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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Jan 08. 2023

요식업에 맞지 않은 손

엄지에 하나, 검지에 셋, 중지와 약지에 하나씩, 새끼에 다섯. 파스타를 만들기 시작한 지 3주 만에 손에 생긴 상처다. 웃기게도 상처는 칼에 베여서가 아니라 스테인리스 통과 기타 잡기에 긁혀서 생겼다.




1주 차. 파스타집에서 일을 시작한 첫 주에는 간단한 재료 손질과 조리에 적합한 세팅(팬이나 웍에 재료를 올리는 것)을 익혔다. 메뉴는 몇 개 안 되지만 이름이 헷갈린다. 특히나 그냥 로제와 매콤한 로제, 혹은 스테이크나 쉬림프를 추가하는 주문들이 섞이자 재료만 보고는 쉽사리 구분할 수 없었다.


12년을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일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성실히한다면 요식업도 바로 익혀나갈 줄 알았다. 더구나 온갖 것을 수리하고 점검하면서 손재주가 남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결이 다른 일 앞에서 내 손은 그다지 유용하지 못했다.


심지어 이런 적도 있다. 유난히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소불고기 덮밥'을 다 준비한 줄 알고 화구에 올려놓을 찰나 "고기는?" 선배가 묻는다. 아차, 소불고기 덮밥에서 고기가 빠진 그냥 불고기소스 덮밥이 될 뻔했다. 그만큼 손이 기억하지도 못하고, 머리는 더더욱 따라가지 못했다.




2주 차. 어찌 되었건 주문량이 많은 메뉴들은 적응이 되었다. 이따금 한 번 주문이 들어오는 비인기 메뉴는 선배들께 묻는다. 그리고 이제는 포장 전선에 나설 차례. 재료 손질이나 조리 세팅은 실수를 해도 중간에 보완할 수 있지만 포장업무는 그렇지 않다.


메뉴를 서로 바꿔 포장한다 거나, 누락을 할 경우엔 다시 발송을 해야 한다. 손실이지만 차라리 명확해서 좋다. 오히려 리뷰이벤트나 수저포크, 음료수 같은 옵션을 빠뜨렸을 때가 절망적이다. 다시 배송하기엔 미미하고, 안 보내자니 손으로 먹으라는 것도 아니고.


포장을 하면서 정말 꼼꼼하게 주문서를 훑을 수밖에 없다. 주문서의 제일 위부터 맨 마지막까지 몇 번을 다시 읽는지 모르겠다. 평소 책과 글에 친숙하건 마, 이상하게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다. 불행하게도 음료수를 빠뜨리는 실수를 범했다.


음료수가 빠진 것을 꽤나 빨리 알아차렸다. 봉지에 담으려고 미리 빼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걸 깜빡하고 넣지 않았다. 선배가 서둘러 고객님께 전화를 드렸다. 음료수값만 환불하기를 간절히 빌었다. (어찌나 속이 애타던지, 원대한 장래희망과 맞먹는 간절함이었다.)


그러나 고객님은 음료수도 보내달라 하신다. 결국 배송 기사님 두 번 콜 하면서, 이중으로 배달료를 지불했다. 선배의 조언에 따르면 "음료수는 음식을 먹으면서 함께 마시려고 주문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객들이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이렇게 포장 하나에도 쩔쩔매면서 한 가지 알게 된 실이 있다. 나는 눈과 손이 멀티가 되지 않는다. 눈으로 주문서를 읽는 동안엔 손이 멈춰있고, 봉지 안으로 물건을 담을 땐 눈이 진도를 나가지 못한다. 30년 만에 처음 알게 된 내 신체의 한계이다. (엔지니어였을 땐 눈으로 꼼꼼히 확인한 후 손이 후발로 움직여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알 수 없었나 보다.)




3주 차. 조리가 시작되었다. 팬이나 웍에 올려둔 재료들을 볶거나 끓인다. 여기서 파스타의 매력이 나타난다. 면은 모두 동일하재료도 얼추 비슷하지만 소스의 비율이나 한두 가지 재료만 바꾼다면 아예 다른 파스타가 만들어진다. 마치 김치 같다. 총각김치, 파김치, 갓김치, 배추김치, 겉절이 등등.


하지만 이런 재미는 먹는 입장에서나 좋다. 만드는 입장에서는 비슷비슷하니 헷갈릴 수밖에 없다. 토마토파스타와 로제파스타는 기왕이면 하나로 합쳤으면 하는 바람까지 생긴다. 여기에 리조또와 필라프까지 더해지니 머리에 부하가 왔다.


어느 날은 '아, 요식업이 나랑 맞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가득했다. 이게 표정으로도 드러났는지 퇴근 후 사장님께 장문의 카톡이 왔다.


"지금 엄청 잘해주고 있고, 2주 되었으니 실수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부담 갖지 말고 지금처럼만 해줬으면 해! 너무 다 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믿고 크게 보면 될 것 같아"


카톡을 읽고 요식업은 하나의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다른 부서라면 회의 석상에서 미묘한 신경전이 오갔는데, 요식업은 그럴 수가 없다. 니 탓 내 탓, 네 일 내 일을 따질 겨를도 없이 누구 하나 낙오된다면 식당이라는 자그만 회사가 굴러가기 어렵다. 그래서 자영업자이자 동시에 작은 경영을 하는 식당 사장의 자리가 무겁다.




이제 4주 차가 시작되었다. 내가 유능한 요식업자였다면 올라운더가 되었을 시기인데, 나는 유능하지 않다. 오히려 숙달이 느린 편에 가깝다.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르자 월급이 입금되었다. 벌써 한 달이 다되어간다는 사실에,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몇 밤 자고 나면 몇 개월이 그냥 지나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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