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거야

by Chong Sook Lee



엄동설한에 벌거벗은 백양나무 한그루가 오들오들 떨고 서 있다. 살을 에이는듯한 찬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나무가 너무 추워 보여서 바람이 말을 건넨다.


나무야. 너무 춥지?

이렇게 나를 춥게 하는 너는 어디서 왔니?

나는 북쪽에서 찬바람을 가지고 왔어.

이 추운 계절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허허벌판에 서 있는 나는 어쩌라고 나에게 왔니?

미안해. 어쩔 수 없어. 내가 오지 않고 한 곳에 머물면 따스한 바람이 올 수가 없어.

그래도 그렇지. 추운 겨울에 북풍까지 불어대면 나는 갈 곳이 없어.

어차피 온 나를 너무 구박하지 마. 나무야.

이삼일 내로 나는 떠날 거야.

그럼 너는 어디로 가는데?

글쎄 모르지. 구름이 가라는 데로 가야지.

나 혼자 바람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서 나도 몰라.

그렇구나.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 봄에는 산들바람을 불어주어 새싹을 피우게 하고, 뜨거운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불어주어 땀을 식혀주는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그거야 구름과 햇볕이 나를 만들어 주어서 내가 올 수 있는 거야. 사람들은 내가 심술궂은 존재라고 말하지만 그건 날 잘 몰라서 그러는 거야. 저기압과 고기압이 만들어내는 기온의 심부름만 하는 거야.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나는 선택권이 없어.

하기야 너나 나나 하늘의 마음을 알 수 없지. 그래도 오늘 네가 가져온 바람은 춥지만 얌전해서 다행이야. 어떤 날은 가지가 흔들리고 뿌리가 빠질까 봐 걱정되는 때도 있어. 지난번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숲에 사는 친구 중에 넘어지고 가지가 부러진 친구도 있고 뿌리째 뽑힌 친구도 많단다.


어머, 그랬구나. 오늘 내가 이곳에 오다 보니까 넘어진 나무들이 많이 보였어. 넘어져서 하얀 눈을 덮고 누워있더라.

그러게 말이야. 얼마나 춥겠니? 조금 더 살아 있어도 되는 나무들인데 너희들 바람 때문에 나무들이 죽었잖아.

그렇긴 한데 어쩔 수 없었어. 마음은 아프지만 바람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니까 수명이 다 되어 쓰러졌다고 생각해야지 뭐.

재작년 여름, 비바람이 심하게 불어오고 굵은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 나의 팔이 꺾여서 지붕으로 고꾸라졌어. 어찌나 아픈지 꼼짝을 못 하고 누워 있는데 주인이 나와서 나를 본 거야. 그러더니 꺾어진 내 팔을 톱으로 쓱쓱 잘라 땅에다 던져 버리는 거야. 졸지에 내 팔 하나를 잃은 나는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어. 그래서 네가 이렇게 비쩍 말라가는구나.

응. 나는 나이가 많아. 오래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해마다 가지들이 죽어 가지만 주인은 나를 아직까지 애지중지하고 많이 사랑해.


다행이다. 그런 주인을 만나서 너는 좋겠다.

신개발지역에 있는 나무들은 하루아침에 싹둑싹둑 잘려나가는 게 예사야. 멀쩡한 나무를 사정없이 베어버려서 거리가 휑한 곳이 많아.

우리 집주인이 언제까지 나를 살려 둘지 모르지만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새싹을 만들어서 여름에는 집안에 들어가는 햇살을 막아주고 가을에는 멋진 단풍도 선물한단다. 겨울에는 눈이 쌓여 운치가 있고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주인이 내 몸에 예쁜 전구들을 돌려서 오고 가는 사람들이 예쁘다고 서서 구경을 하고 가지.

너는 행운아야. 내가 찬바람을 가져와서 너를 춥게 하지만 곧 봄이 오면 따스한 바람이 되어줄게.

알아. 네가 날 잊지 않고 찾아오기에 나는 너무 행복해. 네가 오지 않는 날은 은근히 너를 기다려. 솔직히 말하면 추운 바람이 다 나쁜 것은 아니야. 벌레도 죽이고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 추운 겨울이 없으면 봄을 기다리지 않고 봄이 와도 반갑지 않을 거야.


맞아. 겨울에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만 봄여름에는 나를 좋아해. 물론 폭풍이 불어 세상을 뒤집어서 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다줄 때도 있지만 더울 때 불어주면 시원해서 좋고 봄바람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

그래. 더울 때 네가 오면 나도 좋아. 많은 이파리들이 내 몸을 감싸고 있을 때는 너무 덥고 땀도 많이 날 때 네가 와서 나뭇잎을 흔들어 주면 엄청 시원해.

너는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지만 네 옆에 서 있는 소나무와 전나무가 너를 지켜 주어서 좋겠다.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소나무와 전나무가 없었으면 나는 너무 외롭고 쓸쓸했을 거야.

소나무와 전나무에 많은 새들이 날아와서 놀아.

그래. 지난번에 내가 왔을 때 보니까 정말 예쁘고 멋있는 새들이 많더라.

아침저녁으로 참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지.


너는 좋겠다. 너는 왔다 갔다 할 필요 없이 가만히 서 있으면 많은 친구들이 너를 찾아오며 너를 좋아하잖아. 나는 매일매일 옮겨 다녀야 하거든.

어떤 때는 나도 네가 부러워. 세상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할 수 있잖아.

나는 너처럼 뿌리가 없어. 나에겐 보이지 않는 날개가 있어서 날아다니지.

재미있겠다. 나도 언제 너를 따라가서 날아다니며 세상을 보고 싶어.

세상은 다 비슷비슷해서 특별히 구경할 것은 없어. 사람 사는 것을 구경하면 좋기도 하지만 슬픈 일도 많아. 나 때문에 수많은 집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어지는 경우에는 사람들이 울고 슬퍼하지.

네가 하는 게 아니고 지구의 오염 때문에 토네이도와 허리케인이 생기는 거야. 네 잘못이 아니야. 사람들이 쓰레기를 만들지 말고 살아야 하는데 쉽지 않은가 봐.

그것뿐이 아니야. 사람들이 살 집을 짓고 커다란 빌딩과 터널을 지으려고 산을 깎고 자연을 훼손하여 나무들이 죽어가. 땅이 몸살을 알고 독을 뿜으며 인간에게 해가 되어 돌아온다고 해.

정말 큰일이야. 자연이 망가지면 사람이 살 곳이 없어지는데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겠어.

생각하면 골치 아파. 내가 찬바람을 데리고 와서 너는 춥겠지만 며칠만 나와 함께 하자.

응. 그러자. 더울 때는 찬바람이 그리워. 겨울에는 더운 여름을 생각하면 추위를 이겨나갈 수 있어. 겨울에 봄을 기다리며 살다 보면 봄이 와.


나무야! 이번에 내가 다녀가면 어쩌면 한참 동안 오지 않을 수도 있어. 다른 곳에 가야 하거든. 다음에 올 때는 따뜻한 바람을 가져오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당연히 나야 좋지만 마음대로 안되면

너무 애쓰지 마라.

전나무 옆에 아주 작은 나무가 서 있어. 작년에 보지 못한 나무야.

응, 지난봄에 어디선가 씨가 날아와서 뿌리를 내린 나무야. 나뭇잎을 달고 있더니 가을이 되니까 단풍도 지더라. 작아도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너무 예뻐.

저 가느다란 나무가 얼마나 추울까?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전나무 아래에 있어서 추위를 견딜 수 있나 봐.

새 식구가 생겨서 좋겠다. 돌아오는 봄에 꼭 한번 들려서 만나보고 싶다.

너와 이야기 하다 보니까 추위도 잊었어.

혼자 서서 있을 때는 엄청 추웠는데 지금은 견딜만해. 오다가다 자주 들려서 우리 재미있는 대화 나누자. 처음에 네가 휘몰아칠 때는 네가 싫고 원망스렀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너는 마음이 따뜻한 바람이구나.

고마워. 이제 다음 동네로 가야 할 시간이야.

다음에 만나서 또 이야기하자.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불어. 이유 없는 바람은 없단다.

그래, 잘 가라. 바람아. 또 보자.


나무와 이야기를 끝낸 바람은 휙 하는 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무는 회색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이 떠나간 허공에 눈발이 휘날린다.


(사진: 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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