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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Nov 26. 2022

코로나에 걸리자 서울사람 다 됐다

서울로 올라온 지 딱 6개월이 되었다. 불어를 배우겠다느니, 사업을 기똥차게 키우겠다느니 서울의 로망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지난주 불쑥 찾아온 코로나19는 "헤헤 여기가 서울이야."라고 말을 건다.




코로나19로 격리한 지 5일째. 편도가 가라앉고 가래가 줄었다. 잔기침은 여전하지만 아프다고 칭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잠을 너무 오래 자다 보니 이따금 올라오던 뾰루지가 사라지는 기색이다. 잠을 10시간 이상 자 본 게 얼마만인가. 밤 12시에 시작해 아침 11시까지 이어지는 수면은 드러나지 않은 몸의 피로를 해소한다. 그렇다. 나는 피곤하지 않은데 피로가 있단다.


병원에서 열을 쟀을 때 깜짝 놀랐다. 열감이 전혀 없던 터라 의사 선생님이 "열은 나요?" 물었을 때 "열은 없죠~"라고 답했는데 38도가 나왔다. 열을 못 느꼈다. 나는 온도의 변화도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둔한가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할만한 게, 안면인식에 문제가 있을 정도로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하곤 한다. 둔하다. 나는 총명해 보이는데 흔한 것에는 둔하다.


집에만 있다 보니 평소 하지 않던 청소를 하게 된다. 냉동실에 미뤄뒀던 음식물을 내다 버리고, 이불을 벗겨 하나씩 세탁한다. 화장실과 가습기의 물때를 지우고, 쌓여있던 택배 박스를 정리한다.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청소 본능은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남자가 혼자 사는 것치곤 평소에도 지저분하지 않았건 마,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게 남자의 방이다. 빠릿한 움직임에 나는 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침 일찍 해야 할 일을 마쳤다. 오늘은 주말이니 좀 쉬어볼까, 불을 끄고 탁상 앞에 가만히 앉았다. 그러자 뒤에 있는 창문으로 햇살이 삼삼하게 들어온다. 6개월 만에 처음으로 본 내 집의 햇살. 2층이지만 햇살이 드는 방향으론 보일러실이 자리하고 있어 햇살을 결코 볼 수 없는 구조였다. 대체 누가 설계했길래 여기다 보일러실을 두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멍청하다. 그런 구조를 미리 살펴보지 않고 계약한 나도 멍청하다. 그래서 햇살을 포기하고 사는 게 합당하다 여겼건 마, 햇살이 들어왔다.


불을 끈 방에 세로로 난 쿠크다스 같은 햇살이 몹시 반갑다. 마치 골목의 햇살이 인사라도 하고 싶은 마냥 손을 길게 뻗어 "헤헤 서울의 햇살은 다 이래"라며 말하는 것 같다. 반가운 마음에 수국차를 우린다. 이불을 꺼내와 시린 발을 덮는다. 햇살이 적어 따뜻해지지 않는 걸 어떻게든 속여 메우려는 속셈이다. 어울리지 않게 노란 무드등을 켜서 분위기를 더한다. 아, 따뜻하다.


잔기침이 두 번 튀어나온다. 한 번은 사색을 멈추고 싶은 뇌의 욕망, 한 번은 오글거림을 달래고 싶은 마음의 욕망. "와아오야. 주말이니까 좀 포기하고 쉬어."라는 친구에 말에 나도 멍을 때려본다. 오랜 잠처럼 멍 또한 오랜만이다. 불멍을 위한 불쏘시개를 팔고, 물멍을 위한 수조를 팔아댔지만 정작 나는 멍을 때리지 않았다. 둔한 몸을 이끌고 좌식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는다. 뇌가 멈추고 마음이 진정된다. 격리 해제 D-2. 이틀은 푹 바닥에 드러누워 햇살의 손맛을 느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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