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가 몰아친다. 눈이 오는데 지붕에 쌓인 눈도 함께 바람에 날린다. 창밖은 한 겨울이라서 감히 나갈 엄두가 안 나지만 눈이 너무 쌓이면 청소하기 힘들어서 옷을 두껍게 입고 나간다. 집에 있으라는 남편의 만류에도 조금이라도 거들기 위해 나간다. 영하 16도에 체감온도는 영하 22도가 넘으니 11월 날씨로는 상당히 추운 날씨다. 두꺼운 목도리로 입을 가리고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완전 무장을 하고 나가니 괜찮다. 우리 집은 코너 집이기 때문에 땅이 넓다. 남편이 혼자 치워도 되지만 같이 하면 힘도 덜 든다. 차고 앞은 내가 치울 구역으로 정해 놓아 차고 앞으로 나가본다. 하얀 눈이 예쁘게 쌓여있는데 눈 치우는 삽으로 쭉 밀고 나가면 콘크리트가 보이고 몇 번 이리저리 밀고 다니면 된다. 33 년을 넘게 살아온 집이기 때문에 눈 감고도 할 수 있다.
남편은 뒤뜰과 앞뜰에 있는 길을 치우고 집 옆에 있는 길로 나가서 치우기 시작한다. 내 구역을 끝내고 남편이 치우는 곳으로 가서 같이 치우니 금방 끝난다. 그래서 옛말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나 보다. 밤새 눈이 많이 오면 어쩔 수 없이 기계로 치우는데 이렇게 낮에 가볍게 오는 눈은 삽으로 치우는 게 더 쉽다. 새소리조차 없는 동네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다. 오늘따라 지나가는 차도 없다. 도시에 살지만 도시 같지 않은 곳에 살다 보니 시끄러운 곳에 가면 적응이 안 된다. 어쩌다 아이들과 식당에 가면 음악소리도 시끄럽고 사람들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정신이 없다. 그렇다고 그냥 나올 수 없어 앉아서 깜깜하고 시끄러운 곳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무엇을 먹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라도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어져서 같이 가지만 앞으로는 더 싫어질 것 같다.
세상은 젊은이들이 이끌어간다. 어디를 가도 젊은이들이 꽉 차있고 나이 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나이 들면 좋고 멋진 장소를 알지 못하고 음식을 많이 먹지도 못하기 때문에 자주 가는 곳에 가서 먹는 것만 시켜서 먹게 된다. 맛을 알 수 없어서 이것저것 먹기도 뭐해서 아는 것 몇 가지 를 시키는데 아이들은 평소에 먹고 싶은 것이나 안 먹어본 새로운 것을 시켜 먹으며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면 부럽다. 가격에 신경을 쓰며 살아가는 나와는 다르다. 어차피 외식을 하러 나가면 고급으로 최고의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한다. 가격보고 비싸면 일단 한발 물러서는 나와는 다르다.
비싸도 맛있게 잘 먹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아이들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잘 안된다. 물건을 사거나 문화생활을 하는데도 가격을 신경 쓰고 비싸면 안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살아갈 날이 짧아지는 것 생각하면 젊은이들처럼 용감하게 살아도 된다. 가격을 따지다 보면 하고 싶은 것을 못한다. 딸과 쇼핑을 가면 가격을 가린다. 비싸면 분명히 안 산다고 할 엄마를 잘 알기 때문에 가격을 보여 주지 않는다. 아무리 비싸도 필요한 것은 필요할 때 사야 하는 아이들이 있어 좋은 물건을 갖추고 산다. 돈을 더 주고 사도, 덜 주고 사도 물건을 잘 쓰면 가치를 다한 것이고 가격은 세월이 지나면 잊는다.
눈은 여전히 내린다. 오늘 하루 종일 계속 내릴 것 같다. 오늘은 어디 갈 생각 말고 집에서 가만히 있어야겠다 오늘 같은 날은 벽난로에 나무를 때며 넷플릭스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게 최고다. 어설피 밖에 나가서 감기 걸리거나 넘어져 다치면 안 되니까 얌전히 집에 있는 게 좋다. 며칠을 계속해서 내리는 눈이 멈추면 그때 나가도 된다. 장작불을 때고 불멍을 때리다 보면 이런저런 추억에 잠길 수 있어 좋다. 할로 윈 데이가 지나기 무섭게 쇼핑센터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바쁘다. 해마다 이맘때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서 장식하며 연말에 집에 오는 아이들을 기다렸는데 올해는 게으름을 피운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만사가 귀찮아서 자꾸만 하루 이틀 미룬다. 내 마음을 읽은 남편이 벽난로에 나무를 때우기 시작한다. 나무 타는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고 나무들은 딱딱 소리를 내며 온몸을 태운다. 활활 타다가 온몸이 새까맣게 되면 서서히 속도를 줄이는 나무는 더 이상 탈 수 없을 때 재가 되어 떨어진다. 밖에는 눈이 오고 집안에는 장작불이 타는 낭만의 장소가 되었다. 가을이 너무 빨리 갔다고, 겨울이 너무 일찍 왔다고 투정을 했는데 일찍 찾아온 겨울 덕분에 11월 초에 벽난로 호강을 누린다. 앞으로 더 추운 날씨가 오겠지만 이대로도 좋다.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다. 새빨갛게 타는 나무를 바라보며 겨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겨울이 지나면 또 새봄이 오리라. 시간이 가고 봄이 오면 나이를 먹고 늙지만 그것이 바로 삶이고 인생이다. 자연이 계절을 알고 바뀌어가듯 우리들의 몸도 자연을 따라 간 다. 편하고 따뜻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지향하며 오는 계절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산다. 타다가 타다가 더 타지 않아도 될 때 불은 소리 없이 꺼지는 것처럼 우리네 삶도 불꽃처럼 피고 질 것이다. 빨갛게 타오르는 불이 아까워 감자를 은박지에 싸서 불위에 살짝 올려놓았더니 감자 익는 냄새가 솔솔 나온다. 눈이 오고 벽난로에는 나무가 타고 감자가 맛있게 익어가는 오후에 행복이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