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는 모두 친구가 필요한지 모른다

by Chong Sook Lee


지연이는 뭐 뚜렷이 해 놓은 것 없이 애 하나 데리고 씨름하며 산다. 유치원에 다니던 수호는 방학이라서 집에서 놀고 있다. 방학이 끝나면 초등학생이 되는데 이것저것 가르쳐 보려고 인터넷에 들어가 보았다. 수호와 같은 또래의 엄마들은 새 학년이 되면 아이들이 뒤쳐질까 봐 여러 곳의 학원을 보내며 동분서주한다. 지연이는 수호를 생각하면 걱정이 많다. 무언가라도 가르쳐야 할 텐데 수호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초등학교 1학년 생이라도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 형제가 없는 수호는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서 놀면서 장난감과 이야기를 한다. 장난감이 마치 친구처럼 같이 웃고 싸우며 대화한다. 어떤 때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언성을 변형시켜서 진지한 대화를 한다.


혼자 자라서 그러려니 하는데 너무나 진지하게 노는 수호를 볼 때마다 지연은 신경이 많이 쓰인다. 장난감과 놀 때는 엄청 말도 많고 상상외의 이야기도 잘하는데 막상 친구와 놀 때는 말이 전혀 없다.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을 못 하고 전혀 들리지 않는 아이처럼 혼자서 논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무언가를 물어봐도 짧은 대답만 할 뿐 대화가 연결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말이 없어도 하고 싶은 말이 있고 참견하고 싶을 텐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너무 이상하다. 엄마인 지연에게도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이 말을 하지 않고 꼭 해야 할 말만 하고 산다.


지연이가 말을 시키려고 농담을 하며 웃어도 잘 웃지도 않고 제 할 일만 하는 수호가 너무 이상해서 의사에게 데려가 정밀검사를 해도 아무 이상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하루 종일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중얼대는 말소리 외에는 있는 것 같지 않은 수호에게 특별하게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좋아하는 만화의 주인공을 제 방식으로 그럴듯하게 잘 그려낸다. 연필 하나로 쉽게 쓱쓱 그리면 색을 칠하지 않아도 멋진 그림이 그려진다.


아이들이 뭐라고 하면 간단한 대답만 하고 같이 놀려고 하지 않는데 놀이터에 서는 같이 어울려 논다. 말은 별로 하지 않는데 뛰어다니고 오르내리며 노는 것을 보면 아무 이상을 찾지 못한다. 지연은 수호를 데리고 놀이터로 간다. 놀이터에서 이리저리 뛰며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수호를 보면 근심 걱정이 없어진다. 집에서 혼자 장난감과 이야기를 하며 이상한 세계에 빠져 있는 수호를 보면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어 어떤 때는 무섭기까지 하다. 친구나 선생님들에게 물어보면 아이들은 다들 그렇다고 하는데 지연은 자꾸 두렵다. 수호가 아무도 모르는 환상의 세계 속에 사는 것 같아 수호를 유심히 바라본다.


장난감과 이야기를 할 때는 4차원 속에서 사는 것 같은 대화를 하며 혼자 여러 명을 대신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럴 때마다 지연은 깜짝깜짝 놀라며 멀찍이 서서 수호를 본다. 온정신을 다해서 각자 맡은 역을 하기 위해 수호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손짓 발짓을 한다. 말도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내며 억양을 다르게 한다. 한두 명도 아니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혼자 다 해내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땀을 흘리며 한다. 한동안 그러다 보면 힘이 드는지 구석으로 가서 낮잠을 잔다. 자고 일어난 수호는 다시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하다 배가 고픈지 밥을 달라고 한다.


수호: 엄마 밥 주세요. 배고파.

엄마: 그래 뭐 줄까

수호: 빵 주세요.

엄마: 발라줄까?

수호: 아뇨. 그냥 빵만 주세요.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빵을 한 조각 먹고 난 수호는 물 한 컵을 들이켜 마신다. 6살짜리 같지 않다. 말을 시켜도, 말을 할 때도 필요 이상의 언어를 주고받지 않는 수호를 보며 지연은 답답증이 가슴을 치고 올라온다. 말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장난감 하고만 대화를 할까? 아이가 하나라서 정성을 들여서 잘 키우려고 수호에게 올 인을 하며 수호 옆에만 있는 지연은 없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다 해주며 눈길 한번 받아보려고 기다리는데 엄마라는 존재는 배고플 때만 보이는지 말을 하지 않는 수호가 야속하기만 하다.


다른 집 애들은 엄마에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아 귀찮아 죽겠다고 하는데 수호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애들마다 성격이 달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달라도 조금 다른 게 아니고 180도 다르다. 하루 종일 엄마와 하는 이야기는 몇 마디에 불과하다. 배고플 때만 엄마에게 다가갈 뿐 타인처럼 대하는 것을 볼 때마다 지연은 수호를 안고 방안을 돌아다닌다. 그럴 때도 수호는 불편해하며 발버둥 치고 엄마 품에서 빠져나오려 한다. 지연은 너무나 서운하다. 수호를 잘 키워보려고 육아에만 신경 쓰고 일도 안 하는데 수호는 엄마를 소가 닭 보듯 한다.


지연은 생각해 본다. 수호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 마스크를 사서 같이 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며 백화점으로 향한다. 수호에게 좋은 것을 골라보라 했더니 관심이 없어 주인에게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을 물어서 하나 사들고 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수호는 장난감을 이것저것 꺼내놓고 연극을 시작한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이야깃거리가 생기는지 숨을 헐떡이며 대화를 한다. 지연이는 이때다 생각하고 마스크를 쓰고 수호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 수호는 장난 감속의 인물들과 열심히 이야기를 하다가 못 보던 인물을 보더니 서슴지 않고 말을 건넨다. 지연이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 음성으로 수호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수호와 함께 한 동안 열심히 놀고 난 지연이는 마스크를 벗으며 수호에게 미소하였다.


엄마: 수호야. 엄마하고 노니까 재미있어?

호: 응. 엄마가 친구가 되어 좋아. 다음에 또 놀아요.

엄마: 왜 엄마로는 재미없어?

수호: 응.. 엄마는 매일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하지 말라고 하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은 하라고 하기 때문에 엄마는 놀 줄 모르는 줄 알았어.

엄마: 엄마는 수호를 가르쳐야 하니까 그러지.

수호: 학교에 가면 모두 배울 수 있어.

엄마: 그래도 엄마가 가르칠 것도 많아서 그래.

수호: 나는 엄마가 집에서는 내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어. 나는 형이나 누나가 없고, 동생도 없어서 너무 심심해. 그래서 장난감으로 연극을 하며 노는 거야.

엄마: 응. 그랬구나. 엄마는 그런 줄도 모르고 네가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병원에도 데리고 가고 선생님과 상담도 했는데 다들 잘한다고 해서 한번 너랑 같이 놀아 본거야.

수호: 엄마와 같이 노니까 너무 좋아. 이젠 심심하고 외로울 때 엄마와 함께 놀며 되니까 수호는 너무 행복해.


수호와 생전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한 지연이는 그동안의 답답한 마음이 한꺼번에 다 사라 졌다. 지연이는 남의 집 아이들처럼 수호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무언가를 가르치고 싶었는데 수호는 달랐다.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상상하며 노는 것이 훨씬 좋았다. 엄마가 수호의 마음을 알아주어 행복한 수호는 많이 달라졌다. 웃으며 대화하고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며 친구가 된 엄마를 따라다니며 즐거운 방학 생활을 했다. 지연이는 6살짜리 어린 수호를 성인으로 생각하며 남에게 지지 않게 경쟁의 대열에 놓았던 것을 생각하며 이제는 지연이 자신이 어린아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지연이가 수호와 놀고 대화하며 친구가 되고 형이 되며 동생이 되니 수호의 나날은 행복했다. 자식의 행복을 다른 곳에서 찾던 지연은 수호에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산다. 지연이는 순수하고 작은 것에 행복해하는 수호에게 오늘도 감사한다. 수호와 놀 생각을 하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자신을 보며 지연이는 슬며시 웃는다.


어느새 여름이 끝나간다.

수호와 엄마 지연이는 방학 내내 즐거운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연이가 수호의 진심을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이었다. 말이 없던 수호가 엄마와 웃고 농담하고 집안에는 수호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엄마로서 무조건 무언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수호와 친구가 되니 너무 좋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친구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엄마도 좋고 선생님도 좋지만 때로는 장난감처럼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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