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파도를 타며 산다

by Chong Sook Lee



시작한 그림이 이젤 위에 며칠째 놓여있다. 잘 그려 보려고 하다 보니 더 안된다. 잘 되었다 생각했던 그림이 색이나 구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고치고 또 고친다.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고 내 머릿속 상상으로 그리기 때문에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쉽게 작품이 나오고 어떤 때는 그림 하나 가지고 며칠 동안 씨름을 한다. 정성을 들이지 않아도 잘 그려지고 대충 그려도 그럴싸한 그림이 나오는데 이번은 아주 어렵다. 색의 조화도 맞지 않고 명암도 안정이 안되어 배경색을 바꾸어도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 이럴 때는 잠시 쉬며 그림을 잊어버리는 것이 제일 좋다.


그림이나 세상살이나 술술 풀릴 때가 있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안될 때가 있는 법이다. 안 되는 일을 해보려고 하면 일이 더 꼬여 엉뚱한 결과를 가져온다. 차라리 마음을 내려놓고 숨을 쉬며 여유를 갖고 천천히 다시 시작해도 그리 나쁘지 않다. 세상살이는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서두른다고 안될 일이 되지 않고 천천히 한다고 될 일이 안되지는 않을 것이다. 매일 쓰는 글도 잘 써지는 날이 있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날이 있다. 아침에 일어 나서 주제를 정해놓고 쓸 수도 있고, 생각지 않은 곳에서 우연히 글감이 생겨 쉽게 쓰는 경우도 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 반면 할 말이 없다가 일단 쓰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술술 풀릴 때도 있다.


생각이 안 나면 다른 일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다 보면 생각이 나기도 하고 좋은 글을 쓰려고 단단히 마음먹고 시작은 했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는 날도 있다. 소설을 쓰려다 에세이가 되고 시를 쓰려다 일기를 쓰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은 순간순간 변하기 때문에 쓰려고 했던 생각을 바꾸다 보면 글의 방향이 거꾸로 간다. 그림 한 장이나 글 한편을 완성하기가 어렵지만 하다 보면 나름대로 완성하는 재미도 있다. 세상일이 쉬운 일이 없다. 인간관계와 사회생활도 쉽지 않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견뎌내야 한다. 현대 생활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사회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싫어도 힘들어도 버티다 보면 적응을 하고 살게 된다.


어릴 때 두꺼운 책을 읽기가 힘들어 뒤부터 읽은 적이 있다. 읽다 보니 앞에 스토리가 궁금해서 다시 앞부터 읽으며 책 읽는 재미를 붙였는데 무슨 일이든 안되면 길을 찾으면 된다. 모든 것이 쉽고 잘되면 세상은 너무 재미없을 수도 있다. 안되고 힘들어도 연구를 하고, 안되면 잠시 쉬어가면서 즐거움을 찾으면 된다. 사람이 한 번 두 번 해서 안된다고 그만둔다면 오늘날의 모습은 지금과 다를 것이다. 생후 3개월짜리 아기는 뒤집기 위해 수십 번씩 도전하고 한 살짜리 아이는 걸음마를 배우기 위해 수없이 도전한다. 넘어지고 다치고 울고 하면서도 결코 체념하지 않고 끝내 걸음마를 배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체념을 잘하게 되는 것 같다. 젊을 때는 모르는 것을 수없이 연습하고 끝내 터득했는데 지금은 '안되면 말지' 하고 안 하게 된다. 의지가 약해지고, 체념도 잘하고 기억력도 약해지는 이유는 도전 정신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림이 며칠 동안 안 그려지니까 이제 그만둘까 생각하다가 다시 붓을 들었다.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었는데 다시 그리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 손쉽게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있으니 다시 희망이 생긴다. 그림이나 글 그리고 일도 파도 같다는 생각으로 파도 그림을 그렸다.


밀려오고 밀려가고 하얀 거품을 만드는 검푸른 바다처럼 인생에도 파도가 있다. 커다란 파도가 있고 잔잔한 파도가 있다. 삶이라는 파도타기를 하며 살아야 한다. 파도가 밀려오면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순종하지 않으면 파도에 휩쓸리게 된다. 안되면 될 때를 기다리다 보면 자연은 차분히 다가와 이끌어준다. 파도와 하나가 될 때 삶은 이어진다.


(그림: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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