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Chong Sook Lee Jun 18. 2022

숲 속의 나무들은 비바람을 피하지 않는다



며칠 동안 매일 비가 온다. 숲 속의 오솔길은 계속 내린 비로 인해 자란 풀들이 차지하여 안 그래도 좁은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는 길인데도 풀 때문에 길이 헷갈리는데 처음 오는 사람은 걷기 힘들 것이다. 모기들은 편하게 자고 있는데 왜 잠을 깨느냐고 떼로 몰려든다. 그들의 구역에 걸어 들어간 우리가 잘못한 것이지 모기는 아무런 죄가 없다. 모기들이 모자 속으로 들어와서 보이는 대로 눈썹과 귀 그리고 입술과 얼굴을 사정없이 깨문다. 손을 흔들어 모기를 쫓는데 이게 웬 떡이냐고 계속 달려든다. 간신히 오솔길을 벗어나서 큰길로 나와 걷는다. 멋모르고 모기 굴로 들어갔다가 여기저기 뜯기고 나왔다. 여름이 갈 때까지 절대로 오솔길로 들어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본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각자 자기 구역을 지키려 드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곤충 역시 텃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걷는 동안 그까짓 풀 좀 건드리고 간다고 그렇게 난리 법석을 칠게 뭐 있단 말인가? 사람도 피곤해서 자려고 하는데 떠들거나 잠을 방해하면 싫은 것처럼 그들도 신경질을 낸 것일 것이다. 어디든지 누구나 할 것 없이 눈치껏 남을 방해하지 말고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살다 보면 누구나 눈치 없는 언행으로 미움을 받게 되는데 유난히 타인은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여럿이 모여서 환담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고 이야기가 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아니면 아는 것이 많은지 잠시도  입을 다물지 않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남의 말을 가로채고 언성을 높이며 자신의 말만 들어주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고, 남이 말을 할 때 기다리지 않고 말꼬리를 자르고 뺏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배려와 양보는 물론 눈치 없이 사는 사람을 보면 참 배짱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커다란 산책로로 걸어가는데 잠이 깬 모기들은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덤벼들 기회를 노린다. 모자를 벗어 흔들고 손을 휘두르며 걷는다. 손과 모자에 부딪혀서 충돌을 하고 추락사를 당해도 지칠 줄 모르고 덤벼든다. 나도 질세라 모기와 전쟁을 한다. 계속된 장마철이라 모기들이 더 많아졌다. 계곡물이 힘차게 흐른다. 그동안 가물었던 계곡에 끼어있던 온갖 더러운 것들이 빗물에 씻겨 내려간다. 내가 편식을 하던 어린 시절에 친정엄마가 사람의 몸은 시냇물 같아서  편식을 하면 몸에 영양이 골고루 가지 않아서 병이 생겨서 여기저기 아프니까 아무것이나 가리지 말고 먹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어린 나이에도 엄마의 설명은 완벽하게 이해가 되어 그때부터 편식을 안 하게 되었는데 엄마 말씀대로 계곡은 쉽게 말해서 인체와 같은 구조라 물이 부족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계곡에 물이 콸콸 흐르면 주위에서 사는 미생물이나 식물들이 영양분을 충분히 먹고 잘 자라고 가물면 모든 것들이 말라죽는다. 흐르지 않고 고인물에 벌레가 생기고 곰팡이가 생기면 공기를 타고 주위에 자라는 나무나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치는 것이다. 비가 와서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을 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 숲이 우거져 정말 아름답다. 겨울이 긴 이곳에 봄은 오는 둥 마는 둥 왔다 가는데  그나마 한동안 머무는 여름은 그야말로 천국의 모습을 한다. 그야말로 지금이 여름의 전성기다. 크고 작은 이파리들이 너도 나도 피어나며 최선을 다하여 최고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이리 봐도 예쁘고 저리 봐도 예쁜 식물들은 한여름 잘 살다가 때가 되면 사그라져 갈 것이다.


이 세상 모든 만물에는 때가 있어 피고 지고 하다가 떠난다. 화려하거나 초라하거나 관계없이 지어진 대로 감사하며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는데  유독 인간들은 거부하고 반항하며 가고 싶은 길로 간다. 계절은 피어나는 때가 있고 떨어지는 때가 있음을 알고 순응하며 고요히 저물어 간다. 민들레 가 노란 꽃을 피우나 했는데 이제는 늦게 나온 민들레만 외롭게 남아있고 다 져버렸다. 하찮은 들꽃도 필 때를 알고 질 때를 안다. 저토록 무성한 녹음도 어느 날 곱게 물들 것이다. 비가 내리지만 남편과 함께 걷는 산책길은 행복이 넘친다.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 에서 우리를 향해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는 새가 있고 아무런 말없이 앞을 향해 흐르는 계곡물이 있어 좋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앞으로 걷는다. 세상이 있어 행복하고 내가 있어 세상이 아름다우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세상사 너무 깊이 알고자 하지 말고 인연이 되어 만나는 모든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산다. 가만히 보면 더없이 예쁘고 귀한 것을 몰랐던 날들에게 미안하다.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진다. 모자를 쓰고 비옷을 입어 몸이 젖지 않아도 비가 오는 것은 보인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숲 속의 나무들은 비바람을 피하지 않는다. 자연은 비바람이 삶을 주고 계절을 가져다주는 것을 안다. 땅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비가 내리듯 슬픔과 기쁨도 선물로 받는다. 각자의 운명처럼 오늘 하루의 인연도 소중하기 때문에 찾아온 나날을 기쁘게 살아간다. 늑대와 함께 춤을 춘 날이 아니고 모기와 함께 산책을 한 날이다.

(사진:이종숙)
작가의 이전글 콩나물국은... 나에게 만병 통치약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