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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Apr 29. 2022

내가 여전히 착하다면 사랑한 게 아니다

2020년 5월, 충남 예산에 있는 수덕사에 올랐다. 정확히는 어떤 데이트를 할까 고민하다 템플스테이라면 색다르겠다는 생각이었다. H의 차를 타고 꽤 먼 거리를 이동해 도착한 절에는 사람들이 붐볐다. 인파를 피해 안내소 같은 곳에 들러 템플스테이가 어떻게 진행되나 묻자, "자유롭게 휴식하시면 돼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108배 기도나 스님을 따라 걷는 명상 산책  같은 걸 잔뜩 기대한 나는 한 풀 꺾여 돌아섰다.


짐을 풀자, H가 나를 이끌고 산에 올랐다. 나는 금방 활기가 생겨 편한 바지로 갈아입은 뒤, 카메라와 짐벌을 챙겨 나섰다. '그래. 여기서 영상이라도 잔뜩 찍어가야겠다' 당시에 영상편집이 취미였던 터라, 절 곳곳의 낯선 풍경들은 죄다 새로운 영상 소재가 되었다. 오르막 중간에 있는 돌탑을 얼마나 촬영했을까. 나무늘보에 준할 정도로 느긋한 H가 이제 올라가자고 한다. 하늘을 보니 아이쿠, 벌써 어두워지네. 우리는 정상까지도 못 오르고 정상 비스무리한 곳에서 하산했다.


다음 날 아침엔 새벽 4시 반쯤 기상했다. 이곳 일출이 그렇게 멋있다고, 어제 못 올랐던 정상에서 일출을 보겠노라, 둘 다 큰 다짐을 한 결과였다. 다행히 정상 부근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하단다. 씻지 않은 몰골로 H가 운전대를 잡았다. 그렇게 어두운 산길을 오르는데, 이상하게 갈수록 길이 좁아졌다. 경사가 가파르고 흙길이 나오고, 점점 풀과 뒤섞이니 우리는 잘못 올라섰다는 걸 직감했다. "되돌아갈까?" 말을 내뱉고 뒤를 보자, 후진하다가 골로 가겠는 걸, 어떻게 이만큼이나 가파른 길을 뚫고 올라왔는지 겁이 났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일단 직진하기로 했다. H는 부동산 중개인답게 운전을 기가 막히게 잘했는데, 여기서 실력이 제대로 발휘됐다. 다행히 길이 끊기지 않고 어떻게든 정상 부근까지 이어졌다. 숨을 고르고 주변을 살펴보자, 잘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가 있었다. 역시 길을 잘못 들었다는 분노와 함께 내려갈 땐 다행이라는 안도가 섞여 한숨이 절로 났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날 날씨가 퍽 좋지 않아 일출은커녕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H와 나, 둘의 사진만 몇 장 찍고는 하산했다. 하산 이후에는 스님과 대화할 시간이 있었는데, 정식 프로그램이 아닌 터라, 스님은 불교계에 그릇된 모습들을 논하며 '깨달음'보다 속세에 치우진 몇 상황들을 비판하셨다. 그러고는 절 밖에 있는 카페에 함께 나가 커피를 마시며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입니다"라는 설교를 들었다.


그 내용은 즉, 나무에서 산소가 나와 내 숨으로 들어오면 이 산소가 곧 내가 되는데, 나무에 있을 때는 나무고, 내 안으로 들어오면 내가 되니, 나는 곧 산소요, 나무요, 흙이며, 우주다.라는 말씀이었다. 박상영 작가의 '우럭 한 점의 맛'을 수덕사에서 접하다니! 그것도 스님의 입을 통해 날것으로 말이다! H와 나는 그 얘기를 3시간은 족히 듣고 절을 빠져나왔다.


계획과 달리 온통 엉망진창이었던 템플스테이. 내 안에 있던 악마는 화를 내라고 꿈틀거렸지만 H의 느긋함 덕분에 절은 절이고, 나는 나고, 이것은 여행.이라는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그런 H와 헤어진 지 어느덧 1년이 훌쩍 넘었다. 우연히 H가 지금 만나는 사람의 블로그를 들어가게 됐는데, 둘의 데이트가 이따금 남겨져 있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엿본다는 느낌이 들어 화들짝 창을 닫았다.

 

하지만 다음 날, 우연히가 아니라 정확히 블로그 주소를 검색해 들어갔다. 잘 지낼까. 엉망이 될 상황조차 누그러트리는 H의 느긋함은 글을 읽지 않아도, 사진만 보고도 느껴졌다. '잘 지내네'라는 안도감과 동시에 괜한 질투가 일어났다. 헤어짐을 안 순간,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는데 그것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마음이 아프다'라고 표현한다. 마음이 아프다는 게 뭐지, 마음이 장기가 아니라 '뇌'아닌가. 뇌가 통증 호르몬을 내뿜는 것일까. 그 아픔처럼 질투도 어디서 일어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블로그는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가지 않다 보면 잊겠거니 했는데 잊으려 하면 더 떠오르는 게 사람의 뇌 아닌가. '행복하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라는 말은 사치가 되었다. 행복을 바라면서 동시에 질투 따위와 같은 못된 마음이 공존하니 '아플까 봐 사랑하지 않는다'는 일부 사람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박상영 작가 <대도시의 사랑법>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난 단 한 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 처음엔 그 구절을 읽고선, 모든 관계가 집착이었겠거니, 끔찍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단 한 번의 집착이었기에 단 한 번의 완벽한 사랑을 놓아주지 못하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웃기게도 오늘 필리핀 친구의 SNS에는 결혼사진이 올라왔다. '함께 살고 싶은 사람과 결혼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사람과 결혼합니다.'라는 문장이 눈에 밟힌다. 평소라면 오글거리는 감성이라 여겼겠지만, 단 한 번의 완벽한 사랑을 경험한 나에게는 부러움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사랑은 사람의 이면을 들추나 보다. 한껏 차려입고 화사한 봄을 끝내러 가는 길, 시원한 여름을 즐기겠노라 떠들어대지만 그 이면엔 못다 한 이야기가 서려있다. 그걸 애써 감추지는 않지만, 종이는 한 면만 보이는 법. 뒤에 숨은 수줍은 악마가 나타난다면 그제야 사랑을 해봤구나를 깨닫게 된다. 만약 내가 여전히 착하다면 나는 사랑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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