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나무들이 속삭이는 곳

by Chong Sook Lee



잠을 설쳐서인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는다. 밤에 한 일이라고는 자고 난 일밖에 없는데 배가 고프다. 자는 것도 에너지가 필요한가 보다. 하기야 밤새도록 꿈나라를 여행하느라 바빴으니 이해가 된다. 토마토와 감자와 계란과 빵을 먹으며 뉴스를 보고 외출을 한다.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다. 가만히 집에 있으면 자꾸 눕게 되어 이유 없이 나간다. 밖에 나가서 특별히 할 일은 없어도 하루에 한두 시간 나갔다 들어오면 기분이 좋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자그마한 숲이 있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 한가해서 좋다. 숲 속 오솔길로 걸어본다. 눈 쌓인 오솔길을 따라 걷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나무들이 오손도손 살아가는 숲을 걷노라면 나도 나무가 된다. 겨울이 오면 가진 모든 것을 버리는 나무들이 알몸으로 겨울을 견딘다. 죽음의 순간이 와도 더 살고 싶어 죽음을 거부하는 인간들보다 현명하다. 있는 것을 다 버리고 땅속에서 봄을 준비하는 나무들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생명을 만들며 봄을 창조한다. 가을이 떠나가는 것을 원망하지 않고 봄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나무들은 자연이 알아서 다 해주기에 봄이 언제 올까 걱정하지 않고 할 일을 한다. 하루하루 살다 보면 새싹이 나오고 푸른 옷을 입혀주는 것을 알기에 조급해하지 않는다.


온갖 풀들이 죽은 듯이 서 있어도 결코 죽은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새로 피어나기 위해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봄을 품에 안은 겨울은 어쩌면 이미 봄인지도 모른다. 봄을 향해 앞으로 간다. 나무는 서로를 배려하며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약속이나 한 듯이 뿌리를 뻗다가 생을 다하면 조용히 누워서 하늘을 본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무 위에서 놀던 다람쥐가 우리가 지나가는 것을 보더니 아는 체한다. 수줍은 듯 나무 가지 뒤로 숨더니 어디론가 가버린다. 이 추운 겨울에 무엇을 먹고살까 궁금하다.


하늘이 파랗다. 하늘은 왜 파란색일까? 파란 물감이 떨어질 것 같다. 수다쟁이 바람이 부드럽게 속삭인다. 한겨울인데 봄바람이 부는 것 같다. 봄이 잠깐 놀러 왔는지 아니면 겨울이 낮잠을 자는지 날이 아주 따스하다. 가볍게 입고 나왔는데 땀이 난다. 목도리와 장갑을 벗고 재킷 지퍼도 내리고 걷는다. 이대로 봄이 오면 좋겠다. 변덕스러운 하늘이 새털구름을 잔뜩 초대하고 구름잔치를 한다. 좀 전만 해도 파란 물감이 떨어질 듯 파랗던 하늘에 구름이 모이고 흩어지며 장난을 한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눈이 바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자연을 보면 게으른 내가 미안해진다. 해야 할 일은 뒤로 미루고 베짱이 같이 놀기만 하는데 자연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어느새 나뭇가지에는 움들이 커지고 있다.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봄을 준비한다. 눈 덮인 숲 속을 걷는 것은 재미있다. 눈이 넘어진 나무에 앉아서 지나가는 우리를 바라본다. 아무렇게나 앉아있는데 자세히 보면 여러 가지 모습이 보인다. 어찌 보면 다람쥐 같아 보이고 토끼나 거북이 같이도 보인다. 눈은 어디든지 앉아서 쉬다가 햇살이 비추면 말없이 녹아도 미련이 없는 것 같다. 잠시 쉬고 바람에 날려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사람들이 밟고, 빗자루로 쓸고, 기계로 밀어 쌓아놓으면 나름대로의 모습을 한다.


계곡을 끼고 오솔길을 걸어가다 꽁꽁 얼어붙은 계곡을 걷고 싶은 생각이 들어 계곡으로 걸어 들어간다. 혹시나 해서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얼은 계곡을 두드려 보니 딱딱하게 얼어 있어서 안심하고 걸어본다. 사람들 발자국을 따라 계곡으로 걷는 것은 재미있지만 다시 오솔길로 되돌아가 걸어간다. 언제나 환영하고 부드럽게 안아주는 숲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동네길로 들어선다.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가지각색이다. 크고 넓은 정원을 예쁘게 꾸며 놓고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집만 커다랗게 지어놓고 돌보지 않고 방치해 놓은 집도 보인다. 부동산 붐이 불 때 집을 사놓고 아무도 살지 않는지 지나갈 때마다 을씨년스럽다. 동네 어귀에 새집처럼 만들어 놓은 작은 도서관을 지나 골목을 빠져나와 숲을 뒤로하며 집을 향하는 우리에게 바람이 다시 오라고 속삭인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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