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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회 Jul 15. 2024

외연도 (外煙島),  삽시도 (揷矢島)

대천항

좀 멀리 다녀왔습니다

배를 타고 출항하는 곳이

충남 보령시 대천항인데요

머드팩으로 유명한 곳이죠


지난 1월 13일

장고도에서 오후배로 삽시도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일몰을 보았고

다음날 트래킹 후 오후배로 출도 하려 했었는데 강풍이 분다 하여 결항하는 바람에 쫓겨나다시피 아침배로 나와야 했었죠


마무리를 지어야 했기에 기회를 엿보다가 마른장마의 틈새를 이용하여 재 도전하게 되었고 그 먼 곳까지 갔으니 대천해수욕장에서 1박을 해 가며 외연도까지 넘보게 되었답니다


대천항은 무료주차이고요

먼저 외연도로 갔습니다


육지 바깥(外) 바다 멀리 짙게 끼는 해무가 마치 연기(煙)처럼 보이는 섬(島)이라 하여 외연도라 한다는군요


현지에 닿았더니 실제로 주변이 뿌옇습니다

매표소에 걸려있는 홍보용 사진도 죄다 흐릿하고요

그만큼 해무가 많은 모양입니다


외연도에는

2산, 6금, 3배가 있다고 합니다


2산은

해발 238미터의 봉화산과

171미터의 망재산이 있군요


육지가 움푹 들어간 곳을 만이라 하는데

만보다 작은 것은 금,

반대로 육지가 돌출된 곳을 반도라 하며

반도보다 작은 곳을 곶,

곶보다 더 작은 것을 배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6금은

사학금

고라금

누적금

돌삭금

작은명금

큰명금


3배는

노랑배

꼬깔배

마당배라고 합니다



육지에서 많이 떨어져 있다는 건 중국과 가깝다는 소리이고

중국에서 짖는 개소리와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곳이 여러 곳입니다

어청도 가의도 가거도 등

이곳 외연도도 그런가 보죠


하지만 어찌

개소리와 닭소리가 들리겠습니까?

그만큼 중국이 지천이다 하는 이미일 겁니다


해서 중국과 관련된 썰들도 곳곳에 있습니다

전횡(田橫)장군 전설도 마찬가지인데요


기원전 200년경 제나라왕,

전횡장군이 나라가 망하자 군사 500을 이끌고 외연도로 왔다는 전설,


그를 풍어의 신으로 받들어

사당을 짓고 매년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동백나무 숲 속에 사당이 있던데요

좀 으스스한 느낌이더군요


전횡이란 인물이 서해안의 섬들과 어떤 형태로든 약간씩 인연이 있는 모양입니다


주변의 섬

녹도와 어청도에도 전횡의 사당이 있고 제사를 지낸다고 하네요


하지만 실제로는

전횡이 한나라의 유방에게 패하여 군사와 식솔 500명을 이끌고 오호도라는 섬으로 도망하여 은거하던 중


전횡이 세력을 키우면

유방에게 화근이 될 것이므로 유방은 전횡을 죽이려고 당근책을 써서 너를 왕으로 인정해 줄 테니 나오라고 꼬셨겠죠


수행원 2명을 데리고 협상 테이블로 가던 중

너도 왕이지만

나도 왕인데 내가 왜 너를 섬겨야 하냐면서 자결을 해 버립니다


수행했던 2명도 장사를 치른 후 그의 무덤 앞에서 자결을 했고


전횡과 수행원의 죽음 소식을 들은 군사 500명도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지금도 500명의 무덤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전횡이 은둔했다는 그 오호도의 위치를

중국에서는 전횡도라는 것이고

한국에서는 외연도라는 것인데


구글 지도에서 중국의 산동반도 앞에 전횡도가 있는 걸 확인했으니

당연히 중국 것이 맞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전횡을 신주로 모신 사례가 없다고 하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뙤놈을 풍어의 신이라며 신주로 모시는 걸까요?


아마도

능력자이긴 하나 성공하지 못한 비운의 유명인에 대하여 동정하는 맘과

특출한 능력을 높이 사고자 하는 우리 고유의 정서이지 않을까!!


요즘

힘없는 국민의 힘이 전당대회를 한답시고 대한민국 천하가 시끌벅적한데요

블루베리 세(三) 후보가

거봉 한(一) 후보를 집중 공격을 하는데도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찾자면

동정심과

능력을 높이 사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답니다



제나라는 원래 강(姜)씨의 나라입니다


그 유명한 강태공(姜太公)이 주나라로부터 분봉을 받은 땅이지요


주지육림과 포락지형을 즐기던 천하의 폭군,

은나라의 주(紂)임금을 처단하고 창업한 나라가 주(周)나라입니다


이때 강태공이 결정적 역할을 했죠


주나라는 천자국이 되었고

임금 희발은 천자가 되었지만 넓은 땅을 혼자 다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여

구획을 정하고

땅을 봉(封)하여

제후의 나라를 세워서(建) 가족에게 나누어 주는 제도(制),

이른바 봉건제를 시행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제(齊)나라이며 제후는 강태공이었죠

지금의 중국 산동반도입니다



강태공은 주나라 천자의 가족이 아닌데 어찌하여 봉토를 받았을까요?


기록에 의하면 강태공은 3200여 년 전에 태어났고 139세까지 살았으며 천수강(姜)씨

이름은 상(尙)입니다

주나라 문왕(희창)의 선친 태공(太公)이 꿈에서도 바라던(望) 인물이 드디어 나타났다 하여 [태공망]이라 하며 우리가 말하는 강태공은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낚시하다가 문왕을 만나 비로소 벼슬길에 올랐으니 강태공 하면 낚시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은나라 주왕의 흉폭한 정치에 천하가 비탄에 젖어 있을 때

문왕의 아들 희발의 사부가 되어 4만 5천의 군사로 72만의 주왕 군사를 물리치는 목야전쟁(牧野戰争)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희발은 주나라 초대임금 무왕이 되었고

강태공은 그 무왕의 장인이 되었으며

무왕으로부터 봉토를 하사

받아 제나라의 제후로써 초대 국왕이 되었지요


이후 제나라는 최전성기 때 사방 5천 리의 영토를 가졌고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할 때까지 32대 800여 년을 강국으로 존속하였답니다


하지만

진(陳)나라에서 이주해 온

전(田)씨 가문이 세력을 확장하여 제나라의 귀족이 되었고

급기야 제후자리를 강탈하여 강씨를 폐해 버리고 전씨가 제후로 앉았죠


사실상 제나라는 망했으나 전씨는 나라 이름을 바꾸지 않고 계속 제나라로 있다가 진시황이 통일할 때까지 180년쯤 통치를 하였습니다


위에 나온 전횡은 바로 그 전씨 가문의 후손이며

진시황에 의하여 제나라가 망했고

4년 후 대륙을 통일한 진(秦)나라마저도 망해 버렸으니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가 천하를 양분할 때 전횡도 꼽사리로 봉기하여 극히 일부땅을 부둥켜안고 왕을 해 먹다가 유방에게 된서리를 맞은 것이죠



외연도는 쾌속선으로 2시간 10분 걸리며 주행거리가 약 48km쯤 됩니다


생각보다 멀고요

생각보다 뿌옇고

생각보다 볼품도 적어 보입니다


대천항으로 돌아가는 쾌속선을 타고서 외연도를 복기해 보니

3S였더군요

퀴퀴한 스멜(Smell)

징그러운 스낵(Snake)

이글거리는 선(Sun)



숙소는 머드팩 축제가 개최되는 대천해수욕장입니다

7월 19일부터 8월 4일까지 축제이군요


그러나

해수욕장에는 수많은 인파들로 붐볐고

먹자골목에는 이미 집집마다 손님들로 불야성입디다




다음날 7/14 일요일


삽시도행 1항차 07 20 차도선에 승선하였습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삽시도는 두 번째 입도했으며

첫 번째는 기상악화로 인하여 탐방을 못했던 섬입니다


당시의 포스팅을 링크해 보면

 https://story.kakao.com/_eTZCf4/CLNFsOhAWD0


삽시도는 충남에서

안면도와 원산도 다음으로 큰 섬이라고 하는데요


이름의 의미는

섬의 형태가 화살(矢)이 꽂힌(揷) 활의 모양을 닮아서 붙여졌다고 합니다


이곳 역시 해안선을 따라

모래사장은

거멀머리

진너머

수루미

밤섬해수욕장을 낳았고 기암괴석은 면삽지에서 꽃을 피운 듯합니다

울창한 송림 또한 볼거리이죠


삽시도의 3대 보물은

면삽지

물망터

황금곰솔로 알려져 있는데요


면삽지는

땅(地)이 떨어져 나와

삽(揷)시도를

면(免)했다는 소리군요


간조 때는 삽시도와 붙어있다가

만조가 되면 별개의 섬이 된다는 뜻이겠고


물망터 역시 간조가 아니면 볼 수가 없습니다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겨있다가

썰물 때 노출되면서 샘물이 솟는데

희한하게도 짠물이 아닌 생수랍니다


별도의 표식이 없던 터라 저희는 헤매다가 결국 못 찾았습니다


황금곰솔은 50년쯤 된 해송인데 잎이 돌연변이로 인하여 약간 노랗게 보여서 지은 이름이네요

사실 좀 희귀할 뿐 자그마한 소나무입니다


둘레길은 대체로 잘 관리되고 있는 듯했고요

더위에 지쳐서 면삽지의 현란한 암릉을 거의 패스했는데요


힘듦 앞에서는

풍경도 뒷전이고

아쉬움도 없더이다



탐방을 끝내고

승선을 하고 보니

의외로 탐방객이 없는 것에 놀랐는데요

고대도와 장고도를 경유해서 오는 배가 미어터질 줄 알았는데 텅텅 비었더군요


관광 실상이 씁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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