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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r 31. 2020

다시 만날 때까지 모두 안녕


봄이  환하게 웃으며 피었습니다. (그림:이종숙)



갑작스러운 외출 자제령에 모두 집에 발도 몸도 묶여 버렸다. 잘 가라는 말도 못 하고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이별은 정녕 이런 것인가? 하루아침에 자식도 부모도 손주들도 각자 집으로 들어갔다. 자주 보던 이웃들도 친구들도 얼굴을 못 보고 살아간다. 하루 이틀 지나가면 만날 수 있겠지 하던 날들이 3주째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갑자기 이렇게 되니 막막하다. 집에 있으라는 당국의 신신당부 때문에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라니 만나지 말고 살아야 한다. 오고 가고 만나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그런가 보다가 아니고 황당하다.

어쩌면 인생도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가고 잘 가라 잘 있으라는 말 한마디 못한 채 이별을 맞이해야 한다. 언제나 보고 싶을 때 만나던 사람들, 가고 싶은 곳에 아무 때나 가던 삶은 옛말이 된 것처럼 가만히, 아주  조용히 나날을 지키며 살아간다. 언뜻 아무도 없다는 것이 너무 무섭다. 사랑할 사람도 미워할 사람도 없고 욕할 사람도 수다를 떨 사람도 없다는 것이 피부로 다가온다. 시시했던 사람들도, 쓸데없던 사람들도, 귀찮았던 사람들도 다 보고 싶다.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도 용서하고 싶고, 꼴 보기 싫어 얼굴을 돌렸던 사람들도 궁금하다. 불과 3주 만에 느끼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날이, 시시하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집안을 돌아다니고 뜰을 살펴봐도 잃어버린 것들을 찾을 수가 없다. 봄이 왔다 고 손을 흔들어도 아름답던 어제의 봄이 아닌 흉흉한 봄이다.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리고 피해야 하는 현실은 나날이 메말라간다. 사람이 반가운 것이 아니고 두려운 현실에 마음이 비어가며 헛헛해진다. 우리가 바라던 삶은 이것이 아닌데 화려하고 바쁘고 정신없던 날들이 남겨놓은 모습은 초라하다. 텅 빈 거리는 마치도 유령의 거리 같다. 현란하던 불빛은 꺼진 채 굳게 닫힌 문은 언제 열릴지 모른다. 사람들은 우울해하고 도망이라도 치고 싶어 한다. 인간의 계산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장기전의 싸움에서 힘을 잃어간다.

사람은 사람을 떠나서 살아갈 수 없음을 실감한다.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오고 가고 살아간다. 여행을 가는 것도 사람을 떠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영세를 받은 지 44년이 되어  오랜 세월 동안 매주 성당을 다닌다. 좋으나 싫으나 가고, 미우나 고우나 교회에서 교인들을 만난다. 때로는 귀찮아도 유혹을 물리치고 다녀오면 좋다. 사람 사는 세상에 매일 행복하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이 다 좋지는 않아도 안 보면 보고 싶고 궁금하다. 거의 200여 명의 한인들 이 참석하는 그리 작지 않은 성당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교인들 얼굴도 보고 안부도 물어가며 살아간 다.

40년을 같은 성당에 다녀서 가족이나 다름없다. 같은 나이 또래의 부모님을 알고 아이들을 알며 함께 자라고 함께 늙어간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알던 사람들은 친구를 넘어 역사가 되어 간다. 이민 초기의 힘들고 외로웠을 때 동거 동락하며 서로를 배려하고 위로하며 살았던 기억은 잊지 못한다. 아이들의 기저귀 가방을 들고 시작하여 같이 캠핑도 가고 여행도 하였다. 아이들의 문제를 서로 나누고 처음 겪는 사춘기 부모로서 의 아픔도 위로하며 살았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결혼을 하여 집을 떠나고, 부모들을 하나 둘 떠나보내며 우리도 이제 그들의 나이가 되어간다.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되어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얼굴이 더 많아져 가지만 한 공동체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맛보며 함께 살아간다.

어려울 때와 힘겨울 때 한마디의 위로와 말없이 잡아주는 따스한 손길을 서로 나누며 사람들은 철들어 간다. 나 혼자만의 생활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삶을 만들며 살아간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고, 혼자 갖는 것보다 나누면서 더 행복한 삶을 지향한다. 걸어온 길이 험했기에 후세들은 평평한 길로 편안하게 걸어가기를 원한다. 하루하루의 고단한 삶을 즐기지 못하며 살아왔기에 후배들은 여유롭게 살기를 바란다. 내가 조금 힘들고 손해를 보더라도 밀어주며 끌어주고 싶다. 몇 명에 불과하던 초창기 신자들에 비하면 많이 성장한 공동체가 되었다. 자부심으로 다니던 성당이 코로나 19로 문을 닫으니 그동안 소홀했던 모든 것이 후회가 된다.

한국 뉴스를 보며 이곳 사람들도 한 달 전쯤부터 서로 조심하기 시작했다. 평화의 악수도  손 대신에 눈으로 하고, 반가움을 표현하던 포옹 대신에 팔을 벌리고 가짜 포옹으로 대신한다. 이런 시간이 올 줄 알았으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위로하며 살 것을 이런 생각지도 못한 이별이 오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까? 그들도 보지 못한 교우들이 보고 싶을 것이다. 사람들하고 뒤섞여 살면서 이기심으로 질투하고 시기하며 살던 날들이 자꾸 그리워진다. 어서 빨리 이 시기를 끝내고 문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 나가서 사랑의 연가를 부르고 싶다.

죽은 듯 닫혀있는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오고 가며 그리웠던 사람들을 만나서 얼싸안고 춤을 추리라. 다시는 헤어지지 말고 살아가리라.  사랑을 고백하고 그리움을 기억하며, 서로를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받으며 기쁨이 넘치는 잔치를 열리라. 이제는 머지않아 웃음소리가 들리고, 이야기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 리라. 거리에 차들이 오고 가고 식당과 극장에도 사람들이 몰려와 온 세상이 북적대며 사람 사는 모습으로 돌아가리라. 봄이 왔으나 아무도 기뻐하지 않고 꽃은 피었어도 누구도 봐주지 않는 이봄이 슬프다. 인사도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이봄이 너무 외롭다.


다시 만나는 날까지 모두 다 안녕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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