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고 청소 덕분에 호박죽이 생겼다

by Chong Sook Lee


냉장고가 비었는데 왜 기분이 좋지?

냉장고가 비면 냉동고도 덩달이 비어지고 냉동고에 꽁꽁 얼어 쌓여 있는 재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매일 싱싱한 것만 요리하다 보면 냉동고에 얼려놓은 재료들은 외면을 당했는데 이제는 하나 둘 나와서 밥상으로 올라온다. 냉동고를 열 때마다 얼려놓은 재료들이 쳐다봐도 모른 체하고 닫았는데 냉장고가 비어 이제야 세상 구경을 한다. 냉동고를 열어보니 참으로 여러 가지가 있다. 먹지도 않으면서 언젠가 먹겠다고 얼려 놓은 것들이 있고, 싸다고 잔뜩 사다 얼려놓은 것이 쌓여있다. 겨울에 먹는다고 야채를 삶아 얼려놓은 것도 있고, 삶은 옥수수도 보인다.


얼릴 때는 언젠가 요긴하게 먹으리라고 생각했는데 한번 냉동고로 들어간 재료는 좀처럼 꺼내게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오면 이것저것 사 와서 먹고, 남는 것은 냉동고로 들어가 눌러앉게 된다. 냉동고에 여러 가지가 얼려 있어도 꺼내먹을 생각을 하지 않고 냉장고가 비면 장을 보러 간다. 이것저것 사고, 당장 필요 없는 세일 품목도 사다 보면 결국 냉동고로 직행한다. 쇼핑센터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물건이 갑자기 바닥나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사 오는지 모른다. 물건 값이 오른다고 미리 사다 놓고, 휘발유 값이 오른다고 자주 나가지 않으려고 나간 김에 사 온다. 싱싱한 거 한두 개씩 사다 먹으면 좋은데 왜 그게 안되는지 모른다.


식구가 많아서 많이 먹는 것도 아니고 장을 자주 보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냉동고에서 꺼내서 녹여 먹으면 된다. 냉장고에 얼은 고기 한 덩어리와 생선을 꺼내 놓으면 다음날이면 먹기 좋게 녹는다. 꺼내는 것도 일이라고 게으름을 편다. 냉동고에 가보니 작년에 잘라서 얼려놓은 호박이 보인다. 해마다 핼러윈데이 때 아이들이 조각을 하여 촛불을 넣어 장식을 하고, 추운 겨울에 호박죽을 만들어 먹기 위해 한 개 더 여유로 사다가 얼려 놓는다. 호박은 몸을 따뜻하게 하여 건강에 좋다고 해서 얼려 놓았는데 먹지 않아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호박 봉투를 꺼내니 자리가 생겨 좋다.


호박으로 죽을 끓여먹으면 되니 녹여보자. 냉동고도 유통기간이 있는데 찾아보면 오래된 것이 많은데도 자꾸만 사다 얼려놓고, 채워놓는다. 어제 한국 장을 보러 갔는데 새로운 상품 세일을 많이 하는데 마음을 굳게 먹고 꼭 필요한 것만 사 가지고 나왔다. 사고 싶은 유혹은 있지만 꽉 찬 냉동고 생각이 나서 급하게 나왔다. 절대 사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으로 살아보니 안 사도 된다. 비싸지면 그때 가서 사더라도 지금은 아니다. 쇼핑센터로 가는 대신 냉동고로 가서 꺼내면 돈을 주고 살 필요도 없고 휘발유를 들여서 갈 필요도 없다.


냉동고에 먹을 것이 쌓여있으니 장을 보듯 꺼내 먹으면 된다. 두식구가 먹는 양이 얼마 안 된다. 앞으로 오래오래 안 사고 꺼내먹기만 해도 될 것 같다. 많은 돈을 주고 사놓았다가 유통시간이 지났다고 버리고, 너무 오래되었다고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음식이 넘쳐나는 현실이다. 조금 비싸도 그때그때 사서 먹으면 신선도가 있어 영양도 좋고 맛도 더 좋다. 식량 부족 현상이 온다는 말을 들으면 걱정은 되지만 지나친 우려는 금물이다. 사다 놓은 것을 다 먹고 난 뒤에 사서 먹어도 늦지 않는다. 냉장고가 비워가는 것이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냉동고까지 비면 얼마나 좋을까?


먹지도 않으면 결국 쓰레기가 되는데 늦기 전에 하나 둘 꺼내 먹어야 한다. 호박 잘라 놓은 것을 꺼내서 호박죽을 해 먹고 얼린 야채는 녹여서 볶아먹고 된장국을 끓여 먹으면 된다. 시장에 가면 파릇파릇한 싱싱한 채소가 유혹해도 당분간은 사지 말고 있는 것 열심히 먹고 가능하면 냉동고를 없애고 싶다. 커다란 냉동고가 있어서 이것저것 집어넣다 보면 버리는 것이 더 많다. 차라리 없으면 사지 않고 버리지 않아 이중으로 좋을 것이다. 물건이 조금 더 싸다고 사고, 가격이 오른다고 사다 보면 있는 것을 잊고 또 사게 된다.


집안 청소를 할 때, 버릴 것 버리고 정리를 하면 기분이 좋은 것처럼 냉장고가 비어서 좋다. 옛날에 냉장고가 없을 때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른다. 옛날에는 냉장고 없이 살아야 했기에 짠지와 장아찌 등 여러 가지 저장음식이 발달했지만 냉장고가 필요 없는 저장음식도 요즘에는 냉장고에 넣고 먹기 때문에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 젊은 사람들은 냉장고에 몇 병의 음료수만 넣어놓고 산다. 외식을 하고 배달 음식을 먹으면 사실 냉장고가 필요 없을 것이다. 조금씩 먹는 소스들이 많은데 자주 쓰지 않아도 냉장고에 넣어놓기 때문에 자리를 차지한다. 이것저것 꺼내서 자리를 옮겨주었더니 아주 깔끔하다.


물건이 많은 것도 좋지만 이렇게 깨끗한 냉장고를 보니 나름 매력이 있다. 채우고 쌓는 것만이 미덕이 아니다. 비우고 살 때 물건의 소중함을 더 알게 된다. 돈을 아끼려고 하는 행동이 때로는 돈을 버리는 것이 된다. 재료가 많으면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쓰고 남으면 마구 버려서 절약하려던 계획이 쓰레기를 더 만들게 된다. 얼은 호박을 녹여서 냄비에 물을 조금 넣고 호박을 중불로 끓였더니 물렁물렁하다. 믹서기에 넣어 곱게 갈아서 찹쌀가루 한 숟갈 넣어 호박죽을 만들었다. 냉동고 청소 덕분에 호박죽이 생겼다. 냉동고에 쌓아 놓지 말고 열심히 녹여서 먹어야겠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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