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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r 23. 2020

숲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숲은 늘 우리를 반긴다..(사진:이종숙)

아무도 없는 거리를 피해 숲으로 간다. 숲은 차분히 나를 기다린 듯 거기에  있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변함없이 나를 맞는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늘은 파랗고 눈이 녹지 않는 숲 속은 춥지만 그래도 걸을 만하다. 계곡은 꽁꽁 얼어붙고 눈까지 쌓여 있다. 아무도 없는 숲길을 남편과 함께 걷는다. 다리 위를 걸어가며 양쪽으로 보이는 계곡을 바라본다. 많은 사람들이 얼어붙은 계곡으로 걸어간 발자국이 보인다. 며칠 전 날씨가 조금 풀렸을 때 가장자리가 녹아내리는 것이 보여서 지금 걷기에는 어쩌면 위험할 것 같다. 한참을 걸어가니 두 갈래 길이 있다. 몇 번째 온 숲이라서 양쪽 다 가 본길이지만 더 먼길로 가기로 했다. 어차피 운동하러 나왔으니 더 많이 걷는 것이 좋다. 양지쪽 절벽은 이미 눈이 녹아 누런 뱃살을 보이고 마른 흙을 계곡 아래로 떨어 뜨리기 시작했다

나무사이로 눈부신 태양이 내려와 앉는다.(사진:이종숙)

백양나무 숲을 지나 걸어간다. 쭉쭉 뻗은 나무들이 빼곡히 자란다. 봄이 가까워서 인지 색이 달라진 듯 뽀얗다. 이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봄이 보인다. 지금 숲 밖의 세상은 전염병으로 뒤집어지고 있지만 이곳은 아무런 일도 없는 듯 조금씩 다가오는 봄 맞을 준비로 바쁘다. 눈 쌓인 길을 걷노라면 다람쥐들과 친구가 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재롱을 부리고 새들과 노래한다. 시내 한복판에 이런 숲이 여러 개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추울 때는 숲이라서 따스하고 더울 때는 또 숲이라서 시원하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태양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나무를 보며 나무와 대화하며 걷다 보면 나는 또 하나의 나무가 되고 그들의 친구가 된다.

자주 만나던 사람들을 볼 수가 없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보던 사람들도 만나지 못한다. 성당도 식당도 문을 닫고 서로를 위한 방침으로 집집마다 문을 걸어 잠갔다. 길거리는 조용하고 상점들도 다 닫았다. 전염 위기를 중단시키고 넘기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협조하고 배려한다. 갑작스레 떨어진 물건을 사려고 식품점에 잠깐 갔다. 2 미터 간격으로 바닥에 빨간색의 테이프를 붙여 놓았다. 사회적 거리이다. 하나가 돈을 내고 나가면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이 돈을 낸다. 돈을 내는 사람이나 돈을 받는 사람이나 모두 무표정이다. 웃으며 주고받던 모습이 아니고 '지금 이런 때에 왜 왔어' 하는 표정이다. 서로를 병균 취급하며 피함이 어색하지만 다들 그렇게 한다. 이렇게 하면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어느 날 종식이 되었을 때 다시 손을 잡고 웃으며 포옹도 하고 가까이 에서 소곤소곤 속삭이며 이야기도 할 수 있으리라.

삶을 끝낸 나무는 버섯을 키운다.(사진:이종숙)

바람이 불어오면 나무들의 시끄러운 수다가 시작된다. 속으로 간직하던  저마다의 사연이 있나 보다. 그들도 우리네처럼 할 말이 많은가 보다. 한참을 떠들더니 다시 조용해진다. 길가에 서 있던 비쩍 말랐던 나무가 제법 컸다. 그 옆에는 덩치 큰 나무가 쓰러져서 버섯을 키우고 있다. 죽어서도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나무의 염원인가 보다. 속살처럼 뽀얀 버섯이 예쁜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숲 속에는 버섯이 흔치 않은데 곱게 앉아서 자라는 모습이 좋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햇살이 가느다랗게 쓰러진 나무를 비춘다. 숲 속 어디라도 공평하게 비춰주는 해가 고맙다. 다리로 향해 발길을 돌려보니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열려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내려가 보았다.


꽁꽁 얼은 계곡위를 걸어본다.(사진:이종숙)


아무도 없는 계곡 위에는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다. 두꺼운 얼음 위를 걸어가니 '둥둥' 하는 소리가 난다. 깨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지만 장난꾸러기 사춘기 아이가 되어 걸어간다. 남편도 멀찍이 걸어간다. 몸무게를 분산시키기 위함이다. 가다 보니 큰 나무가 계곡을 가로질러 쓰러져 있다. 추웠던 지난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쓸어졌나 보다. 사람이나 나무나 너무 힘들면 저렇게 쓰러지거나 생을 끝내나 보다. 가까이에 다리가 보인다. 걸을 때마다 얼음 울리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 짜릿한 흥분을 느끼며 걸어간다. 다리 위에서 계곡을 걸어간 발자국을 볼 때마다 한번 걷고 싶었는데 이렇게 용기를 내어 걸으니 기분이 좋다. 해가 길어지면 계곡이 녹아 더 이상 걸을 수 없는데 오늘 이렇게 걸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리 옆길로 난 길을 걸어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나무 사이로 파란 하늘이 내려다본다. 나무들 사이로 새들이 날아다니고 다람쥐들도 열심히 오르내리는 평화로운 날이다. 귀찮은 생각에 집에 있으면 보지 못할 귀한 모습이다. 운동도 하고 구경도 하니 일석이조 아닌가? 좋다 좋다 정말 좋다를 연발하며 우리는 이렇게 행복을 찾는다. 삭막하고 으스스한 뉴스로 지친 마음은 집에서 멀지 않은 숲 속에서 힐링이 된다. 모르는 내일을 걱정하고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바꿀 수 없는 현실에서 나름대로 기쁨을 느끼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한다. 길가에 쓰러진 나무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다. 다람쥐가 서서 배를 보여주며 포즈를 취한다. 사진 모델료를 청구할 만큼 멋진 포즈다.


다람쥐가 일어서서 인사를 한다.(사진:이종숙)


인간 사회처럼 숲 안에도 공기의 차이가 있다. 차가운 공기가 있는 곳이 있고 따스한 공기가 흐르는 곳이 있다. 따스하고  다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고 냉정한 사람도 있듯이 말이다.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주차장이 보인다. 주차장 가까이에 있는 계곡물은 군데군데 녹아서 물이 보인다. 아마 이곳은 온도가 따뜻한가 보다. 벌써 젊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오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 시간이 많이 지났나 보다. 오늘 내게 온 시간들은 이렇게 나를 만나고 간다. 내일은 내일대로 또 다른 시간을 만날 것이다. 오고 가며 만나는 사람들도 사회적 거리를 두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안녕을 기원한 따뜻한 날이다.

딱다구리가 만들어 놓은 구멍이 하늘을 쳐다본다.(사진:이종숙)

변한 없이 나를 반겨주고 나를 쉬게 해 주고 언제나 나를 품어주는 숲이다.

숲아, 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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