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속에 피어나는 행복

by Chong Sook Lee



오랜만에 숲 속을 걸어본다. 나무들이 겨울의 옷을 벗었지만 봄 옷은 아직 입지 않은 채 서 있다. 늦가을의 모습과 별 다르지 않은데 희망이 보인다. 머지않아 푸른 옷을 입은 모습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까마귀가 우렁차게 숲의 정적을 깨우고 남쪽에서 날아오는 기러기들이 인사를 하며 하늘을 날아간다. 계곡은 두꺼운 얼음이 반쯤 녹아 있고 옆으로는 맑은 물이 힘차게 흐른다.


하늘은 구름이 덮여 눈이라도 올 것 같고 바람은 여전히 차다. 이곳에 4월 하순에 눈이 와도 놀랄 일은 아니다. 해마다 한 번씩 봄이 오기 전에 폭설이 쏟아지면 오히려 풍년이 될 거라고 농부들이 좋아한다. 매니토바 주에 40 샌티의 폭설이 온 뉴스를 본다. 남의 일 같지 않다. 폭설이 앨버타주를 그냥 지나갈 리가 없다. 남편이 날씨가 좋아 스노타이어를 일반 타이어로 바꾼다고 했는데 조금 더 있어야겠다. 언제 겨울이 마음을 바꿔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봄이 오는 길은 참으로 멀고 길다. 고국에는 이미 여름이 왔다는 뉴스를 듣는데 이곳은 아직도 봄이 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계곡물은 힘차게 흐르는 것을 보면 봄이 멀지 않았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보이는 나뭇가지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어느새 아기 손톱만 한 싹이 나오고 있다. 햇살을 맞고 바람을 쐬며 잎이 되어 나올 것이다.


언덕을 오르고 다리를 건너서 쌍둥이 나무가 나란히 서있는 두 갈래 길에 도착했다. 앞으로 가면 더 깊은 숲으로 갈 수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주택 가로 가는 길이다. 지난해 봄에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바라본 길에 늑대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진돗개 한 마리가 앉아서 주인을 기다리는가 했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늑대는 한참을 그렇게 앉아서 길을 지키고 있어서 그 길로 가지 못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늑대는 없지만 이곳에 오면 그때 그 늑대의 모습이 보인다. 언덕 위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언덕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 본다. 오솔길로 들어가는 작은 늑대길이 보인다. 작년에 늑대 가족이 숲에 들어와 새끼를 여럿 낳았는데 새끼들이 어른 늑대가 되어 숲 속을 어슬렁 거리며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늑대를 만나고 싶지는 않아 늑대가 싫어하는 쇠방울을 가지고 걷는다. 숲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이 힘차게 흐르고 청둥오리 한 마리가 헤엄을 친다.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숲 속의 속삭임을 들으며 걸으니 메마른 풀들조차 예쁘다. 얼마 있으면 온 세상이 푸를 것을 생각하며 한없이 앞을 향해 걸어본다. 지나치는 사람들과 정겨운 인사를 하며 좋은 하루를 기원한다.


오랜만에 찾은 숲은 오랜 친구 같이 마음이 편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한다. 새들은 지저귀고 다람쥐는 봄을 맞이하느라 바쁘다. 먹을게 별로 없어도 불평하지 않고 먹이를 찾아다닌다. 그들에게 숲은 삶이다. 하늘에 기러기 날아가는 소리가 요란해서 올려다보니 수십 마리의 기러기가 날아온다. 봄여름 가을 동안 이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기 위한 대 이동을 하는 것이다. 멀리서 오느라고 힘들었을 텐데 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연은 피어나고 생물은 저 나름대로 살아가는 숲을 걸으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 계곡에 흐르는 물을 따라 끝까지 가 보고 싶다. 꽃이 피지 않았어도 봄이 있듯이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숲이 있어 좋다. 가만히 서있는 나무들을 보면 마음이 비워지고 겸손해진다.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자연에서 끝없는 배려를 배운다. 서로 잘 낫다고 앞서지 않아도, 서로 가진 것이 더 많다고 자랑하지 않아도 숲은 잘 돌아간다.


싸움이 끊이지 않는 인간사회가 점점 잔인해지고 악랄해지는 것을 보면 가슴 아프다. 어린아이들이 마약을 하고, 총으로 닥치는 대로 사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점점 무섭다. 이유 없이 폭행하고 근거 없는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세상에 신뢰가 사라져 간다. 의리도 인정도 사라져 가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만 있을 뿐이다. 햇살과 바람에 의지하며 물 따라 헤엄을 치며 노는 오리가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인다. 계절 속에 피어나는 행복을 만나는 숲이 있어 나도 덩달아 행복하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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