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진리의 말

by Chong Sook Lee



바람 한점 없이 푹푹 찐다. 여름이 떠나기 전에 본때를 보여주는 것 같다. 사람들이 올여름은 별로 덥지 않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지난주 내내 덥더니 이번 주도 영상 30도를 넘는다고 한다. 햇볕이 힘이 없다고 누가 말했나? 그야말로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아침에 빨아서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가 2시간도 되지 않아 바짝 말랐다. 마당에 물을 뿌리면 순식간에 말라버리고 머리에 물을 뿌리면 소나기를 맞는 것처럼 시원하다. 뒤뜰에서 노는 손자들이 더우니까 물을 틀어놓고 물속을 뛰어다닌다. 아이들도 너무 더우니까 비를 기다리나 보다.


웬만한 더위는 그냥 넘어가는데 오늘 더위는 숨이 탁탁 막히고 습해서 끈적거린다. 어쩌다 불어오는 바람도 뜨겁다. 농부들은 이런 고온다습한 날씨를 벼가 익어가기 좋은 날씨라고 한다. 이렇게 며칠 지나고 보면 들판은 황금색 옷을 입고 언제 더웠냐는 듯이 찬 바람이 고개를 들 것이다. 계절의 순환을 피부로 느끼며 또 다른 해를 보내고 봄을 기다리며 겨울을 살아야 한다. 계속되는 코로나와 전쟁 속에서도 사람들은 삶을 이어간다. 힘닿는 대로 도움을 주고 새로 찾은 일상을 즐기며 사는 것을 보면 여전히 세상은 어쩔 수 없이 불공평하게 된다.


홍수로 고생하는 고국 소식이 들린다. 그 많은 비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 많은 피해를 주고도 비가 더 올 것이라는 연이은 비 소식이 원망스럽다. 사람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서 오는 비를 막을 수는 없는데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서로 협조하는 모습에 마음이 찡하다. 삶은 어쩌면 고난의 연속이다. 한 가지 일이 끝나면 다른 걱정거리가 생겨난다. 인생은 나그네고 소풍 나온 것이라 한다. 소풍길에 폭풍우도 만나고 뜻하지 않은 소나기를 맞기도 한다. 흐리고 꾸물대던 하늘이 말짱하게 개기도 하고 바람이 심하게 불기도 하고 화창한 날이 되기도 한다. 목적지를 향해 가노라면 생각지 못한 불행을 만나기도 하고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열심히 도와주어도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턱없이 부족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은 한계가 있다. 한쪽에서는 울고불고 고통스러워하고, 한쪽에서는 온갖 멋진 쇼와 재미있는 경기를 보며 즐겁게 살아간다. 며칠 동안 비가 오지 않고 뜨거운 날씨가 계속되어 잔디는 말라가고 있다. 비를 기다리는데 비가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가뭄에 스페인은 꺼지지 않고 끝없이 번져가는 산불로 국제적인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12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피하고 산불은 계속 번지고 있는 뉴스를 본다. 꺼질 줄 모르고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길을 보니 그저 막연하기만 하다.


지구는 고열에 타들어가고 있는데 하늘은 비가 필요한 곳에 비를 내려주지 않고 있다. 보기만 해도 뜨거운데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삶은 어떨지 상상이 안 간다. 그런 것을 보면 조금 더운 이곳의 더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더우면 샤워하고 응달에 앉아 있거나 시원한 지하실로 내려가면 된다. 작년 여름 지속된 폭염으로 더위를 견딜 수 없어서 찬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던 생각이 난다. 올해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서 견딜만하다. 다행히 이곳 더위는 아주 건조하다. 영상 30도가 넘어도 습하지 않아 끈적거리지 않고 불쾌지수도 그리 높지 않아 좋다.


언젠가 오래전 여름에 한국에 다니러 갔는데 어찌나 습하고 더운지 엄청 고생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더워서 샤워를 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를 하며 한 달 동안 있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덥다. 그런 한국에서 살다가 건조한 이곳에 이민 온 뒤 몇 해 동안은 여름에도 추워서 스웨터를 입고 지냈다. 시간이 가고 피부가 서서히 적응되면서 이제는 달라져서 지금은 더위를 느끼며 산다. 이번 주가 고비라고 하는데 소나기라도 와주기를 고대한다. 바람 한점 없이 나무들은 꼼짝하지 않고 죽은 듯이 서있다. 뜨거운 햇볕을 받고 서 있으니 얼마나 뜨거울까?


사람 같으면 어디라도 시원한 곳으로 갈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서 있어야 하는 나무들이다.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고스란히 견디는 나무들이 위대하다. 며칠 전 새벽에는 어찌나 바람이 삼하게 부는지 잠을 깨서 일어나 보니 나무들이 바람 때문에 휘청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저러다가 가지가 부러지고 뿌리가 뽑히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하게 불었다. 비가 무섭게 오려나 했는데 다시 잠잠해지고 비는 오지 않았다. 바람도, 비도 인간의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새들도 가만히 있는지 조용하다.


세상만사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살 수 있으면 좋은데 쉽지 않다. 동네에 하수구에 문제가 생겼는지 며칠 전부터 땅을 파고 공사로 시끄럽다. 기존의 콘크리트를 기계로 부순다. 꼬챙이 같은 기계를 땅에 대고 구멍을 뚫는데 뽀얀 먼지가 하늘로 올라가며 동네를 덮는다. 먼지도 먼지지만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 열어 놓았던 창문을 닫고 지하실로 내려갔더니 시끄럽지 않고 좋다. 사는 동안 문제가 있을 때마다 도망가면 해결이 된다면 다들 도망가겠지만 피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토록 시끄럽게 하던 공사가 마무리 지고 동네는 다시 조용해졌다.


생겨날 때가 있으면 사라질 때가 있다. 지금 내가 덥다고 불평한들 더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지금 힘들어도 좋은 날이 온다고 생각하며 살면 된다. 곧 가을이 오면 뜨겁던 오늘로 돌아가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실감 난다. 이열치열을 위해 삼계탕을 먹으며 더위를 이겨내고, 몸에 필요한 비타민 D를 섭취하기 위해 선텐을 하면 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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