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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좋고... 편하면 친구

by Chong Sook Lee


친구란 무엇인가? 오래 살아도 답을 모르는 인생을 닮았다. 특별히 친한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세월 따라 친구도 변한다. 학교 친구와 사회 친구가 다르고 신혼 때 친구와 아이들 낳았을 때 친구가 다르다. 상황에 따라, 나이에 따라 변하는 친구관계다. 높은 자리에서 잘 나갈 때 친구가 다르고 낮은 곳에서의 친구가 다르다. 친구란 어떤 상황이나 권력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이어지는 관계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때는 친구가 많고 인기가 좋아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 고 생각한 적이 있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어가며 친구관계가 예전과 달라짐을 느낀다. 남편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살 때는 나이도 어렸고 젊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살았고 아이들 또래 부모들이 친구가 되어 가깝게 지냈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서로 방문하며 밥을 먹고, 가까운 곳에 여행하며 우정을 나누었는데 아이들이 성장하고 사회적으로 안정이 된 뒤 에는 또 다른 친구관계가 형성되었다.


상황이 비슷한 사람들과 자주 접하며 그전에 친하던 사람들과는 소원해지고 서로를 잊고 살게 되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추억을 만들며 살았다. 정년퇴직을 한 지 6년이 지나고 새로운 친구 관계가 형성되는 때 코로나가 유행하였다. 만남과 외출이 금지된 상태에서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도 멀어지기 시작하고 어쩌다 한 번씩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누가 나의 진실한 친구일까? 나는 과연 누군가의 친한 친구일까? 생각이 많아진다.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한 번씩 만나서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친구인가 아니면 그 이상이 친구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친구라는 개념을 잘 모르겠다. 이 나이 먹도록 친구가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것 같아 혼자 싱겁게 웃어 본다. 세상에 진정한 친구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영원할 것 같은 친구가 한마디의 말로 오해하고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조금 잘 나간다고 우습게 여기며 무시하는 관계도 부지기수다. 더 가졌다고, 더 높이 올라갔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다.


조금 더 잘한다고 못하는 사람을 깔보며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말이 맞는 말인데 현실은 다르다.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 세상이다. 조금 있는듯한 사람 곁에는 벌떼같이 모여들고, 쫓아가서 인사를 한다. 인간은 끼리끼리 산다. 같은 고향사람끼리 모이고 선후배끼리 연결고리를 만들며 산다. 이민 초기부터 알던 사람들은 이제 세월 따라 늙어간다.


4월 중순이면 이곳에 이민 온 지 만으로 43년이다. 오자마자 24일 만에 낳은 큰 아들이 43살이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20대 후반이던 남편과 나도 7 학년이 되었다. 이제는 어딜 가도 노인이다. 무엇을 입어도 노인의 모습이 보인다. 어린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어 가정을 이루며 사는 세월이 지났다. 친구가 많아서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 지금은 만날 사람도 별로 없다. 퇴직을 하면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주위 친구들이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또 다른 삶을 살아간다. 가족 모임에 만나고 가족 여행을 가고 손주들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의 스케줄에 맞게 살기 때문에 어쩌다 만나려 해도 시간이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느새 주연의 자리를 물려주고 조연으로 삶을 살아간다. 아이들과 어디를 가도 아이들이 운전을 하고 무엇을 해도 아이들이 앞장서서 우리를 보호한다. 급격히 변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뒤로 한 발짝 물러선다.


친구들과 만나면 한말 또 하고, 하고 싶은 말은 금방 잊어버린다. 글도 노래도 옛날 것이 좋아서 새로운 것을 알지 못한다. 세월이 가다 보니 친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만나서 부담 없이 허허대다 배고프면 같이 밥 먹고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다가 헤어지는 것이 친구다. 매일 만나면 좋겠지만 시간 날 때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된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기대를 하지 않아도 좋다.


부담 없이 만나는 관계가 오래간다. 이번에 내 차례, 다음번에는 네 차례라고 정해놓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차례를 정하면 된다. 한번 더 샀다고, 한번 더 얻어먹었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친구란 돈으로 사고파는 것이 아니다. 부담 없이 만나서 좋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손해를 보고 이익을 가져오는 상거래가 아니다. 옆에서 가까이 같이 사는 사람들이 친구다. 만나서 좋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친구다. 세월 따라 강산이 변하듯 친구도 변한다.


어제의 친구는 만나지 못해도 가슴속에 추억으로 놀고, 오늘은 오늘의 친구와 놀고, 내일은 내일의 친구와 놀면 된다. 스마트폰을 보며 혼자 노는 세상에 전화가 제일 친한 친구가 되어가는 세상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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