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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은... 무언의 약속
by
Chong Sook Lee
May 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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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서쪽 하늘을 점령했다.
가기 싫어도 가야 한다.
마지막 남은 정렬을 다 쏟아놓고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며
하루를 마감한다.
하늘은
빛을 잃고 파리한 색으로
세상을 내려다본다.
아름답던 석양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간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빛은
어둠 안에서 때를 기다린다.
머지않아 어둠을 뚫고 나올 것이다.
지구를 한 바퀴 돌며
어둠은 빛이 되어 태양이 된다.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희망을 안고 새로운 하루를 꿈꾸며
어둠을 헤쳐 나온다.
삶은 어둠과 빛의 교차에서
새로운 역사를 탄생시키며
이어가는 실타래가 된다.
술 술 풀리고,
헝클어지고 엉켜서 끊어져
매듭
을 지어 이어가기도 한다.
어제라는 하루는 석양을 따라가고
오늘이라는 하루를 낳는다.
백 년을 사는 사람이 있고
잠시 다녀가는 사람이 있지만
모두 할 일을 하
고 가는 것이다.
구름이 있어 해가 보이지 않아도
해는 여전히 하늘에 있는 것처럼
영원과 순간은 함께 존재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일 뿐
어딘가에 있다.
하나의 나무가 생을 다하여
누워서 하늘을 본다.
세월 따라 형체를 잃어버리고
가루가 되어 흙으로 스며든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땅속 어딘가에 있는 유전자를 찾아
다시 세상에 나온다.
그처럼 인간도 생을 다하면
육신은 땅에 묻히고
눈에 보이지 않게 되어도
유전자는 영원히 남아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 태어난다.
마루에 앉아 창문을 통해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하루하루 살다 보니
오늘의 내가 되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자손들을 보면
그들에게서 내가 보인다.
가진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가지가 쌓여있다.
아주 작은 씨가
손톱 만한 싹
을
틔운다.
햇살과 바람과 물을 먹으며
자라서 일용할 음식이 된다.
하루가 모여
백 년이 되고
천년이 되듯
이
어제는 오늘이 되고
오늘은 또 다른 오늘을 낳는다.
넘어간 석양은 어둠을 빠져나와
태양이 되고 다시 석양이 된다.
하루종일 구름 속에 있어도
태양이 할 일을 하듯이
그냥 왔다 가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고
섣불리 그 무엇도 판단할 수 없다.
자연의 순환의 법칙 속에
오고 가는 것이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오가며 달을 가린다.
이제 잠을 자야 할 시간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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