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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Jun 19. 2022

하늘이 다 알아서 한다



장마철이다. 강물이 불어 위험수위에 가까워진다고 조심하라는 뉴스를 보았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내리는 비가 모여 꽤나 많이 왔나 보다. 일기예보를 보니 앞으로 열흘 넘게 매일 온다고 한다. 비가 오지 않아 말라가던 잔디가 보기 좋게 자란다. 앞뜰에 커다란 전나무 뿌리가 물을 다 빨아먹어서 잔디가 죽었는데 며칠 내린 비로 조금씩 살아나서 다행이다. 하늘이 찌푸리고 있어서 바람도 가만히 눈치만 보는지 나뭇잎도 움직이지 않는다. 새들은 어디로 갔는지 오늘은 수다 소리도 안 들린다. 사람들도 주말에 늦잠을 즐기는지 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세상이 멈춘 듯 조용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돌아간다.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누군가가 급하게 병원에 가는가 보다. 태어나고 죽고 생사가 오고 가는 싸움을 하고 아픔에 고통스러워하며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는 이 시간이다. 사람이 힘들면 죽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얼마나 힘들면 죽고 싶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인간이 가장 불쌍하고 가엽다.




오래전 식당을 할 때 생각이 난다. 아침 5시에 일어 나서 6시에 식당 문을 열기 위해 5시 반쯤 집을 나서서 식당에 도착하면 식당 앞에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6시에 문을 여는 것을 알면서도 일찍 와 있는 손님들은 아침잠이 없는 노인들이 많다. 잠이 깼는데 잠을 더 잘 수 없으니까 준비하고 나와서 우리를 기다린다. 많고 많은 식당을 지나서 우리 식당을 찾아온 손님이기에 너무나 고맙다. 부리나케 식당 문을 열어주면 손님이 들어와 앉아 신문을 읽고 우리는 커피를 만들고 하루를 준비한다. 어떤 날은 손님이 안 와서 이러다가는 문을 닫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고, 손님이 너무 많이 와서 힘들어서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날도 있다.


손님이 적당히 오면 좋은데 매일이 어떤 날이 될지 모른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계속 손님이 오는 날은 하루 종일 서서 움직여야 한다.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면 준비한 양을 다 쓰게 되면 중간에 재료를 다시 준비하며 손님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잠시도 쉬지 못한다. 밥도 못 먹고 앉아서 쉬지도 못한 채 하루 종일 일을 하게 된다. 돈을 많이 벌어서 좋지만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든다. 손님이 조금 빠지고 커피라도 마시려고 앉으면 온몸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처럼 안 아픈 곳이 없을 때도 많았지만 우리 식당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생각하면 다시 일어나게 된다. 그런 세월이 다 지나고 이제는 편안한 퇴직 생활을 하는데 지난날을 생각하면 기적이다.



퇴직하는 나이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많다. 다행히 정년에 퇴직을 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으니 다행이다. 평생토록 일을 하며 살다가 퇴직생활도 하지 못한 채 어딘가 아파서 삶을 끝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저런 일을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민을 와서 세 아이를 낳아 기르며 언제나 나도 나가서 남들처럼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학교를 다니고 직장생활을 하며 나만의 사업을 하고 싶어 했는데 우연한 기회로 식당을 운영하게 되었다. 22년 동안 식당을 하며 좋고 힘든 시간을 보내며 희망하고 절망도 했지만 하늘의 도움으로 잘 넘어갔다.


우리가 사는데 혼자 힘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것 같아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보살핌이 있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죽고 사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무나 죽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살만큼 살아야 죽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시간을 채우기 전에는 떠날 수 없고 아무리 머물고 싶어도 시간이 다 되면  떠나야 한다. 사람들은 너무 괴로우면 죽고 싶어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무엇이든지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일찍 가는 사람은 그 사람의 시간을 다한 것이고, 살만큼 산사람 같아도 사는 사람은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머무는 것이다.


요양원에 가보면 살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보며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도 다 하늘의 뜻이다.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사람도, 매일매일이 행복한 사람도 다 각자의 시간이 있는 것이다. 지금 내게 온 행복이나 고통은 유통기한이 있다. 음식에만  유통기한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생명도 다 시간이 있다. 저기 저 멀리 구급차로 이송되어 가는 사람을 생각하다 여기까지 왔다. 사고가 많은 세상에 사람의 목숨은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나 다름이 없다. 화재와 교통사고가 빈번하여 순식간에 유명을 달리하는 전쟁통이고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모른다.


멋모르고 세상에 왔듯이 가는 날은 모르기에 뜰에 핀 꽃들과 다르지 않다. 피었다가 시들어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듯이 우리네도 언젠가는 온 곳으로 돌아간다. 힘들어서 죽고 싶어도 때가 되지 않으면 가지 못한다. 죽고 살고는 하늘이 하는 일이다. 다 하늘에 맡기면 되고 삶도 죽음도 감사하면 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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