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무엇을 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하며 하루를 지내는지 한참을 생각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평범한 날들이 무의미하게 지난다. 모두 같은 날인데 기억할 필요도 없고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또 잊어버릴 시간들이니 기억 속에 가둬둘 이유가 없어서일까 같은 날들은 반항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또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록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소설도 아니고 일기도 아니지만 지나고 나서 읽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작년 오늘은 이랬구나, 10년 전 오늘은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했구나 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그것 또한 시시하다. 돌아갈 수 없는 지나간 날들을 알고 기억한다고 달라질 것 하나 없는 현실이다.
오늘 내가 어떻게 살고 누구를 만나 무엇을 먹으며 이야기한 것은 오늘의 이야기 다. 오늘은 지나면 과거가 되어 어제가 된다. 오래전에 지나간 시간이나 바로 몇 시간 전에 가버린 시간이나 이미 가버린 사실은 같다. 따지고 보면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만나는 순간들이다.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워하며 사는 게 인생이지만 희미한 기억 속에 애를 태우며 산다. 지나간 것들은 허상일 뿐 아무것도 아닌데 더 미화시킨다. 더 재미있고 더 아름답고 더 사랑했던 것처럼 소설로 둔갑한다. 초라했지만 화려하고 시시했지만 특별한 시간을 만들며 그리워한다. 그리 아름답지 않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은 하루가 그리운 과거가 되면 아름다워진다.
과거는 아름다워야 하고 특별해야 소중한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시시하게 지나가는 오늘이라는 하루도 추억의 한 장이 되면 멋지게 꾸며진다. 가만히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는 것조차 낭만의 시간이 된다. 바로 조금 전까지 참새들이 난리를 치더니 지금은 조용하다. 어디로 갔는지 아니면 잠을 자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들 나름대로 하루를 만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세상에 나오고 세상을 구경하며 하루라는 시간을 맞고 보내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운명의 줄을 잡고 흔들거리며 살다 가는 것이다.
오늘은 또 다른 어제이고 다른 모습의 내일이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은 어제의 내가 만든 것이고 내일의 나를 만드는 것이다. 시시한 오늘이 세월 속에 묻히며 어제가 되어 희미한 추억이 되어서야 아름다웠다는 것을 아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른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며 산다. 지나가서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은 소중하고, 오지 않아 알 수 없는 날들은 기대하며 포장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은 다 똑같은 날이 될 수 없다. 세상은 발전하고 아이들은 자라서 늙고, 생각은 순간순간 변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세월에 웃고 울며 사는 것이다. 후회나 미련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인생사다.
날마다 다른 하루를 만나고 보낸다. 오늘의 모습은 순간을 따라 변하고 내일이 오늘이 되어 우리와 함께 걸어간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돌고 돌아서 망각하며 오늘을 맞는다. 잊지 못할 것 같아도 잊고 소멸한다. 오늘의 기쁨과 슬픔이 하얀 백지의 내일로 태어나면 넘겨진 페이지에서 잠이 든다. 울긋불긋 화려하게 산을 불태우는 단풍잎은 다 떨어진다. 아름다움에 취하여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단풍은 찌그러지고 부서진 모습으로 땅에 떨어지며 생을 마친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는 유년기가 끝나고 청년 장년기를 지나 노년기를 맞으며 다시 아이로 돌아간다.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을 때 떨어지는 단풍잎과 다를 바 없다. 생각하면 허무하지만 자연의 섭리일 뿐 아무것도 아닌데 인간이기에 서운해한다. 요양원에 가보면 늙은 아이들이 많다. 평생을 살아온 모습은 하나도 없고 하나부터 열까지 도움이 필요하다. 유치원에 가서 배우던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밥 먹고 자고 아기처럼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자연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슬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이 태어나 한 살이 되면 어린이집으로 가서 하루종일 부모와 떨어져 생활한다. 부모자식이 함께 하는 시간을 계산해 보면 그리 길지 않다. 아침에 데려다 놓고 저녁에 집에 데려와 밥 먹이고 씻겨서 재우면 하루가 간다. 주말에 장 보러 가고 얼굴 보면서 외식하면 한주가 간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 학원에 다니다 보면 어느새 성인이 된다. 부모가 자식을 채 알지 못한 채 성장한 아이들은 독립을 하고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간다. 어쩌다 만나면 할 말도 없고 무언가를 같이 할 것이 없다. 특히나 핸드폰 시대가 되어 밥 먹으면서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현실이 되었다.
대화도 없고 소통도 안되니 만나도 별 재미가 없다. 하이텍이라고 세상은 좋아졌는데 개인주의가 되어가는 것이 서글프다. 형제자매가 모여 하하 호호 웃고 얘기하며 자라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며칠 전 텔레비전을 보는데 10남매 가정에서 6남매가 모여 식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참으로 보기 좋았다.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큰 오빠가 부모 노릇을 하며 동생들을 보살펴서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요리사를 초대해서 식사 대접을 하는 자리에 모인 6남매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 가난하신 부모님이 재산은 못 주셨지만 건강은 물려주셨다고 이야기하는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며 행복했다.
아이 키우기가 힘든 세상이 되어 출산율이 줄어 인구감소의 위기를 맞는다. 둘만 낳아 잘 기르고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만든 현실이다. 80년도에 세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갔더니 애를 많이 낳다고 원주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 오늘을 살고 오늘을 잊으며 또 새로운 오늘을 맞는 우리는 매일 태어나고 매일 생일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