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낳은 오늘의 나를 사랑한다

by Chong Sook Lee



오늘의 내가 되어 살 줄 몰랐다. 살다 보니 오늘의 내가 되어 산다. 더 높이 오르기를 바라고 더 많이 갖기를 원했는데 세월은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놓았다. 하루를 맞고 하루에 속고 수십 년을 맞고 보내며 수십 년 동안 속으며 살아왔다. 앞으로 나는 얼마를 더 살고 얼마나 더 속아야 하는지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들은 단지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 같아 바라만 보고 만질 수 없다. 소나기가 와야만 곱게 뜨는 무지개 같은 꿈들이 매일을 살게 하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에게 꿈이 없었다면 무지개도 없었고 희망이 없었다면 속지도 않았기에 오늘의 나도 없을 것이다. 오늘은 나를 속이며 내일을 꿈꾸게 하고 새로운 내일을 맞게 하였다.


내가 사는 동안 만났던 수많은 오늘이 있었기에 수없이 무지개를 만날 수 있었다. 어제가 나를 속인 것이 아니고 나는 희망으로 오늘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반쪽 짜리 무지개면 어떻고 희미한 무지개면 어떤가. 잠깐 떴다가 사라지는 무지개도 좋고 어쩌다 만나는 쌍무지개도 좋다. 사람이 사는 동안 화려한 날이 며칠이나 되나 생각해보면 하루도 감지덕지하다. 매일매일 화창한 봄날을 기다리지만 흐리고 바람 불고 비가 오는 날들이 많아도 봄은 봄이다. 흐리고 비가 와도 봄이듯 행복하지 않아도 삶은 삶이다. 좋은 날만 삶이 아니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삶도 삶이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삶이라고 되돌려 줄 수 없고 다른 것과 바꿀 수도 없다.


하늘에 뜬 무지개를 잡을 수 없듯이 나를 피해 가는 삶을 쫓아갈 수 없다. 복권 파는 가게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번에는 상당이 큰돈이 하늘에 걸려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다. 몇 푼 들여서 큰돈을 벌려는 마음으로 투자하려는 것이다. 몇 시간이 지나면 몇 푼 들여 산 복권이 한 사람에게 돌아가고 희망으로 산 복권은 휴지통으로 던져져 쓰레기가 된다. 매번 이번에는 되겠지 하며 사서 버리는 복권이다. 차라리 무언가를 사면 물건이라도 남는 데 휴지조각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사지 않으면 희망도 없고 기대도 없기에 산다. 며칠을 그 희망으로 살고 그 기대로 산다. 안되었을 때 실망은 더 큰 희망과 기대가 되어 또 사고 또 속는 한이 있어도 산다.


기대가 실망이 되고 희망이 절망이 되는 나날이 오고 가며 결코 모든 것들이 헛되다 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작은 기대와 희망으로 많은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소나기가 지나가야 무지개가 뜨듯이 힘든 삶을 살아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무지개다.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는 만질 수 없지만 마음으로 무지개를 만들면 가슴으로 안을 수 있다. 희망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우연히 설거지를 하다가 창밖을 쳐다본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보며 괜히 기뻐하는 마음이 생긴다. 만질 수도, 가질 수도 없지만 마음속으로 찾아오는 평화 같은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고 마음으로 피어나는 꽃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가질 수 있다.


가을이 시작하는 지난해 9월 초에 새파랗게 젊은 조카며느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갑자기 받아 본 건강진단으로 2개월 정도의 사망선고를 받고 2년 동안 더 살다 갔다. 암 투병을 하며 차분히 죽음을 준비하는 그녀를 보며 죽음이 그녀를 건너뛰고 그냥 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소망을 알기라도 하듯이 그녀는 건강을 되찾은 듯 살았다.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오진일 거라고 할 정도로 건강하였는데 결국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떠난 다음에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지고 파란 하늘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햇살이 눈부시게 피어나고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그녀가 모두에게 잘 있으라고 행복했노라, 사랑했노라, 이야기하듯이 손을 흔들고 갔다.


그렇게 떠나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삶은 하늘에 뜬 무지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날 수 없기에 그리워하고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에 희망하고 내일을 기다리며 산다. 가버린 어제는 행방을 알 수 없고 내게는 오늘이 있을 뿐이다. 오늘이 구름 낀 날이라 희미해도 가버린 어제보다 좋고 오지 않은 내일보다 나은 날이다. 미친 듯이 질주하던 차들과 나란히 신호를 기다리듯이 먼저도 없고 나중도 없다. 빨리 뛰는 사람도 늦게 가는 사람도 어디선가 결국 만난다. 높이 오른 사람도 오르지 못한 사람도 생로병사의 자연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만난다. 오늘 나의 모습이 다른 사람과 다르고 나의 자리가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 좋다.


내가 살아온 내 삶의 발자취가 보이고 나만의 흔적이 남기에 더욱더 사랑스럽다. 남을 따라가기 위해 애쓰던 날들도, 남보다 앞서기 위해 달리던 발걸음을 멈추고 진정한 나의 모습이 보이는 지금이 좋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를 낳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를 낳을 것이기에 더없이 소중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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