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에 쌓인 눈이 사방 천지로 흩어진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 화가 잔뜩 난 모습으로 눈발이 날리며 엊그제 내린 눈 위로 쌓인다. 이렇게 겨울이 오나보다. 며칠 동안 날이 따뜻하면 먼저 온 눈이 녹을 텐데 이대로 봄이 올 때까지 계속 쌓일 것 같다. 며칠 사이로 가을에서 겨울로 건너뛰어 창밖은 마른 나뭇잎 몇 개가 쓸쓸하게 바람에 날린다. 새파란 새싹이 나와서 자꾸만 쳐다보고 봄이 왔다고 좋아했는데 벌써 겨울이 온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 겨울이 온다고 하니 벌써부터 봄이 그리워진다. 어차피 건너야 할 강이다. 미리 겁먹고 움츠리고 있기보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 거실에 있는 편안한 소파가 아무런 생각 말고 그냥 누우라고 유혹을 한다.
유혹을 뿌리치고 코트를 입고 나간다. 춥다. 바람은 칼바람이고 다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걷는다. 굳이 나가야 할 이유는 없지만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집에 있기 시작하면 겨우내 게으름이 쌓인다. 활동량이 없는 겨울에는 매일의 루틴이 중요하다. 싫거나 좋거나 마음을 굳게 먹고 나가야 한다. 나가지 않으면 며칠 사이로 다리에 힘이 빠지고 면역력도 저하된다. 날이 갈수록 건강이 중요함을 실감한다. 누가 건강을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지켜야 한다. 거창하고 특별한 운동을 계획하면 중도하차가 되기 쉬워 가장 쉽고 편한 걷기를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도 막상 나가보면 걸을 만하다. 쌓인 눈 아래 녹았다 다시 얼어붙은 눈이 울퉁불퉁하여 잘못하면 미끄러져서 다치기 십상이다. 군데군데 얼지 않은 곳을 골라서 걷는다. 추웠던 몸이 더워져서 굽었던 어깨가 조금씩 펴지고 고개를 들고 모자와 장갑을 벗고 걸어간다. 참을성이 없어 조금 추우면 벌벌 떨고 조금 더우면 못 참고 벗어버린다. 너무 일찍 온 겨울이 야속하지만 이러다 봄이 오겠지 하는 희망도 가져본다. 길에는 걷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갑자기 온 눈 속에 숨어 있는 빙판이 두렵고 유난히 추운 첫추위 때문에 웬만하면 집에서 뒹굴거리고 싶어 진다.
하늘도 추운 지 시퍼렇게 얼어서 세상을 내려다본다. 까치 여러 마리가 하얀 눈 위를 걸어 다닌다. 눈보라에 떨어진 나무 열매를 찍어먹느라 바쁘다. 이제 먹을 게 귀한 철에 새들은 무엇이라도 먹으며 배를 채워야 한다. 눈이 오기 전에 블루제이 한쌍이 잔디에서 날아다니는 하루살이들을 잡아먹던 것이 생각난다. 무엇을 하나 보려고 다가갔는데 사람이 가까이 오거나 말거나 벌레잡이에 정신없던 블루제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보이지 앉는다. 학교 앞을 지나 수영장 앞으로 걸어간다. 테니스 코트에서 많은 사람들이 테니스를 치고 롤러스케이트 장에서 묘기를 부리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고 텅 비어 있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달려와서 놀던 곳인데 아무도 없어 쓸쓸하다. 아이들이 바글대던 곳은 낙서들이 서로를 쳐다보고 텅 빈 쓰레기통 하나가 외롭게 서있다. 겨울은 이렇게 모든 것을 정지시키고 잠재운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도 땅속에서는 봄을 만들기에 바쁘다. 사람들은 밖으로 향하던 발길을 마음속으로 다듬고 기다리며 봄을 향한다. 겨울은 침묵의 계절이다. 공원과 운동장이 조용하다. 하얀 눈이 펼쳐진 들판은 토끼들 발자국만 보이고 푸르던 여름의 모습은 눈 속에 파묻혀 있다. 추워서 웅크리고 괜히 나왔다고 마음속으로 은근히 후회를 했는데 발걸음이 가볍다.
눈이 와도 거리는 차로 바쁘다. 어디를 저리 바쁘게 가는지 오고 가는 차들이 많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와 바쁘게 걷는다. 아침에 학교 갈 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데 무엇이 그리도 반가운지 아이들은 자신을 데리러 온 차를 향해 뛰어간다. 만남은 역시 좋은 것이다. 매일 만나는 식구들인데 여전히 반갑고 편하다. 때때로 식구들끼리 오해를 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가족은 마음의 안식처다. 하루 종일 어른들은 직장 생활에 지치고 아이들은 학교생활로 피곤하지만 가족이 있기에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내일이 없는 것 같은 절망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가족의 힘이다. 멀리 있어 만나지 못해 그리움에 애타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견딜 수 있다.
학생들이 떠난 주차장이 비어 가고 학교 근처에 있는 버스 종점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다. 동네를 걸으면서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다. 집안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는 것도 좋지만 나와서 사람들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도 좋다. 한쪽에서는 공사를 하고,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심심한 아이 하나가 눈이 쌓인 농구장에서 농구를 하고, 할 일 없는 갈매기는 괜히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끝까지 가을을 지켜보겠다고 버티고 서 있던 단풍나무는 나뭇잎을 다 떨구고 별것 아니라는 듯이 늠름하게 팔을 벌리고 서 있다. 나무도 저렇게 겨울을 맞는데 엄살 부리지 말아야겠다고 열심히 걷다 보니 집에 도착했다. 담장에 매달려있는 빨간 마가목 열매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