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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r 24. 2020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내가 만든 남편 생일 케익(사진:이종숙)


무 바빠서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사는 것하고 너무 시간이 남아돌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하고 과연 어느 것이 더 좋을까? 젊은 사람들은 한가한 시간을 원하면서도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무언 가를 열심히 한다. 나이가 들면서 몸은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고 생각만 한다. 언제 해야지 했던 것들을 막상 그날이 되면 잊어버리거나 하기 싫어진다. 하루를 살아가는 24시간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양의 시간이건만 나이가 들을수록 생산량이 현격히 줄어든다. 원하는 것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젊은 날의 마음은 없어지고 하루하루를 천천히 맞고 보낸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그 순간까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데 많이 살아왔고 얼마 남지 않아서 체념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인가?

오래전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나도 영어공부를 하러 학교에 다녔다. 숙제도 많고 집안일도 해야 고 아이들하고도 놀아 주어야 했다. 학교 다니며 틈틈이 애들이 잘 먹는 서양 음식도 만들어주고 과자나 케이크를 만들어 주었다. 요리책을 보며 모르는 단어를 찾아가며 열심히 했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살 생각보다 이렇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물론 이민 초기라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그랬겠지만 만드는 것이 좋았고 한번 하려고 생각하면 꼭 만드는 성격이다.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눈으로 보면 흉내를 낼 수 있기에 가능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손으로 만드는 걸 늘 좋아했다.

아이들의 생일파티는 뜰이 넓은 우리 집에서 열댓 명 이상의 아이들 친구들을 초대하여 음식을 해주었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며 놀면 함께 축구도 하고 아이들이 추운 겨울에 는 따뜻한 바람막이 바지도 직접 만들어 주었다. 무엇을 해줘도 아이들은 아무 소리 안 하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았다. 마음이 복잡하고 하는 일이 잘 안 되는 때는 무언가를 만들며 마음을 잡고 살아왔다. 부모 형제가 그리울 때도, 몸이 피곤해도 무언가를 만들면 마음이 편하다. 아이들은 엄마는 만능 박사라 며 행복해하고 무엇이 먹고 싶다 하면 당장에 만들어 주는 엄마는 요술지팡이였다. 핼러윈 데이에는 아이들이 원하는 특별한 옷을 만들어주고 함께 캔디를 얻으러 가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물건이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모든 것이 비싸 사주기는 힘들었지만 아이들의 기를 살려주려는 엄마 마음으로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 같다.

나이 따라 취미도 변해갔다. 언제인가부터는 케이크 만드는 것이 재미있어서 학교에서 몇 시간의 기초를 배운덕에 여러 가지 케이크를 만들어 팔기도 했었다. 그때 당시 흔하지 않던 유명한 캐릭터 '케이크 데크 레이션' 은 엄청난 인기로 사람들에게 어필하였다. 생일 케이크와 환갑이나 칠순 같은 특별한 기념일을 위한 케이크와 결혼 케이크도 만들었다. 지금도 그때 만들었던 케이크 사진들이 여러 집 앨범에 간직되어 있다. 유행이 지나고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되어 그만두었다. 그런 뒤에 몇 년 동안은  뜨개질에 재미를 붙여서 모자나 장갑 그리고 덧버선과 조끼를 만들어서 식구들에게 주었고 주위에 아기를 낳은 엄마들한테 조그만 담요를 만들어서 주곤 했다. 햇볕이 아까워서 무를 썰어 말리고 나물을 삶아서 말리던 옛날 어른들처럼 그냥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손가락을 움직이면 하나 둘 만들어지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천이 있으면 치마나 바지를 만들고 실이 있으면 필요한 것들을 만들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가방에는 그림을 그려 넣어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몇 년 전에는 집에 있는 천으로 여러 가지 모양의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패턴이 없는 나의 가방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 자를 사용하지 않기에 사이즈도 열이면 열 다 다르다. 대충 눈대중으로 자르고 재봉틀로 박으면 가방이 완성된다. 그렇게 만든 가방 들은 아이들도 주고 가까운 친구들도 준다. 유명 메이커처럼 완벽하지는 않아도 다들 좋아한다. 나는 만드는 재미가 있고 받는 사람들은 들고 다니는 재미가 있으니 일거양득이라 좋다.

그처럼 시간이 있던 없던, 바쁘거나 심심하거나 나는 무언가를 만든다. 종이를 보아도, 나무 조각을 보아도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너무 이쁘고 좋은 것들이 넘친다. 내가 만드는 것보다 훨씬 멋도 있고 가격도 싸다. 아무리 내가 좋아서 만들어도 공장에서 나오는 것처럼 완벽하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진다. 그저 주고받는 정이다. 필요한 것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니 만들어서 줄 수도 없다. 그토록 무엇을 손으로 만들기 좋아하던 나이건만 요즘은 만들기는 만들어도 필요성이 없으 니 잘 안 만들게 된다. 천을 보아도 실을 보아도 별 흥미가 없다. 줄 사람도 받을 사람도 없으니 재미가 없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하는 날이 많아졌다.

소일거리로 운동을 가서 시간을 보내던 하루가 그것마저 못하게 되니 종영된 연속극을 보거나 흘러간 노래를 듣게 된다. 텔레비전은 온통 전염병에 관한 뉴스로 마음을 힘들게 하니 보고 싶지 않다. 하루 한차례씩 산책을 가는 일 외에는 특별히 하는 것이 없는 상황이다. 아직도 쌓여있는 이 녹으려면 한 달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날씨가 좋아 얼른 봄이라도 오면 여러 가지 소일거리가 많을 텐데 지금은 그저 창밖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해는 벌써 길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조금씩 다가오는 봄맞이라도 가야 할 것 같다. 더욱 악화되어 가는 전염병으로 우울해지는 마음을 떨치고 싶어 지난날들을 생각해 보았다. 가버린 젊은 날이고  다시 오지 않을 날들은 이렇게 나를 떠났지만 아직은 만들 것이 있으면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요즘 마스크 대란을 보며 저것이 정녕 필요한 물건이면 내일은 한번 내친김에 마스크나 만들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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