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은... 미루었던 집안 정리하는 날

by Chong Sook Lee



조용한 하루가 시작된다. 어제 하루 종일 하늘이 꾸물대더니 새벽부터 장대비가 쏟아진다. 창밖을 내다보니 구름이 꽉 차서 하늘이 캄캄하다. 하루 종일 비가 올 것 같다. 지붕을 사정없이 때리며 내리는 빗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빗줄기는 거리에 곤두박질치며 떨어진다. 어느새 긴 고랑이 만들어져서 냇가처럼 흐르고, 수다쟁이 새들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뭇가지에 빗방울이 맺혔다 떨어진다. 비가 한동안 오지 않아 땅이 갈라진 곳이 많았는데 비가 오니 나무들이 초록을 드러내며 좋아한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인 것 같다. 안 그래도 더운 날이 별로 없던 이번 여름인데 이대로 가을이 오면 너무 서운하다. 그래도 아직 8월 초순인데 설마 하니 가을이 오지는 않을 텐데 은근히 걱정이다.


아직 뜨거운 날이 필요한 텃밭 식구들이 추워할까 봐 걱정이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로 자라는 야채들인데 비가 와서 온도가 떨어지면 성장이 멈춘다. 그들 나름대로 가을을 준비하고 떠나기 전에 다시 여름 날씨로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올해는 처음으로 오이 모종을 두 개 친구가 가져다주어서 심었다. 남쪽을 향한 땅에 지렛대를 세워 주었더니 어찌나 예쁘게 잘 자라는지 매일 들여다보느라 바쁘다. 마디마다 꽃이 피고 꽃마다 오이가 열려 있는 모습이 귀여워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사진을 찍는다.


내 손으로 직접 오이를 길러 보기는 생전 처음이라 참으로 신기하다. 아기들 새끼손가락보다 더 가느다란 오이들이 꽃에 매달려 있나 하면 어느 순간 어른 손가락만큼 자라나 있다. 다른 일을 하다 보면 나 좀 보라는 듯이 어린 손주 팔뚝만큼 자라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오이는 물이 부족하면 맛이 쓰다는 말을 들어서 열심히 물을 주어서 그런지 맛이 달아 입에서 살살 녹는다. 아무도 모르게 자란 오이를 하나씩 따먹는 재미가 정말 쏠쏠하다. 아직은 다섯 개 밖에 따 먹지 못했지만 욕심 같아서는 100개 정도 따먹고 싶다. 누군가는 오이농사로 오이소박이까지 담아 먹었다는데 기대가 된다.


이번 주가 지나면 다시 여름 날씨가 된다고 하니 기다려진다. 천둥이 요란하게 치더니 번개도 덩달아 번쩍 거린다. 오늘이 음력으로 칠월 칠석날 이라는데 일 년 만에 만난 견우와 직녀가 반가운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것 같이 비가 제법 많이 온다. 만물이 푸르름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먼지를 씻어주고 목마른 대지는 맘껏 물을 빨아들인다. 지상의 삶을 끝내고 겨울을 나기 위해 그들은 자연에 순종한다. 인간이기에, 인간이라서 라는 이유로 자연을 훼손하는데 뿌린 대로 거두고, 준대로받는다는 것은 영원한 진리다.


비는 여전히 내린다. 세찬 비바람에 노란 들꽃이 넘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지붕에 물받이가 막혔는지 빗물이 넘쳐서 잠시 비가 멈추었을 때 남편이 올라가 보니 새들이 물어다 놓은 나뭇가지와 바람 타고 날아온 나뭇잎으로 막혀 있었다. 간혹 청소를 해주는데 요즘 바람이 많이 불어서 나무에서 이파리가 많이 떨어졌나 보다. 이 비가 끝나면 가을이 더 가까이 오겠지만 시원하게 오는 비를 바라보고 있으니 좋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은 미루어 두었던 집안일을 하고 싶어 진다. 날씨가 좋으면 햇볕이 아까워서 집 밖으로 나가서 하늘 보고 땅을 보는데 비 오는 날은 집안이 더 포근하고 좋다.


정리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쉬지 않고 간다.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버려야만 진정한 정리가 된다는 것을 아는데도 실천을 못한다. 어느 날 마음이 시키는 날이 오면 그때 하면 된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마음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그처럼 간사하고 완고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도 쉽지 않은데 그냥 게으름을 피고 싶을 때는 꼼짝 하기 싫다. 집안일은 내가 해야 할 일이 많고, 내 손이 닿아야만 해결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언젠가는 내가 해야 한다.


언젠가 한 번은 부엌살림을 정리하려고 여기저기 쌓아놓고, 숨겨놓고, 감춰놓은 것들을 꺼내 놓았더니 산이 되었다. 그 뒤부터는 서랍이 얼마나 많은 물건을 담을 수 있는지 알게 되어 웬만하면 물건을 안 사고 산다. 굳이 여유로 이것저것 사다 쌓아놓을 필요가 없는 현대 생활이다. 저녁에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에 배달이 되어 싱싱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냉장고를 채울 필요 없이 하루하루 조금씩 사다 먹으면 큰 냉장고도 필요 없다. 옷도 한 두벌 여유가 있으면 충분하다. 특히나 부엌살림은 새로운 물건들이 많이 나오지만 여러 가지를 쓸 수 있는 것 하나만 있으면 된다.


몇 번 쓰지 않고 앞으로도 쓰지 않을 물건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는데 막상 물건을 보면 아까운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철이 덜 들었나 보다. 누군가는 하루에 하나씩 버리기로 마음먹고 실천하는 중이라고 하는데 일 년이면 365개를 버리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좋은 생각이다. 열심히 사서 모으고 열심히 버리면 어느 날 빈손으로 가볍게 날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앞 뜰에 있는 자작나무 꼭대기에 까치 한쌍이 앉아서 논다. 반가운 손님이 올 것 같아 기다려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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