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전
이민 가방 두 개 들고
만삭의 몸으로
남편 손 잡고
캐나다에 이민 오던 날
유난히 파랗던 하늘이
생생하다.
시간처럼 빠른 게
세상에 있을까
어느새 꽁꽁 얼었던 강물이
얼음 조각을 등에 업고
두둥실 두둥실
어디론가 흘러간다.
가을이 엊그제 같은데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가고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게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봄이다.
이렇게 또 시간이 가면
또 다른 겨울이 올 것이다.
이곳에 이민 온 지
오늘이 43년이 되는 날이다.
잠을 깨면 간밤에 꾼 꿈이
생각이 나지 않듯이
숱한 세월을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살다 보니
그 많은 세월이 지나갔다.
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 같은
순간순간이
세월 따라 퇴색되어
희미한 기억조각만 남아 있다.
청년에 와서 노년이 되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청춘인 줄 모르고 그냥 보냈다.
먹고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살다 보니
지금의 나를 만나서 산다.
남편과 둘이 손잡고 와서
열세식구가 되었다.
두 아들, 두 며느리, 딸, 사위
손자 셋에 손녀가 둘이 되었다.
하루가 열흘이 되고
1년이 10년이 되어
43년의 긴 세월이 지나갔다.
언제 그 많은 세월이 갔는지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가버렸다.
세월 따라 바람 따라
살아온 세월이다.
힘든 나날은
겨울처럼 가버리고
눈부시도록 화사한 봄은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앞으로 살아갈 날은 짧아지고
기억은 더 희미해져도
처음 이곳 땅을 밟은 날의 기억은
잊지 못할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끝없이 펼쳐진 파란 잔디가
아직도 눈에 보인다
눈을 감는 순간에도
잊지 못할 그날의 설렘이
가슴에 있을 것이다
삶은 흘러가는 강물이고
일장춘몽이라던가
가방 하나에 희망과 꿈을 넣고
다른 가방에는 두려움과 설렘을
넣고 와서 살아온 날들이
한겨울 소복소복 내리는
하얀 눈처럼 쌓이고
검은 머리도 덩달아 희어진다
뱃속의 아기가
마흔세 살이 되었고
두 주먹 힘껏 쥐고
캐나다에 새로 태어나
나는 이제 마흔세 살의 중년의 나이
백세시대에
앞으로도 흥겹게 살리라
얼음을 등에 업고
넓은 바다로 가는 강물처럼
지난 세월 감사하며
가방에 넣고 온
꿈과 희망을 꺼내보고
두려움과 설렘을 돌아보며
씩씩하게 살아가보자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오늘의 나는 내일을 만든다
오늘이 있기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마흔세 번이 다녀갔는데
앞으로 오는 계절을
반갑게 맞고 보내며
기쁨 안에서 살아가리라
이민 43년... 여기까지 잘 왔다
(이미지 출처: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