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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r 18. 2020

코로나 19의 직격탄이 세계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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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람쥐가 소풍을 나왔네요(사진:이종숙)

코로나 19의 직격탄을 맞았다. 고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전쟁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분들을 도울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는데 무더기 감염자와 확산의 숫자를 보며 기가 막혔다. 그러는 와중에  이탈리아의 무서운 확산과 사망자수에 놀라 두려워하고 그분들과 힘겨운 시간을 마음으로 동참하고 있을 때 캐나다도 코로나 19가 도착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캐나다 수상 부인도 감염자가 되면서 여기저기서 확산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몇 명이었던 감염자는 400여 명이 넘게 되니 사회는 갑자기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에 물건을 사들이고 나름대로 비상사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쇼핑센터에 가보면 비어있는 선반을 많이 보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술렁거리며 물건을 사가는 모습이 자꾸 많아져 간다.

지난 토요일 우유와 계란을 사려고 쇼핑센터에 갔는데 식료품점은 아주 바빴지만 다른 곳은 적막 하리만큼 조용했다. 평소에 푸드 코트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데 한두 명이 있을 뿐 너무나 한가했다. 옷가게는 물론 쇼핑센터 전체가 죽은 듯이 조용했다. 필요한 물건만 사 가지고 집에 온 뒤에 뉴스를 보니 시에서 운영하는 공공기관을 모두 닫는다고 한다. 회원권을 사용하지 못한 사람들은 남은 시간들을 나중에 크레디트를 받을 수 있다 한다. 나도 약 한 달 정도 회원권을 더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던 하루 뒤에 정부는 직격탄을 날렸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그리고 탁아소를 전면 닫기로 결정했다. 9월까지 라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가면 볼 사람이 있어야 부모들이 일을 가는데 어쩌란 말인가? 물론 한국에서는 두 달 전부터 맞벌이 부부들의 고충이 컸다는 것을 알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 청천벽력이다. 두 아들과 두 며느리 모두  일을 다니는데 이거 정말 큰일이다. 그렇다고 멀리 사는 큰아들 네 집에 가서 아이들을 몇 달 동안 봐줄 수도 없고 작은아들 네 손주들도 봐줘야 하고 걱정이 태산이다.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손주들을 데려와서 우리 집에서 보자니 어린것들이 틈틈이 엄마 아빠를 찾을 것이다. 걱정이 되어 아이들과 이야기를 했더니 멘털붕괴 일보직전이란다. 아무것도 모르는 손주들이야 엄마하고 있으니 좋겠지만 아이들을 보며 하는 재택근무가 상상이 간다.

그래도 둘째는 아이들이 커서 말귀를 알아들으니 다행이지만 큰 아들 네는 손주들이 아직 어려서 더 걱정이다. 3살짜리 손자와 와 1살짜리 손녀딸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천방지축이니 순식간에 생기는 위험한 상황을 두 눈에 불을 켜고 보아도 모자랄 판이다. 내가 세 아이들을 낳아 키울 때는 내 수입보다 세 아이들 맡기는 탁아소 값이 너무 비싸서 나는 일을 할 생각도 못했다. 차라리 내가 집에서 아이들을 보는 것이 돈을 버는 것이었다. 6년을 집에서 아이들 보면서 사회적으로는 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애 최고로 잘한 일이라고 자부한다. 그때 나는 돈이 없어서 아이들을 집에서 보았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다 자라고 보니 그 시간이 아이들과 나의 황금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세월이 흘러서 엄마와 집에서 놀던 아이들은 결혼하여 아이들의 부모가 되었고 세상이 많이 변한 지금은 없으면 없는 대로 살던 시대가 아니다. 맞벌이로 살아가야 하기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한 살 때부터 탁아소에 맡겨진다. 두 아이들을 맡기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월급보다 더 많이 들지만 '경단녀' '경단남' 이 되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 아이들 탁아소 비용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얼마  남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고생하면 되니까 다들 힘들지만 그렇게 하고 사는 현실이다. 시대가 바뀌고 사는 게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람 사는 것은 힘들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일찍부터 부모를 떨어져야 하고 부모들은 떨어지지 않으려는 어린것들을 탁아소에 맡기며 가슴이 찢어진다.

어쨌든 코로나 19는 무기 없는 직격탄을 날렸다. 남의 나라일이 나의 나라 일이 되었고 남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다. 아픔을 동참함을 넘어서 세계가 서로 등을 돌리고 상대를 막고 밀쳐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학교와 탁아소가 닫음으로 생겨나는 문제는 상상외로 엄청 크다. 한국에서 맞벌이 부부들이 일은 해야 하는데 아이 맡길 곳이 없어 안타까워할 때 정말 힘들겠다. 안됐다 생각했는데 막상 그런 일이 이곳에도 일어나 나에게 닥치니 걱정이 태산이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하는 재택근무는 정말 불가능하다. 잠만 자는 신생아 라도 힘들 텐데 서너 살 짜리는 더더욱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먹을 것 챙겨주고 위험하지 않게 같이 놀아 주고 말 상대도 해주어야 하고 정말 해야 할 것이 한 둘 이 아니다.

부모도 힘들고 아이들도 힘든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데 하루하루 확산되어가는 현실이다. 나이는 들어가고 내 몸도 점차 힘들어지지만 아이들이 힘들면 당분간이라도 도와주어야 한다. 어린것들 하고 일을 하는 아이들의 숨통이라도 튀어주고 싶은 엄마 마음이다. 어쩌다가 이런 전염병이 돌아서 세상을 뒤집어 놓는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산 넘어 강이라고 하루하루 사람 사는 것이 점점 힘들어 감을 느낀다. 이 모든 것들이 어쩌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함정에 인간이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을 훼손하고 이기심과 일시적인 편함을 위한 생활습관에서 생긴 것이  아닐까? 욕심과 배려 없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까? 방종과 무절제와 풍요에서 오는 낭비로 인한 것일까?


무서운 전염병은 역사에도 여러 번 생겼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며 살아온 것에 대해 생각해 왔다. 하지만 매번 다른 전염병으로 생기는 고통을 반복한다. 확실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이 시점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한 나라의 문제만이 아닌 세계적인 문제로 번졌다. 하늘의 길도 바닷길도 다 열려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자국민을 살리기 위해 나라마다 국경을 봉쇄하고 비상사태를 선언한  역사상 최악의 심각성을 가진 코로나 19는 언제 떠날 것인가?


코로나 19의 적격탄이 세계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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