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세상을 덮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며칠째 비행기가 이착륙을 할 수 없어 비행기 캔슬이 연이어진다. 오도 가도 못한 채 발이 묶인 사람들이 공항에서 밤을 지새운다는 소식이다. 자연이 하는 일을 인간은 받아들여야 한다. 상고대가 예쁘게 피어있는 나무 들은 보란 듯이 서있다. 어쩌면 저리도 이쁠까? 크고 작고, 굵고 가늘고, 길고 짧은 나뭇가지들이 모두 하얀 옷을 입고 있다. 자연은 참으로 공평하다. 편애나 편견이 없이 골고루 아낌없이 사랑하고 미련 없이 사랑을 준다. 어느 것 하나도 더 받고 덜 받은 것이 없다. 지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얼음꽃을 피운다. 햇살이 나오면 살며시 눈물로 인사하고 떠나야 하는 줄 알지만 햇살을 만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최고의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다.
갈 때 가더라도 있을 때까지 한점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에 고개 숙여진다. 인간은 불평불만을 하고 걱정 근심으로 세월을 보내는데 자연은 순간을 산다. 무서운 폭설이나 폭우가 퍼붓다가도 해님으로 세상을 녹이고 말리며 화사한 무지개를 선사한다. 빛과 물이 만나 일어나는 자연의 현상을 보고 사람들은 희망하고 기뻐한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는 날 비가 오면 가는 길이 더 슬퍼 보이고 무지개가 보이면 천국에 잘 도착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곳에 폭설이 내려 삶을 마비시키더니 폭우가 와서 수십만 명이 대피를 해야 한다는 뉴스를 본다. 음지가 양지된다는 말이 있다.
세상은 돌고 돈다. 관광객으로 넘쳐나던 곳이 폐허가 된 모습이 처절하다. 집과 살림이 엉켜서 물을 따라 내려오고 쓰레기 산을 만든다. 비참하다는 말로는 다하지 못한다. 인간이 만들고, 사고, 쌓아 놓은 모든 물건들이 쓰레기가 된다. 귀하고 천하고, 비싸고 싼 물건들이 헌신짝이 되어 뒹군다. 물건이 흔하다 못해 넘치는 현실이다. 각 개인의 기호에 맞는 물건을 산다. 물건이 흔하지 않던 시대에는 자손들이 물려받아 보관하여 알뜰하게 사용했는데 지금은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쓰던 책꽂이와 책상 이 그대로 놓여있다. 손자들이 쓰면 좋을 텐데 구식이라고 새것을 사준다. 어차피 방에 놓아두고 몇 년 지나면 손주들도 필요 없는 물건인데 멀쩡한 물건이 쓰레기가 된다.
아이들이 분가하면 주려고 했던 나의 계산은 오산이었다. 사다 놓고 쌓아 놓으면 끝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치우는 것이 문제다. 물건이 자리를 차지하면 할 일도 많아진다. 먼지도 털어주고 정리도 해야 하는데 없애는 것이 최상인데 임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당근마켓을 통해 팔기도 하고 주기도 하지만 쉽지 않다. 이제 돌아서 생각하니 사지 않는 게 답이다. 세상에는 없어도 되는 물건 천지다. 쓰지도 않는 물건들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틈틈이 버린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많은 물건과 함께 산다. 내가 사는 동안 없애야 할 물건들이다. 값진 골동품도 없고 명품도 없는데 애지중지하며 산다.
없어도 불편 없는 물건들이 큰 재산이나 되는 듯이 끼고 산다. 버려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물건들인데 버리지 못하고 산다. 한번 산 물건은 이미 생을 다한 물건인데 영원히 쓸듯이 모셔둔다. 아이들이 두고 나간 물건들이 많은데 버리냐고 물어보면 그냥 놔두라고 한다. 쓰지 않아도 버리기는 싫은 모양이다. 남들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은 가지고 있을 필요 없다고 자신 있게 말을 하면서도 나 자신은 실천을 못한다. 언젠가 내가 없어지면 필요 없는 물건들이니 없어졌다 생각하고 버려야 한다.
손주들 장난감이 들어 있는 상자가 눈에 띈다. 기존에 있던 장난감도 많은데 새로 사준 장난감까지 잔뜩 쌓여있다. 5분, 10분 정도 놀고 나면 싫증 내는 장난감을 많은 돈을 들여서 사준다. 머리 쓰는 장난감이라고 레고를 사주면 수백 개의 조각들이 뒹굴어 다닌다. 사고팔며 세상은 돌아가는데 결국 쓰레기만 쌓인다. 물건을 만들고, 사고, 버리고, 또 만들면서 쓰레기 세상이 되어가지만 아무것도 만들지 않으면 세상은 정지되고 만다. 이러다가는 세상에 더 이상 쓰레기를 보관할 수 없는 날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멈추지 않는다.
정리할 것도 많고 청소할 곳도 많은데 오늘은 아무것도 시작하고 싶지 않다. 그저 창밖을 내다보며 앉아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안개가 세상을 희미하게 보이게 하고 그로 인해 상고대가 더 돋보이게 피어난다. 구름 속에 숨어있던 햇살이 조금씩 허물을 벗는다. 하얀 상고대가 햇볕을 보더니 수줍어하며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나무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새들도 하나 둘 날아다니고 세상이 기지개를 켠다. 거리에는 녹은 눈이 차에 치이고 사람들에게 밟혀서 지저분하다. 눈은 눈인데 새로 내린 눈이 아니라서 퇴색하여 보기 흉하다.
아직 정월 중순이니까 앞으로 많은 눈이 내려 더러운 모습을 가려주고 덮어 줄 것 줄 것이다. 안개가 걷히고 세상은 다시 밝아져 눈이 부시다. 공항에서 발이 묶여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들은 가야 할 길을 가서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을 하며, 어제를 그리워하고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살아갈 것이다. 안갯속을 헤매며 막연했던 날들이 추억 속에 묻힌다. 안개 낀 날 찾아오는 햇살은 더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