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하게 떠오른 태양이 벌써 서쪽을 향해 얼굴을 돌린다. 하루가 참 빠르게 지나간다. 까치 한쌍이 우리 집 앞뜰로 놀러 왔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까치가 두리번거리며 앉을자리를 찾더니 자작나무에 살포시 앉는다. 까치 한 마리는 아무것도 없는 나무를 콕콕 찍어보고, 한 마리는 전나무 가지에 앉아 동네를 내려다본다. 먹을 것을 찾으려고 전나무 아래 떨어진 솔방울을 발로 툭툭 차 본다. 별 볼 일 없다 생각이 드는지 뒤뜰로 날아간다. 눈이 쌓여있는 뒤뜰에는 마가목 나무가 있다. 빨간 마가목 열매를 부리로 몇 개 찍어본다. 날이 추워 열매가 꽁꽁 얼었다. 열매가 맥없이 떨어져 눈 위에 떨어진다. 담 위에서 앉아있던 까치가 후다닥 날아와 열매를 입에 물고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서 열매를 흔들어 본다. 무언가를 빨아먹는지 쩝쩝 대며 앉아 있다. 날이 추워서 새들도 어딘가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는지 까치 두 마리가 넓은 뜰을 독차지한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뒤뜰을 걸으며 보는 재미가 있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앵두나무에 얌전히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사과나무는 작년 가을에 이파리를 떨어뜨리지 않고 겨울을 맞았는데 추위에 얼은 이파리들이 말라비틀어져 매달려 있다. 가을에 마저 따지 못한 사과는 겨우내 까치들의 양식이 된다. 나뭇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 버티고 있는 라일락 나무에 자그마한 움들이 봄을 준비하고 있다. 그 앞에 있는 장미는 죽은 듯이 서 있고 작년에 꽃 한 송이 피지 못한 개나리 나무는 올해는 어쩌려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에 시집을 왔는데 샛노란 꽃을 푸짐하게 피워주면 좋을 텐데 아직도 낯이 설은 지 자리를 못 잡고 있다. 옆에서 바람막이 노릇을 하는 소나무에 의지하며 어리 광을 피는지 해마다 실망이다. 전나무와 나란히 서있는 밥풀꽃 나무도 나이가 들어가는지 앙상하게 뼈만 남았지만 참새들이 좋아하는 나무라서 아침저녁으로 시끌시끌하다. 집도, 나무도, 사람도, 모두 나이가 들어도 새들이 변함없이 찾아와 좋다. 쌓인 눈이 다 녹을 때까지 적어도 3달은 기다려야 되는데 이렇게 뜰을 걷다 보니 어느새 봄이 가까이 온 것 같다. 봄이 오면 온 세상이 초록으로 물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봄은 희망이고 설렘이다. 마음으로 봄을 생각하며 생각으로 봄을 맞는다. 봄이 와도 변하는 것은 없지만 그냥 봄을 기다린다. 사람들은 늘 무언가 기다리며 산다. 겨울에는 봄을 기다리고 봄이 오면 여름을 기다린다. 무언가를 한없이 기다리고 그리워하고 또 기다리며 산다. 만족하게 살면서도 또 기대를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지나간 것들은 잊히고 다시 또 무언가를 기다린다. 눈 속에 파묻혀서 죽은 듯이 서있는 나무들은 우리의 마음을 모른다.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 햇볕을 받으며 바람과 이야기하며 하루하루 보낸다. 봄이 오면 기지개를 켜고 다시 살아가면 된다. 어디선가 날아와 뿌리를 내린 이름 모를 국화가 노란 꽃을 10월 한 달 내내 피고 지더니 고개를 숙인 채 얼어있다. 죽은 듯해 보여도 봄이 되면 '까꿍'하며 꽃을 피울 것을 생각하면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이곳의 봄은 너무나 짧아 봄이 왔는지 모르게 보낸다. 겨울 같이 춥고 눈이 오기도 하는 이곳의 봄은 갑자기 찾아오는 여름에 쫓겨간다. 풍요로운 여름은 가버린 봄을 잊게 하고 사람들의 사랑 속에 교만을 떤다. 가뭄에 시달리게 하고, 산 불이 나고 홍수가 나기도 하다가 자연재해로 어찌할 줄 모르는 인간들에게 가을이라는 희망을 주며 떠나간다. 계절은 이렇게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이 하얀 겨울이 지나고 새파란 새싹들이 피어나는 봄을 생각한다. 뒤뜰에서 앞뜰로, 앞뜰에서 뒤뜰로 왔다 갔다 하며 봄타령을 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까치들은 오고 간다. 어디쯤 봄이 오고 있다고 전하는 소리가 들린다. 겨울에는 봄을 기다리고 봄은 또 겨울을 그리워하는 인간들의 변덕스러운 마음에 아직 멀었지만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