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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의 행패
by
Chong Sook Lee
Apr 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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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내
머릿속에는
아무도 모르는
지우개 하나가 살아요
기억을 없애고
추억을
지우고
하려는 말을
지우는 마술 지우개
생각을 지우고
계획을 지우고
시도 때도 없이
아무거나 지워요
내가 지우고 싶은 것만
지워주면 좋은데
지우개 마음대로
마구 지워요
한번 지운 것은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찾을
수 없는데
왜 자꾸 지우는지 몰라요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을 지우고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 것도
모두 지워요
머릿속은
하얗게 바래고
아무것도 남지 않아
텅
빈 공간이 되었어요
내
생각보다
지우개가 더 빨라요
무
언가 생각하고
가지고 있으려고 하는데
지우개가 달려와서
사정없이 지워버려요
옛날에는
지우고 싶어도
지우개가 없어서
지울 수 없었는데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지우개가 머릿속을
여기저기
마구 헤집고 다녀요
지우고 싶지 않은 것
지우고 싶은 것
지우개 마음대로 지워요
지우개에게
부탁하고 싶어요
좋은 것은 지우지 말고
나쁜 것
만 지워달라고요
지우개는
말을 듣지 않는 개구쟁이
좋은 것은 지우고
나쁜 것은
남겨놓는 심술쟁이
지우개가 오늘도
오늘의 할 일을 지워서
할 일을 못했는데
지우개의 행패와
함께 사이좋게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이미지 출처: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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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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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ng So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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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ng Sook Lee의 브런치입니다. 글밭에 글을 씁니다. 봄 여름을 이야기하고 가을과 겨울을 만납니다. 어제와 오늘을 쓰고 내일을 거둡니다. 작으나 소중함을 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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