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서... 만난 소소한 행복

by Chong Sook Lee



강가를 걸어본다. 꽁꽁 얼어 있어야 할 강물이 힘차게 흐른다. 연말부터 이어진 온화한 날씨 덕분에 1월에 흐르는 강물을 본다. 지난 3일간 날이 갑자기 추웠지만 강물은 얼지 않았다. 강으로 이어지는 계곡물이 강으로 흘러간다. 계곡 바닥에 앉아있는 자갈들이 뽀얀 얼굴을 내민다. 벌써 봄이 온 것은 아닌데 봄 같다. 남쪽에 있어야 할 오리들이 강물에서 헤엄을 치며 쫓고 쫓으며 사랑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겨울이 온다고 했는데 언젠가는 갈 것이다. 언덕에 쌓였던 눈이 서서히 녹아 계곡 물과 합세하며 흐르는 소리가 우렁차다. 계곡물이 너무 깨끗해 보여서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그고 싶은 생각이 든다. 강가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가늘다. 강바람을 맞기 때문에 굵어지지 못한다.


나무들이 촘촘히 있는 길을 따라 다리로 향해본다. 이른 시간도 아닌데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없다. 다리를 건너는데 모자가 날아갈 것처럼 강바람이 세차게 분다. 다리 위에서 조금 전에 걸었던 계곡과 모래사장을 내려다보니 아주 멀리 보인다. 여름 같으면 많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겨울이라서 아무도 없다. 강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심심한 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논다. 다리를 건너 의자에 잠시 쉬며 안내판을 읽어본다. 전쟁터에서 아군의 실수로 동료가 죽은 것을 기억하기 위한 다리다. 전쟁터에서 적을 향해 총을 겨누고 적을 죽이지만 같은 편의 아군 총부리가 뒤에 있기 때문에 항상 위험이 존재한다.


죽은 사람은 알지 못한 채 죽고, 총을 쏜 사람은 평생 동안 죄책감으로 살아간다. 전쟁에서 살기 위해 적을 죽여야 하는 것인데 죽이고 나서 그 현장의 처참했던 상황을 잊지 못하고 트라우마로 평생을 괴로워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죽지만 상대가 무기력한 상태에서도 적이기 때문에 죽여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세상은 언제나 전쟁 중이다. 우리가 겪지 않아도 뉴스를 통해 여러 가지 전쟁을 경험한다.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듯이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이 얼마나 비참한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전쟁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을 알면서도 땅따먹기를 멈추지 않는 어리석은 인간이다.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을 기리는 비석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에 빠진다. 여전히 다리는 텅 빈 채 사람들을 기다린다. 바람이 점점 더 세게 불고 무심한 강물은 한없이 앞으로 흘러간다. 저 많은 물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물가에 청둥오리 가족이 소풍을 나와 헤엄을 친다. 물속에 먹을 것이 많은지 머리를 물속에 넣었다 뺐다 한다. 한겨울인데 그들이 나와 놀 수 있어 다행이다. 이대로 봄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나친 욕심이다. 안 그래도 이상기온으로 겨울에 꽃이 핀다고 하는데 일찍 피는 것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꽃은 봄에 피고 가을에 열매를 맺어야 한다.


커다란 나무들이 강가를 지키고 건너편에 있는 백양나무 숲이 울창하다. 언덕 위에는 거대한 집들이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좋은 경치를 매일 볼 수 있어 좋을 것 같다. 봄여름에는 녹음을 바라보고, 가을에는 오색찬란한 단풍을 즐기며, 겨울에는 하얀 설경을 바라보는 운치가 있을 것이다. 해마다 날이 추워서 겨울에 흐르는 강물은 생각도 못하는데 올해는 보너스 같은 날씨로 한겨울에 좋은 구경을 하며 걷는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이 여기저기에서 만나 끌어안으며 오고 간다. 오랜만에 강가로 와서 걸으니 새삼스럽게 기분이 상쾌하다. 동네 숲 속에서 보는 계곡 하고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앞이 탁 트인 강가를 걸으니 마음속까지 시원하다.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어 좋다. 비행기 타고 멀리 가는 여행도 좋지만 이대로도 행복하다. 아침 먹고 천천히 나와서 걷다가 집에 가면 점심때가 된다. 특별한 준비 없이 아무 때나 오고 싶을 때 왔다 가면 된다. 비행기표를 살 필요도 없고 여권을 준비하고 보험을 살 필요도 없다. 남편과 둘이 손잡고 걷는 길에서 행복을 주우며 간다. 더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살고 싶다. 행복은 느끼는 사람의 몫이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자세히 보면 많은 것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지구상의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슬픔 속에 하루하루를 애태우며 살아간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곳에서 사는 누군가의 아픔을 동조하며 그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가만히 빌어본다. 나라를 떠나 불법체류자로 살아가는 이들이나 전쟁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이 순간을 살아가는 이들이 하루빨리 그들이 소망하는 일상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그토록 심하게 불어대던 바람이 잠잠해졌다. 강물도 잔잔해지고 구름 속에 숨어있던 맑은 햇살이 강물을 비추니 은빛 물결이 되어 찬란하게 흐른다.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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