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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r 17. 2020

돌아보자... 동네 한 바퀴

서로 마주보고 사랑을 나누며 사는 나무들(사진:이종숙)


오늘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에서 운영하는 모든 시설이 어제 오후 6시를 기준으로 무기한 문을 닫았다. 아직은 코로나 19의 초기단계에 있는 이곳이지만 공공시설로 인하여 무더기 확산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확진자수가 많아지면서 지역사회로 이미 퍼지기 시작했지만 미연에 방지하는 조치로 내린 결정이다. 며칠 전부터 체육관은 가지 않았고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마지막 한파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추워서 못 나가게 되어 핑계 김에 집에서 집안 정리를 하며 지냈다. 평소 같으면 일요일이라 성당에 가는 날인데 아이들이 가지 말라고 성화를 해대는 바람에 집에 있기로 했다.

세상은 온통 하얗다. 눈이 세상을 덮었다. 날씨도 춥고 코로나 19로 외출을 줄이고 살아야 하지만 답답하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햇살은 찬란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으니까 당분간 성당도 안 갈 것 같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앉아 있는데 몸이 아주 피곤하여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피로가 풀렸다. 점심을 먹고 이대로 앉아 있다가는 어영부영 하루가 그냥 지나갈 것 같아 남편과 동네 한 바퀴 돌아보려고 완전 무장을 하고 나갔다. 막상 나가보니 생각보다는 그리 춥지 않았지만  햇살은 따뜻해 보여도 바람은 역시 차다. 평소에도 조용하지만 일요일 오후라서 길거리가 유난히 조용하고 한가롭다. 나무들은 여전히 집을 지키고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매주 1000여명이 다니는 캐나다 성당이 외롭게 혼자 서 있다. (사진:이종숙)

천천히 길을 따라 걸어본다. 5분가량 걸어가면 캐나다 성당이 보인다. 평소 같으면 교인들이 오고 가고 정신없이 바쁘지만 오늘은 차 몇 대만 주차되어 있을 뿐 아무도 없다. 매주 1000여 명이 넘는 신자들이 오는 성당인데 250명이 넘는 집회가 금지되어 문을 닫은 모양이다. 코로나 19로 세상은 있지만 세상이 멈춘 것 같다. 오랜만에 동네로 나오니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띈다. 사람 사는 모습이 천차만별이다. 타운하우스라 집은 다 똑같은데 자세히 보면 다 다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생활습성이 다르다 보니 그 나름대로  사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의 겨울은 춥고 길다. 많은 눈이 자주 내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을 청소하는 것이 첫 번째로 중요한 일이다.

걸어가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아도  한번 밟힌 눈은 치우기 힘들기도 하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미끄러지거나 사고가 발생하면 집주인이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 눈이 그치고 48시간 안에 눈을 치지 않으면 벌금도 내야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이 다치면 더 복잡해진다. 오래전 어느 노인이 걸어가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 이후로 생겨난 법이다. 몇몇 집은 눈을 치워 걷기가 좋은데 그렇지 않은 집도 많다. 나도 오는 길에  눈밑에 얼음이 있어 몇 번을 넘어질 뻔하며 걸었다. 날이 따뜻하면 표면이 살짝 녹았다 다시 언 뒤에 눈이 오면 그대로 이지 않는 블랙 아이스가 된다. 눈인 줄 알고 밟고 걸어가다 힘없이 넘어지며 다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눈을 치우고 소금을 뿌려 주어야 청소가 끝나는데 많은 사람들은 눈만 쓸고 말기 때문에 사고가 난다.

나무도 집도 사람도 늙어가니 세월이 무상하다.(시진:이종숙)


가다 보니 커다란 집이 보인다. 앞에 큰 나무가 집을 가려 집이 잘 보이지 않고 뜰이 공원처럼 엄청 큰 집이다. 해가 길어지면 때때로 우리도 저녁을 먹고 그 집 옆에 난 길을 따라 산책을 한다. 뒤뜰에는 사과나무가 여러 그루 있어 봄에는 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주먹만 한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다. 꽃은 피었다 떨어지고 사과도 열렸다 먹는 사람이 없으니 떨어진 채 뒹굴어 다닌다. 아무도 뒤뜰에서 놀지 않고 늙은 개 하나가 심심해서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컹컹대며 짖을 뿐이다. 동네가 생긴 지 50년 정도 되었으니 사람도 집도 늙고 나무도 늙었다. 그 집을 지어 살기 시작한 사람은 노인이 되었고 자손들이 어쩌다 와서 청소를 해주는 것을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집 앞의 길을 깔끔하게 치워 놓은 집을 지나니 나무에 자그마한 새집을 세 개 걸어 놓은 집이 보인다. 나무가 많은 이 동네는 특별히 새집을 만들어 주지 않아도 새들이 몰려든다.  빨간색으로 예쁘게 만든 새집은 그 집에 사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아 좋다. 새 밥을 한 줌씩 넣어 두어 새들이 들랑거리며 찍어 먹는 모습이 예쁘다. 사람들은 많이 살지만 사람들의 모습이 안 보이는 추운 겨울에 나무에 걸려있는 새집이 참으로 정겨워 보인다. 여름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나와서 걷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있기도 하는데 삭막한 겨울에 귀여운 새집을 걸어두어 지나가는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그 집에 사는 사람이 고맙다. 봄이 오면 꽃도 피고  새들도 날아다닐 것을 상상하니 마음이 벌써 설렌다.



옆으로 돌아가니 작년에 열심히 집수리를 하던 집이 보인다. 지금은 공사가 다 끝나 멋진 집으로 되었다. 검은색과 회색 그리고 하얀색의 작은 돌로 밖을 장식하고 넓은 창으로 집안을 환하게 만들었다. 뜰에 나무가 몇 그루 있지만 그곳의 특징은 누런색의 커다란 바위를 군데군데 놓아둔 것이다. 나름대로의 특징을 살려 꾸민 집이지만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너무 삭막해 보이고  인위적으로 보인다. 커다란 바위들 대신에 나무와 꽃이 어울리고 한두 개의 작은 돌이 있으면 더 자연스러워 보일 텐데 약간은 아쉽다. 아마도 주인은 길옆에 있는 집이라 혹시라도 지나가던 차가 잘못하여 집 쪽으로 올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이해가 된다.

우리 식구를 편하게 해주는  우리 집.(사진:이종숙)


돌다 보니 거의 우리 집에 가까워져 간다. 오랫동안 살아온 우리 집이 여전히 정겹게 우리를 반긴다. 아이들의 유년기와 사춘기를 보내고 결혼도 하고 아이들을 낳아서 데리고 와서 놀고 쉬는 집이다. 우리처럼 나이 들어가는 우리 집이 화려하지 않아도 우리 식구들을 편하게 살게 보듬어준 집이 참 좋다. 조촐한 모습으로 편안하게 서있는 집이 너무나 감사하다. 눈 쌓인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본다. 토끼 발자국이 선명하여 보니 전나무 아래에 하얀 토끼가 봄을 기다리며 앉아서 졸고 있다. 가까이 가면 놀라 도망갈 것 같아서 살살 가서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토끼도 우리가 낯이 익었는지 도망도 가지 않고 앉아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살아온 집은 연륜이 보인다. 31년 동안 살면서 지붕도 새로 하고 담도 새로 했다. 이제 남은 것이 있다면 집안에 페인트 칠하는 일만 남았다. 언젠가라는 말은 거짓말이라지만 언젠가 하리라는 약속 아닌 약속을 한다.

우리집을 지키고 있는 토끼야 고맙다.(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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