 얼마나 달라졌을지, 그리고 나 역시 얼마나 다르게 보일지 약간의 두려움이 뒤섞였다. (여기서부턴 조심히 읽자. 나는 게이라서, 상대의 호칭이 '형'으로 등장할 수 있다. 놀라지 말자.)


동탄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자 의자에 앉아있는 S가 보였다. 솔직히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긴가민가 했다. 그의 특유한 분위기가 없어졌더라면, 아마 단 번에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2015년 처음 만날 당시,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의 오라(분위기)를 봤다. 지하철 개찰구를 나서는데 한 남자에게서 노랗고 하얀빛이 났던 것. 속으로 '저런 사람은 누구를 만날까.' 생각하며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톡톡 건드리는데, 오라가 뿜어져 나왔던 그 남자가 "안녕하세요. 저예요."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신기하게도 S에게는 아직도 오라가 남아있었다. 다만 노랗고 하얀빛이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 풍겨 나왔다. 설렘이나 광채가 아니라, 한껏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느끼는 그런 안정감. 반가웠다. 서로 어떤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멋쩍었는지 "잘 지냈어?"라는 단출한 말과 악수로 반가움을 대신했다. 그리곤 식당을 찾아 역을 빠져나가기 전까지 둘 다 "동탄은 뭐가 유명해?" 같은 밋밋하고 아무 의미 없는 소리만 내뱉었다.


지난 6년 간 S와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오라가 있다는 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대변했지만, S의 좋은 차를 타고 역을 빠져나가는 순간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한다'는 말도 실감이 났다. 우리가 연애할 당시에는 둘 다 어떤 '준비생'이었니 말이다. 나는 알바를 하면서 시나리오 작가를 준비하고 있었고, S는 회계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단 두 번을 빼놓고 모든 데이트가 S의 4평 남짓한 원룸에서 이뤄졌다. 저렴한 밥집과 천 원짜리 빅사이즈 과일음료는 우리의 주요 식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게 무슨 자동차란 말인가. 더구나 S는 30-40평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있었다.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 중이었으므로, 우리는 저녁을 먹고 나서 오붓한 티타임 대신 현장 방문 코스를 잡았다. 다이소에 들러 20m 줄자를 사고 방문한 현장. 거실과 방의 사이즈를 재면서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가구는 뭘 놓으면 좋을지 얘기하다가 문득 '와, 6년 전엔 이불 하나 놓기에도 빡빡했던 원룸에 살았었는데.'라는 말이 나왔다. 그 순간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더 이상 어떤 준비생이 아니라 사회의 중추로 진입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달달한 멜로를 기대한 분이 계신다면 미리 알린다. 없다. 어른이 된 우리는 감정보다는 현실에 타협하는 대화들을 나눴고, 그 속에서 우리의 사회적 모습도 발견하게 되었다. 먼저 꺼낼 주제는 투잡이다. 나는 제철소에서 IT 엔지니어로 일을 하고 있지만, 상경을 위해 온라인 셀러로 투잡을 벌이고 있다. S는 어떨까? 그는 뚜렷하게 원잡러로 보이지만 실은 주말마다 전국 곳곳을 누비는 여행가가 되었다. 본인은 그저 드라이브와 먼 곳으로 떠나는 게 좋다고 말하는데, 내 눈에는 틀림없는 여행가이다. 생각해보자. 어느 30대가 매주 모험심을 가득 안고 탐험을 떠난다 말인가. 이렇게 우리는 본업과 별개로 자신의 두 번째 역할을 만들어냈다.


다음 주제는 사투리다. S는 19살까지 경상도에서 지낸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이다. 반면에 나는 살갑고 리액션도 많은 전형적인 서울 사람으로, 둘이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이번에 알게 된 것은 '사투리'가 불편함을 더 고조시킨다는 점이다. S가 나름 서울에 10여 년을 살았지만 이따금 묻어나는 사투리 억양은 종종 알아듣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그러면 나는 그냥 웃어넘기거나, 되물었는데 둘 다 경상도 남자에게는 썩 좋은 반응이 아닌 것 같다. 어제도 알아듣기 어려운 상황이 몇 차례 있었지만 서로 어떤 불편함을 드러내기보다는 한 번 더 말해주거나, 눈치껏 알아들으면서 서로를 배려했다. 아마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은 점점 너그러워지나 보다.


'인생도처유상수'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삶의 가는 곳마다 고수가 있다는 뜻이다. 아파트 이사 준비를 마무리하고 나서 S가 현재 살고 있는 오피스텔로 향했다. 오피스텔도 이삿짐을 싸던 중이라 어수선했는데, 책장에 꽂힌 책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재무, 경제, 금융 어쩌고. 그러고 보니 S는 명문대에서 회계사를 준비하지 않았었나! 심지어 회사 부서도 재무팀이었다. 여태 그저 준비생에서 직장인이 된 정도로 생각했는데, 경제 전문가가 바로 옆에 있었다. 뭐 물론 현실과는 괴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고수의 반열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부의 가치관을 배울 순 없다. 경제를 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분야'를 이해하는 정도를 뜻하는 것이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뜻하는 가치관과는 또 다른 얘기다. 어제 하루 만난 것만으로도 S와 나의 경제적 가치관이 정반대 성향으로 느껴졌다. 뭐가 옳고 그른 게 아니라, 경상도 남자와 서울남자가 성격상 다른 부분이 있듯, 가치관도 다를 뿐이다. 그러나 경제를 공부하는 것, 사회를 얘기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둘의 공통 영역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영역을 공유하면서 인연을 이어온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것은 '교양'이다. 나는 사람에게서, 특히 연인에게서 어떤 습성을 곧잘 배운다. S에게는 '길에 쓰레기를 절대 버리지 않는 것'을 배웠다. 스물다섯이었던 나는, 이 행동 하나만으로도 교양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철저히 지켜왔고, 지금은 노력하지 않아도 내 습성이 되었다. 그리고 어제는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교양'을 배웠다.


어쩌다 불쑥 나온 한 마디. "시골스럽고 순박하니까 좋지 않아?" 나를 두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S는 나에게 그런 순박한 매력을 느꼈었나 보다. 나는 내 외모나 행동에서 서울스러움을 찾지 못해 종종 아쉬움을 가지는데, 이 모습 그대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니. 어제는 나도 S의 무뚝뚝한 행동들이 십분 이해가 되면서, 그게 S의 있는 그대로 모습이란 것, 누가 바꾸려 애쓰면 안 되는 것, 오히려 S만의 매력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6년 만에 만난 어제 하루. 그간 달라진 환경만큼이나 서로에게 새롭게 발견한 모습들이 묘하게 다가왔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차츰 사람과 세상을 배우며 성장해나가는 게 아닐까. 이상한 마무리이지만, 안부를 주고받는 옛 연인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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