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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Dec 21. 2022

파스타를 팔기 시작했다

"회사 밖으로 나가니 알몸이었다"


이 말은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하면서 차장님께 들을 말이다. 국내 최고의 기업에서 20여 년을 근무하신 차장님이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이었다. 차장님과 나 사이에 놓인 고급진 회는 더할 나위 없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퇴사하는 사람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비추시다니.




8년이 흘러 나는 다른 회사에서 세 번째 퇴사를 맞이했다. 나름 7개월 동안 온라인 사업을 키워온 터라 큰 걱정이 없었다. 이것은 마지막 퇴사다. 주문을 외우며 승승장구하는 사업의 앞날을 그렸다. 하지만 정확히 5개월 만에 리스크에 부담을 느꼈다. 매출은 늘어나고 있지만 온라인 쇼핑몰 특성상 현금 순환이 더딘 탓이다. 거기에 파업과 코로나19로 물류대란을 겪으며 돈맥경화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작은 사업자에게 고급용어로 느껴지지만 '흑자도산'이라는 게 왜 발생하는지 십분 이해가 됐다. 기업에서 직접적으로 돈을 벌지도 않는 재무팀이 막강한 힘을 가지는 이유가 여기 있을 테다. 현금을 얼마나 잘 관리하고 순환시키느냐. 그것 하나만으로도 팀의 존재가 명확해진다.


나는 한 달 동안 고민을 했다. 대출로 현금을 확보해서 사업을 계속 키워나갈까. 혹은 잠재 리스크 때문에 대출이 악수가 될까. 그런 생각 끝에 이 사업에 올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상품, 상품의 가격, 유통 플랫폼. 사업에서 중요한 세 가지 모두 나에게 통제권이 없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온라인 유통 사업은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어 매일 새롭게 경쟁구도가 만들어지고, 리스크가 여러 곳에 분포해 있어 관리하기가 은근히 복잡하다. 이런 이유로 이 사업을 장기전으로 끌고 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유지만 하자.



그런 고민을 거친 뒤 내가 선택한 사업은 두 가지이다. 요식업과 교육업. 


일단 돈을 쉽게 벌 수 없는 일을 하기로 했다. 온라인 사업이든, 투자든 요즘엔 조금 더 편하고 쉽게 돈을 버는 아이템들이 존재한다. 누구나 그러길 원하고 나 또한 그 특혜를 누린 사람이니 나쁘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경험했다시피 쉽게 접근한 만큼 쉽게 길을 헤매기도 한다. 그래서 온라인 사업과 정반대에 있는 오프라인 사업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중 요식업은 가장 눈길을 끈 업종이었다. "퇴사하고 치킨집 차린다"며 우스갯소리의 재료가 될 때도 있지만 사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의식주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다행히 먼 지인 중에 요식업 프랜차이즈를 크게 일구신 분, 호텔과 개인 식당에서 요리를 하는 몇 분이 계셨다. 이전에 몰랐지만, 관심을 가지고 다시 SNS를 훑어보니 '요리를 하는 것'과 '요식업을 하는 것'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나는 요리사가 아니라 사업가가 되고 싶다. 그러므로 요리에 올인하기보다 요리를 구매하는 소비자에 집중해 보자. 경영을 배워보자. 빠르고 간편하게 적당히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나 역시 환영이다. 




이렇게 나는 지난주 월요일, 파스타와 고기덮밥을 겸하는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회사 밖에서 알몸이 되지 않게, 파스타를 팔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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