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온 하루와 논다

by Chong Sook Lee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햇살이 눈부시다. 새해의 태양이 더 밝아 보인다. 지난 한 해도 무사히 지나가고 새해가 시작되어 세월이 간다. 작년이나 올해나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보이지 않게 머리는 희어지고 세포가 늙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아무런 일없이 살아가고 싶을 뿐 더 큰 욕심은 없다. 창밖을 무심코 내다본다. 앞뜰에 있는 등 굽은 소나무 밑에 쌓인 눈 위에 간밤에 왔다간 토끼 발자국이 선명하다. 동네에 사는 토끼들이 모여서 댄스파티를 했나 보다. 소나무 아래에 넓은 터가 있어 여름에는 토끼가 낮잠을 자고 겨울에는 눈으로 성을 쌓아 놓고 잠을 자고 가는 곳이다. 얼마 전 새벽에 잠이 일찍 깨서 창문을 열고 보니 토끼가 자고 있던 것이 생각이 난다. 나무들이 많고 터가 넓어서 토끼가 좋아한다.


새로 개발된 지역은 모든 것들이 새것이라서 깨끗하지만 운치가 적다. 이곳은 1974년에 생긴 동네로 사람의 나이로 치자면 48살인 셈이다. 15년 된 집을 샀으니까 우리가 산 세월만 해도 33년이 지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 보이지만 낡아가는 것은 분명하다. 페인트를 칠하고 화장실과 부엌을 고치고 바닥도 고치며 살아서 여전히 새집 같다는 말을 듣지만 나이는 못 속인다. 새로 개발하는 지역에 가보면 집은 멋지고 좋은데 나무도 없고 주위환경이 살벌한 느낌을 받아 이사를 하지 않고 이곳에 지금껏 산다.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집에서 살다 보면 싫증이 나고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유혹은커녕 살수록 정이 든다.


하얀 눈이 쌓여있는 뜰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뛰어놀던 생각이 난다. 큰아들이 9살 때 이사 왔는데 어느새 43살이 되어간다. 세상사 모든 것이 인연이듯이 집과도 인연이 있다. 복덕방에 나온 이 집을 보러 왔을 때에 내가 싫어하는 단점 3개를 몽땅 가진 집이었다. 서향집과 코너집 그리고 버스정류장이 길건너에 있어서 앞으로 들어가서 뒤로 나와 안 사겠다고 한 집이다. 다른 집을 보러 다니다가 우연히 이 집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마음에 들어서 바로 계약을 하고 지금껏 살고 있다.


세 아이들이 길 하나만 건너면 다닐 수 있는 초등학교 가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병원과 교회도 가까이 있고 공원과 쇼핑센터도 있어 아주 편리해서 살기 좋다. 주위에 초등학교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고 정부에서 운영하는 체육관과 운동장이 있다. 멀리 가지 않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갖추어 있어서 외곽에 있는 새 동네로 가고 싶지는 않다. 동네가 오래되어 어른들이 주로 살아 동네가 아주 조용하다. 어느 날은 사람들의 그림자도 못 보고 하루가 갈 정도로 조용하다 보니 시끄러운 곳에 가면 집으로 가고 싶어 진다.


철철이 꽃이 피고 온갖 새들이 놀러 온다. 까치와 까마귀가 같이 놀고 블루제이와 로빈이 참새와 함께 노는 것을 보고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다. 봄에는 사과나무와 앵두나무 꽃이 아름답게 피고, 여름에는 장미꽃과 라일락이 피는 뜰에 앉아서 하늘을 보고 흘러가는 구름과 이야기한다. 여름에는 텃밭에서 야채들이 자라고 손자들이 오면 넓은 뜰에서 그네를 타며 편안하게 논다. 텐트를 쳐놓고 있으면 멀리 캠핑을 온 것 같다.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가면 울창한 숲이 있어 틈틈이 찾아가 산책을 한다. 사시사철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려주는 것을 생각하면 설레기도 한다.


봄에는 산나물이 자라고 여름에는 들꽃이 만발하는 곳을 따라 걸어가면 새들이 노래를 부르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보고 있으면 지상천국이 따로 없다. 다람쥐들이 나무를 오르내리고 수달이 헤엄치며 장난하는 곳이다. 가고 또 가도 질리지 않는 곳이다. 새로운 곳에 여행을 가는 것도 좋지만 매일이 새로운 이곳이 있어 행복하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고 추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1월, 2월에 긴 겨울을 잠시 피해서 따뜻한 멕시코나 하와이에 간다. 많은 사람들이 아예 6개월은 이곳에 살고 6개월은 더운 곳으로 가서 살다 오기도 하는데 이곳 겨울도 그리 나쁘지 않다.


설국열차를 탄 것처럼 온 천지가 하얀 이곳은 나름대로 멋있고, 추운 겨울을 보내고 맞는 봄은 더없이 아름답다. 습하지 않고 덥지 않은 이곳의 여름은 그야말로 완벽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온다. 비가 온 뒤의 상쾌함과 그림 같은 파란 하늘이 펼쳐진 여름이 좋다. 눈 쌓인 뜰에 박힌 토끼 발자국을 보며 봄을 기다리고 여름을 그리다 보면 겨울은 간다. 조용한 아침에 창밖을 보며 생각은 천리만리 여행을 떠나고 매일매일 나를 만나러 오는 하루를 살며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만난다. 방 안에서 보는 세상은 흥미롭다.


까치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아서 하늘을 보다 급하게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사람들이 바쁘게 살듯이 그들도 생각이 있어 오고 간다. 그들은 먹이를 찾기 위해 높은 곳에 앉아서 내려다본다. 길거리에 떨어진 먹이를 차지하고 주위를 살핀다. 먹이의 주인이 된다. 먹이를 차지하고 먹는 순서를 정한다. 제일 먼저 먹이를 찾은 새가 배부르게 먹고, 다음으로 힘센 새가 먹이를 차지하여 먹는다. 차례가 오기 전에 중간에 먹이를 탐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경쟁과 인내가 엇갈린다. 배가 부르면 먹이를 놔두고 떠나면 또 다른 새가 차지하고 순서대로 먹는 것을 보고 있으니 인간사회와 별로 다르지 않다. 창밖은 다시 침묵하고 지나가는 바람이 심심한 나무를 흔드는데 잊지 않고 나를 찾아온 하루와 신나게 놀아야겠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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